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1일, 충북 옥천군 안내면과 안남면에서 중봉 조헌의 발자취와 인근의 볼거리를 돌아보기로 했다. 처음 찾은 곳이 안내면 도이리에 있는 후율당이다. 후율당(충북기념물 제13호)은 중봉 조헌이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은현감을 파직당하고 옥천에 낙향했을 때 제자들을 가르쳤던 서당이다. 중봉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고, 영규의 승병과 합세하여 청주를 수복하는 등 왜병들을 막아내다 금산전투에서 700의병과 함께 장렬히 순국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율곡 이이의 제자였던 중봉은 후율을 호로 정하며 스승의 사상을 잇고자 했다. 안내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정방사거리에서 보은방향으로 500여m 거리에 한문으로 '後栗堂'이라 새겨진 표석이 길에 서 있다. 그곳에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우측 길로 접어들어 400여m 가면 길가에서 후율당을 만난다. 돌담으로 둘러쳐 있고 북쪽으로 삼문이 나있는 후율당은 용촌 밤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오며 중봉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 되었다. 마을 안쪽에서 만나는 한옥도 옛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도이리에서 나와 37번 국도로 옥천방향으로 가다보면 다리를 건너기 전에 인포삼거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안남 방향
2009-01-02 07:50해(年)가 바뀌었다. 세상의 흐름이 바뀌었다. 한 10여 년 전만해도 새해인사로 연하장을 보내다가 바로 작년 이맘 때까지만 해도 이메일을 발송하더니 이번엔 문자 메시지가 주종을 이룬다. 어제와 오늘, 새해 인사 덕담 문자 메시지 수 십 통을 받았다. 내가 먼저 보내드렸어야 하는데 선수를 놓쳤다. 그 내용을 보니 다복, 소원 성취, 건강, 행복, 평안, 감사등이 대부분이다. 리포터도 학교장으로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작년 한 해 학교 표창 무려 4개나 받은 것은 바로 학부모님과 우리 서호중 교육가족 덕분이라고. 새해엔 사랑과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라고. 그리고 추가사항 하나! 방학 중 도서실을 개방하니 많이 이용해 달라고. 이젠 내가 받은 문자 메시지를 답신해야 할 차례다. 어떻게 보낼까? 길어도 안 되고, 고리타분한 형식적인 인사는 구태의연할 뿐 아니라 내 체질도 아니고. 마침 올해가 소띠해다. 그렇다. '소'를 이용하자. 그래서 탄생한 것이 "笑의 해가 되소서!" 경제 전망에 의하면 올해는 작년보다 경제가 더 안 좋아지리라고 한다. 생활이 더욱 어려워져 미소 지을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때 일수록 일부러라도 웃어보는 것은 어떨
2009-01-02 07:50
무창포해수욕장의 해넘이와 신비의 바닷길을 보기위해 보령으로 1박 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하다 보면 꼭 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일정에 쫓겨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그동안 그냥 지나친 곳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36번 국도를 이용해 보령으로 가다 보면 청양군 정산면소재지 앞 벌판 가운데 2층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석탑이 서 있다. 이것이 보물 제18호인 서정리9층석탑인데 부근에 백곡사라는 절이 있던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대치터널이 뚫려 칠갑산을 넘나들기가 쉬워졌지만 옛 추억이 살아있는 칠갑산도림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옛길에서 콩밭 매는 아낙네상과 면암 최익현 선생 동상도 보고, 스타파크천문대까지 등산로를 걸으며 칠갑산의 자연을 만끽했다. 평야지대를 달리는 장항선에 작아서 더 정이 가는 청소역이 있다. 청소면 진죽리의 청소역은 1961년에 건축한 벽돌조 역사로 지붕이 녹색이다. 근대 간이 역사의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나 있는 이 건물이 장항선의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 문화재청이 지정한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305호)이다. 달랑 택시 한 대가 역전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대여섯 명만 들어서도 꽉 찰 것 같
2009-01-02 07:49
교원정책 전반 다뤄 교섭위원들 긴장 지난해 11월 12일, 정부중앙청사 16층 대회의실. 한국교총과 교육과학기술부의 2008년 상·하반기 교섭·협의를 위한 제1차 본교섭·협의위원회 개회를 앞두고 양측 교섭위원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돌았다. 오전 11시 양측의 교섭대표인 안병만 교과부장관과 이원희 교총회장이 입장하고, 교섭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분위기는 누그러졌지만 회의 내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계속됐다. 안병만 장관은 “지난 1992년 시작된 교과부와 교총의 교섭·협의는 그동안 교원들의 권익향상과 교육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며 “이번에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우리 교육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서로 협력하자”고 말했다. 이원희 회장도 “새 정부 들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화답하며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했다. 이날 교총-교과부 간 본교섭·협의는 양측 교섭대표의 인사말, 교총의 교섭·협의 요구 사항에 대한 제안 설명, 교총의 제안 설명에 대한 교과부의 입장 표명, 양측 교섭위원의 자유발언, 교섭대표의 마무리 발언으로 진행됐다. 1차 본교섭·협의회를 마친 양측은 원만한 교섭·협의를…
2009-01-01 09:00미완의 건국, 숨차게 달린 한국교육 35년 서럽고 쓰라린 일본의 식민 지배를 자력으로 벗어나지 못한 대가는, 정작 건국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될 주인이 주도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과 북에 외국 군대가 진주하고, 종국에는 일 민족 두 개의 국가가 들어섰다. 이 민족에게 드리워진 국토 분단의 멍에는 대한민국 건국 60년이 된 오늘에도 우리에게 좌절과 각오를 교차시키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은 그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건국은 힘들었고, 건국 후에도 위기의 터널을 달려왔다. 건국초기부터 내외의 온갖 방해와 저항이 있었으나 건국 후에는 국제전으로 비화한 6·25 동족상잔으로 취약했던 경제기반 마저 잿더미가 된 피폐한 나라가 되었었다. 전후에도 안보위협을 계속 받았고, 선거부정, 학생유혈봉기, 군부독재, 시민유혈봉기와 같은 내부 진통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대내외의 위기를 극복해왔고, 서구 사회가 200여 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불과 40여 년 만에 이루는 경제적 기적을 낳았다. 민주화도 달성했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하게 OECD 회원국, G20 그룹에 속하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 경험은 많은…
2009-01-01 09:00
젊은 시절엔 버스를 타고 긴 여로(旅路)에 오르는 것이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좁은 공간에 갇혀야 하는 그 시간이 지루함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낯선 사람을 옆자리에 앉힌 채 긴 시간을 함께 자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다란 무게감을 지닌 채 다가오는 법이다. 그런 만큼 나이가 웬만큼 든 승객들은 차에 오르며 혼자 앉게 되기를 갈망한다. 김명자 씨도 그런 바람을 가지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가는 곳은 같되 그곳을 향하는 목적은 서로 다른 승객들이 이미 열댓 명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승차권에 기재된 번호를 확인한 뒤 자리에 앉았다. 바랐던 대로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며 등을 깊숙이 묻었다. 온몸이 물에 잠긴 솜뭉치처럼 무겁고 나른했다. 눈을 감자 심신이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 풀어졌다. 종아리에서 찬바람이 일도록 일분일초를 아끼며 하루 종일 뛰어다닌 노력의 결과가 건더기가 전혀 건져지지 않는 장국처럼 멀겋게 쑤어져 피로감은 더했다.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모두는 보호 시설에마저 조금의 정도 나누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운전석 위의 전자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출발 시각이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 그녀는 버스가 출발
2009-01-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