저녁을 먹고 난 뒤, 아내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나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은 평소와는 달리 진지해 보였다. "무슨 이야기인데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그래요?" 아내는 내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누군가를 의식하기라도 하듯 조금 열린 안방 문틈으로 거실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누군가가 엿듣기라도 할까봐 안방 문을 꼭 잠그기까지 했다. 아내의 그런 행동이 내 궁금증을 더 자아내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여보, 이제부터 제 이야기 잘 들어야 해요." "아니, 무슨 이야기인데?" "OO이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어요." "초등학교 5학년이면 당연한 일 아니겠소?" "그런데 이것 좀 보세요?" 아내는 서랍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들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수첩을 펼쳐보니 막내 녀석과 여자 친구가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 깨알 같은 글씨 크기로 날짜별로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서로 우정을 확인이라도 하듯 편지의 각 장마다 "OO ♡ OO"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물며 어떤 페이지에는 유명한 시인의 '연애시'까지 적혀져 있어 두 사람의 우정이 얼마나 돈독한지를 엿볼 수도 있었다. 두…
2006-02-21 21:01학업에 짓눌려 ‘분재’처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 분재를 보며 아는 집에 갔더니, 분재 자랑에 침을 튀긴다. 이렇게 잘 가꾼 솔 분재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값이라며…… 분명 생화인데 생화 같지 않은, 정일품 소나무를 백분의 일로 줄여놓은 듯한 참으로 훌륭한 작품! 이 정도면 키웠다기보다는 만든 것 “왼쪽으로, 아니 약간 오른쪽으로 구부려---” “가운데 가지는 조금 뒤틀리게 하고---” 철사에 의해 움직이고 고정되는 나뭇가지 도무지 자연스럽게 숨쉬도록 놔두지를 않는다.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하라는 대로 하는 것 먹으라는 대로 먹고, 크라는 대로 크고, 뻗으라는 대로 뻗고, 보라는 대로 보고…… 한 발짝 다가가 분재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우리에 갇힌 야수의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 숨 막히는 눈빛 속에서 나는 들었다. 좀 내버려 달라는 우리 아이들의 하늘빛 아우성을! 무조건 뛰어나야 대접받는 세상 옷에다 사람을 끼워 넣는 교육…… 장자와 루소가 흘리는 눈물 때문인지 창밖에는 때 아닌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시 : 김형태 분재(盆栽)의 사전적 의미는 ‘수목(樹木)을 분(盆)에 심어 아름답게 가꾸어가며 생활 속에서 보고 즐기기…
2006-02-21 20:54연초라 각급 학교에서 인사 문제로, 교무 분장으로 방학이지만 담당 업무를 맡고 있는 부서와 부서장 그리고 관리자는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특히 담임을 배정 받고자 하는 교사와 배정 받지 않으려는 교사를 놓고 관리자들은 갈등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보편적인 입장에서 생각할 때 교사라면 담임이라는 직책이 있어야 그래도 교사다운 면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더 많아 보이는데. 담임을 맡지 않으면 특히 작은 학교에서는 소수의 교사만을 제외하고는 다 담임을 맡고 있기에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거대 학교에서는 담임을 맡고 있지 않은 교사도 상당하기에 크게 소외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문제는 왜 교사가 담임을 맡지 않으려고 하느냐에 있다. 교사는 진급을 하려고 하면 담임의 경력은 진급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담임을 맡아 문제를 야기하는 것 보다는 편안하게 교직 생활을 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담임을 하면 담임으로서의 자부심과 교사로서의 떳떳함은 졸업 후 찾아오는 제자들을 대할 때 느끼게 되는 보람이 바로 담임으로서의 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것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담임을 하면 늦게까지
2006-02-21 16:45늘그막까지 고우시던 친구엄마 치매 7년째 혼잣말 길게 이어진다. 풍골만큼 인자하던 약국집아저씨 자식 친구 못 알아보고 천정만 바라본다. 우스갯소리 잘하던 부산아저씨 정신 놓느라 말끝마다 웃음만 짓는다. 명절이라고 고향 찾은 우리엄마 뜨럭 오르내리며 한숨 길게 내쉰다. 고향 더 그리운 나이 되었는데 반겨주던 사람들 하나, 둘 세상을 떠난다. 어린시절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빛바랜 추억 자꾸 망각의 강을 건넌다. 작년 구정 때 친구 몇이 어울려 마을 어른들께 세배를 다녔다. 그날 가는 세월을 거역하지 못한 채 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른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어른들의 건강했던 젊은 시절 모습이 많이 남아 있기에 더 안타까웠다. ‘고향유감 2’라는 짧은 글로 아쉬움을 달랬다. 풍골만큼이나 인자하시던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올 구정 때는 병환이 더 심하다고 해 인사를 못 드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공직에 오래 근무하셨고, 자식을 의사로 키운 덕망 있는 분이지만 5년여를 병환으로 고생하셨으니 이제 좋은 곳으로 편안하게 영면하셨으리라 믿는다. 장지가 마침 어린시절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고향 뒷산이라 오랜만에 고향냄새에 흠뻑 젖었다. 무더운 여름에
2006-02-21 15:59'올바른 우리 말글살이'를 시작하며 "'어제'라는 말도 한글이고, '오늘'도 한글인데 '내일'만 한자(來日)로 되어 있는 거 알아?" "그렇지. 근데?" "그래서 우리는 내일이 없는 민족이래." 어렸을 때 들었던 우스개 소리 아닌 우스개 소리를 또 들었다. 예전에는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 들여 무척 우울했었는데, 나이 먹고 들으니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 역시 무척 여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 대신 '모레'가 있잖아."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우스개 소리입니다. "아니, 그러는 일본 지네들은 오로지 '내일'(아시따/아스)만 있다면서? 그래서 '내일' 가지고 그렇게 따졌나? '어제'와 '오늘'도 자국어로 못 가진 우리보다 더 한심한 민족 주제에 당최 주제 파악을 못해요~." 이것은 한 누리꾼의 감정 섞인 댓글입니다. 어제와 오늘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존재하지만 내일이란 우리말은 없어서 오늘까지도 우리는 한자어 '내일(來日)'을 빌려서 쓰고 있습니다. '점심'(點心)을 뜻하는 우리말도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내일과 점심이란 고유의 말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기막힌 사연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적으로 하루에 두 끼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2006-02-21 13:59이 맘 때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 하여 크게 낙심하는 학생들을 봅니다. 