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호 |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은 광복 이후 지난 60여 년 동안 교육문제에 있어서 가장 많은 변화와 혼란을 겪었다. 한국교육의 다양한 변화는 가장 직접적으로 학교구성원인 교직원과 학생에게 가장 먼저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학생을 뒷바라지하는 학부모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이런 면에서 교육현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과거처럼 학교에서 주로 생활하는 교사나 학생에 초점을 맞춘 호의에 머물기보다는 학부모가 겪어온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매우 의미가 있다. 변치 않는 학부모의 자녀교육열 최근 각 가정의 자녀수가 줄면서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언론보도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이지만 과연 이전과 비교해서 더 늘어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자료를 보면 학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산 정약용의 경우에는 자녀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좋은 가문의 규수와 결혼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한양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학원이…
2007-03-01 09:00박보영 | 연세대 교육연구소 전문연구원 언론 통해 보이는 학부모의 모습 기사와 뉴스 등 언론 매체를 통해 그려지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매우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서,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우리 사회의 교육을 망치고 교실을 붕괴시키는 주범이 꼭 학부모들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언론 매체를 통해 그려지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그 대표적인 양상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학생의 권리에 대한 수호자 혹은 대변인으로서 학부모의 모습이다. 언론 매체는 학부모들이 교육현장의 전반적인 인권 수호에 대해 합리적인 활동을 벌이는 일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학부모들의 이의 제기 방법이 폭력적이거나, 이의 제기 과정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매우 선정적인 방식으로 학부모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2006년 5월 청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무릎 꿇은 교사’ 사건을 보더라도 언론은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 꿇는 일이 발생한 전체적인 정황과 구조적 요인 등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기보다는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만을 선정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교권이 침해되는 것이 모두 ‘지나친’ 학부모들 때문인 것으로 묘사하고
2007-03-01 09:00김성열 |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 오늘날 학부모가 수행하는 역할은 이전에 비하여 다양하다. 재정후원자의 역할을 넘어서서 자원봉사자로서 그리고 학교교육과 관련한 의사결정자로서, 교육위원과 교육감선출권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이제 학교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데 전문성을 가지고 보다 직접적으로 참여할 것이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증대되는 것을 기대하면서도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학부모들이 수행하는 역할과 새롭게 수행하기를 요구받고 있는 역할에 대하여 논의하려고 한다. ‘우리 아이’를 위한 지원 필요해 초·중등학교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역할은 재정적 후원자로서 시작되었다. 초등교육이 의무교육으로 규정되었지만, 열악한 국가재정 때문에 무상으로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학부모가 일정액의 교육비를 부담해야만 했다. 학부모들이 재정적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학부모조직이 구성되었다. 시대에 따라 학부모조직은 후원회, 사친회, 기성회, 육성회 등으로 변천되어 왔다. 초등학교 교육의 완전 무상 의무교육화 그리고 중학교 교육의 완전 무상 의무교육화가 이루어진 후,
2007-03-01 09:00
누군가와 언쟁하다가 상대가 하는 공격의 말 중에, 듣자마자 숨이 탁 막히는 말이 있다. 하나는 “나잇값이나 하세요!”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값이나 하세요!”하는 것이다. 이 말은 상대가 아무리 정중하고 부드럽고 경어체로 말해도 듣는 쪽에서는 치명적인 내상(內傷)을 입는다. 내상을 입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차라리 천한 쌍욕보다도 더 듣기 고약하다. 특히 상대가 나보다 한 살이라도 젊은 경우는 그 모욕감이 오래 남는다. 그리고 오랜 모욕감에 비례하여 두고두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부질없는 질문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두 개의 욕 가운데 어느 욕이 더 심한 욕일까 하고 묻는다면, 어떤 쪽이라고 답을 할지 모르겠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어 딱히 정답을 제시할 형편은 아니다. 내 경우라면 나는 ‘이름값이나 제대로 하라.’는 말이 더 심한 욕으로 느껴진다. 부연하자면 단순히 욕의 표현이 심하다는 문제라기보다, 이 욕으로 인하여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심리 기제가 더 강하게 작동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나잇값이나 하라는 말은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경고로 쉽사리 해석이 되는데, 이름값을 못한단 말은 또 무엇인가. ‘이름값이나 제대로 하라’는…
2007-03-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