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정책 전반 다뤄 교섭위원들 긴장지난해 11월 12일, 정부중앙청사 16층 대회의실. 한국교총과 교육과학기술부의 2008년 상·하반기 교섭·협의를 위한 제1차 본교섭·협의위원회 개회를 앞두고 양측 교섭위원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돌았다. 오전 11시 양측의 교섭대표인 안병만 교과부장관과 이원희 교총회장이 입장하고, 교섭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분위기는 누그러졌지만 회의 내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계속됐다.
안병만 장관은 “지난 1992년 시작된 교과부와 교총의 교섭·협의는 그동안 교원들의 권익향상과 교육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며 “이번에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우리 교육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서로 협력하자”고 말했다. 이원희 회장도 “새 정부 들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화답하며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했다.
이날 교총-교과부 간 본교섭·협의는 양측 교섭대표의 인사말, 교총의 교섭·협의 요구 사항에 대한 제안 설명, 교총의 제안 설명에 대한 교과부의 입장 표명, 양측 교섭위원의 자유발언, 교섭대표의 마무리 발언으로 진행됐다. 1차 본교섭·협의회를 마친 양측은 원만한 교섭·협의를 위해 각각 5명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구성, 교섭·협의를 진행시키기로 합의했다. 소위가 몇 차례 만남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면 전체 교섭위원이 모여 합의서에 조인하는 것으로 당해 연도의 교섭·협의가 마무리된다.
일선 교원들은 물론 교총 회원들조차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교총과 교과부의 교섭·협의는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 제11조 및 ‘교원지위향상을위한교섭·협의에관한규정’ 제4조에 의거해 실시되는 것이다. 교섭·협의의 범위는 ▲ 봉급 및 수당체계의 개선에 관한 사항 ▲ 근무시간·휴게·휴무 및 휴가 등에 관한 사항 ▲ 여교원의 보호에 관한 사항 ▲ 안전·보건에 관한 사항 ▲ 교권 신장에 관한 사항 ▲ 복지·후생에 관한 사항 ▲ 연구활동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사항 ▲ 전문성 신장과 연수에 관한 사항 등 교원정책 전반이 망라돼 있다. 교섭위원들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2008년 제1차 본교섭·협의위원회에서 교총의 교섭위원들이 교과부 측에 요구한 발언을 살펴보면 교총-교과부 간 교섭·협의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시 관리직회원을 대표해 교총 교섭위원으로 참여한 김윤선 전남 구례동중 교장은 “학교전기료는 교총의 강력한 요구로 2005년부터 16.2%가 인하됐으나 수도료는 그대로 있다”며 “학교의 수도료도 전기료처럼 교육용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회원 대표인 안양옥 서울교대 교수는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부터라도 대입전형료를 경감해주고, 초등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 교육대학에 박사과정이 설치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초등회원 대표인 전상훈 서울 인헌초 교사는 수석교사제 법제화와 실질적인 잡무경감 방안을, 중등회원 대표인 조병선 인천 서곳중 교사는 성과상여금 개선과 주5일제 수업의 완전한 정착이 필요하다고 각각 밝혔다.
양시진 교총 부회장(경기 구봉초 교장)은 “일반직 공무원은 퇴직 전 6개월의 공로연수를 갖지만 교원들은 그나마 있는 3개월의 퇴직준비 휴가도 쓰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교원들에게도 일반직과 동일하게 6개월의 공로연수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교원 대표로 나선 이순희 대구과학고 교사는 정년퇴직자 특별승진 문제를 거론했다. 이 교사는 “40대 후반 정도의 교사가 명예퇴직을 하면 교감으로 특별 승진하는데, 62세에 정년퇴직하는 교사는 그냥 교사로 퇴직한다”며 “정년퇴직자도 특별승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기 초부터 회원들 상대로 안건 공모교총은 해당 연도의 교섭·협의를 진행하기 위해 신학기 시작부터 준비 작업에 들어간다. 지난해 37개조 75개항의 교섭·협의 요구안 또한 일선 회원들을 상대로 공모와 여론조사 절차 등을 통해 선정한 것이다. 교섭·협의 요구안은 제1장 ‘전문직 교원단체 활동보장’, 제2장 ‘교원의 근무여건 개선 및 전문성 함양’, 제3장 ‘학생인권보호 및 교권신장’, 제4장 ‘교원처우 및 복지 개선’, ‘보칙’ 등으로 구성됐으며 우리 교육발전과 교원의 권익향상에 도움이 되는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1장 ‘전문직 교원단체 활동보장’은 교원이 전문직 교원단체에 전임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관계법령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과 교과부가 전문직 교원단체와 최소한 분기별로 정례 협의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교총의 전문성 신장 및 학부모, 학생연수 등 교육력 강화를 위한 현장교육지원센터의 설립을 행·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현장교육연구대회, 전국교육자료전, 초등교육연구대회 등 전국규모 대회 입상자들에게 해외여행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연구 분위기를 조성할 것도 촉구하고 있다.