또한 소망하는 직장에 취업이 되지 않았다 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는 젊은이들도 보게 됩니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거센 눈보라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한 그루 겨울나무 같아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이번에 얻지 못했다고 해서 마치 인생을 다 산 것처럼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허탈하고 자존심 상하고 아프고 쓰라린 마음을 어디에 견주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눈물을 딛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안으로 웅크리고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엄동설한과 소리없이 맞서 싸우고 있는 저 겨울나무들의 속내를 한번 마음의 눈으로 읽어보기 바랍니다. 동시에 마음의 귀로 그들의 목소리도 들어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마 여러분의 생각이, 아니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자연은 늘 우리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달려가면 언제나 반겨주는 고향집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저도 오늘 밖에 나가 겨울나무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그에게서 한 수 배웠습니다. 핏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남루하고 지친 표정의 거무튀
2006-02-21 13:50졸업식이라는 것은 일정한 과업을 끝내었다는 것을 기념하여 가지는 의식이다.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에 유치원, 초, 중, 고, 대학교, 그리고 남자들은 군 훈련소, 직장에서의 연수원 등 등 수많은 졸업식(일부는 수료식이긴 하지만)을 거치게 된다. 그 중에서 초등학교 졸업식이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있는 유일한 졸업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 말까지 만 하여도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이 70%에 육박하였으니까, 그 전이야 물을 것도 없었다. 1969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평준화 정책이 시작되어서 1971년 전국에서 중학교 입학시험이 사라질 때까지는 전국에서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이 50%를 훨씬 넘는 정도이었다. 그럴 즈음에는 국민학교 졸업식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졸업식 노래를 부르다가 모두들 목이 매어서 울음이 시작되고 졸업식 노래를 끝맺지 못한 채 훌쩍이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것은 이제 이것으로 학교라는 곳을 더 이상 다니지도 못할 형편이니 마지막 교문을 떠나는 슬픔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중학교 평준화 정책이 생겨서 누구나 중학교에 가는 시대가 되자 점점 졸업식장에서 우는 사람이 사라지기 시작하였
2006-02-21 13:47누구나 만나면 헤어지게 되어 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인생살이다. 임명권자의 발령장에 의해 근무지가 결정되는 공무원들에게는 그런 일이 더 자주 있다. 3월 1일자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아침 조회시간에 아이들에게 이임인사를 했다. 담임의 전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 반 아이들이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조회대 위까지 들려온다. 하교 시간이었다. 평소 같으면 인사를 마치자마자 쏜살같이 밖으로 내달았을 아이들이 쭈뼛쭈뼛 내 주위를 맴돈다. 자기들끼리 답을 주고받느라 갑자기 교실이 소란스럽다. “왜 가요?” “아마, 우리들이 싫어서겠지요?” “아냐. 집이 멀어서야.” 여자 아이들 몇이 눈물을 감추느라 연필을 꾹꾹 눌러 사랑이 가득담긴 편지를 쓰고 있는데 개구쟁이 남자 아이들은 다시는 나를 안볼 것마냥 불만을 털어놓는다. “선생님, 빨리 가요.” “가는 마당이라고 선생님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이제 다른 학교 선생님이잖아요." “야, 너희들이나 빨리 가” 남자들은 가라는데도 내 주변을 맴돌며 괜히 농담을 건넨다. 남자들의 속마음을 담임인 나는 안다. 태연한 척 애써 웃음 짓는 담임의 마음도 아이들이 안다. 창 밖에서 한참을 서…
2006-02-21 13:452월은 선생님들에게 많은 설렘과 변화가 오는 달이다. 벌써 다른 학교로 전출하는 선생님들의 명단이 신문의 한 면을 가득 채우며 새로운 터전을 향한 선생님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렘을 지나 가슴이 텅빈듯한 마음으로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들도 계신다. 평생을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바치고 이제 교단을 내려서는 그 발길의 무거움을 누가 알랴. 돌아보는 발자취에는 보람뿐만 아니라 후회와 허무도 있으리라. 떠나는 이들의 평생이 그것으로 보상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국가에 대한 헌신의 공로를 기려 봉직 연수에 따라 각종 훈장과 표창장이 주어진다.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사람의 생각이나 당시의 사회 정서로는 그것이 아마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로는 이 수상이 말 그대로 명예와 긍지의 표시라고 생각되어지지 않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비록 나라에서 주는 훈장이나 표창일지라도 선생을 선생으로 존경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으로 주는 이 훈장이나 표창을 받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것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액자에 넣어 벽면을 장식하더라
2006-02-21 13:44신학기가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며칠의 여유가 있으나, 고3으로 진급하는 학생들은 사실상 고3이나 다름없습니다. 봄방학 기간이지만 정상적으로 등교해서 자율학습에 임하고 있으니 기나긴 입시 전쟁은 또다시 막이 오른 셈이지요. 졸업식 날,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촬영했던 교실에는 어느새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와서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교실은 늘 그대로고 아이들은 해마다 새롭게 바뀐다는 점에서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날입니다.
2006-02-21 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