제2장 ‘교원의 근무여건 개선 및 전문성 함양’에는 행정안전부가 갖고 있는 교원정원 관리권의 교과부 이관, 수석교사제 법제화, 현장교육연구대회 입상비율 개선, 교원 연구년제 조기 도입이 들어 있다. 근무성적평정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고, 우수성적 2~3회치를 반영하는 한편 교사다면평가의 시범실시를 2009년까지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교육공무원승진규정 개정도 요구하고 있다. 교원정년 연장, 교원의 공로연수 시행 등 일선의 강력한 요구가 있는 사항도 빠지지 않는다.
제3장 ‘학생인권보호 및 교권신장’도 매년 교섭·협의의 주요과제다. 교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고, 교원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학생의 학습권 및 교원의 교육권을 보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가칭 ‘교권보호법’ 제정이 핵심이다. 교원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육에 헌신해 사회적 귀감이 되는 순국·순직교원에 대해 헌정할 수 있도록 가칭 ‘교원명예전당’ 설립도 요구하고 있다. 교육 유해환경 차단, 저소득층 대학입학전형료 경감·지원 등 학생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도 담고 있다.
교직수당가산금 인상, 교원자녀 대학학비 수당 신설·지급, 영양교사 업무수당 월 3만 원 신설·지급, 교(원)감 직책급 업무추진비 신설·지급, 유치원을 병설한 초등학교 및 병설 중·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보건교사에게 월 3만 원 범위 내에서 겸임수당 신설·지급, 도서벽지수당 인상, 사서교사 수당 신설, 대학교원 연구보조비(성과급) 예산 증액 등 제4장 ‘교원처우 및 복지 개선’은 교총의 끊임없는 요구사항이다. ‘역사왜곡 대응팀’ 상설 설치·운영 등 교육현안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적 제언도 포함됐다.
물론 교총의 이러한 요구사항을 교과부가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소위원회의 실무협의 과정에서 강제력을 배재한 채 “~노력한다, ~추진한다”는 등의 선언적 형태만으로 합의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총-교과부 간 교섭·협의가 우리 교육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은 그간의 실적을 통해 알 수 있다.
“교총의 여러 활동 중 가장 의미 있어”
교섭·협의 원년부터 줄기차게 요구한 교직수당은 1992년 11만 원에서 2001년 25만 원까지 인상됐다. 초등교원 보전수당 가산금은 97년 교사 2만 원·주임 2만 5000원·교감 3만 원 교장 4만 원이 인상됐고, 2002년 유치원 및 초등교원 모두 평균 1만 원 인상됐다. 2003년에는 1만 7000원 인상이 인상돼 교사 4만 7000원, 보직교사 5만 2000원, 교감 5만 7000원, 교장 6만 7000원이 됐다.
1994년 담임수당이 신설, 지급되면서 계속 인상됐다. 6만 원 → 8만 원 → 11만 원에 이르고 있으며, 보직교사(부장교사) 수당도 3만 원 → 5만 원 → 7만 원에 이르렀다. 이 밖에 봉급 조정수당을 인상하고, 폐지된 체력단련비를 가계안정비로 부활한 것도 교총-교과부 간 교섭·협의 합의로 이뤄진 것이다. 임용 전 군경력 100% 교육경력으로 인정(2001년), 육아 휴직기간을 첫 1년에 한하여 100% 교육경력으로 인정(2001년), 교육대학 대학원 설치(1995년), 산업체 근무 경력 70%로 상향 조정(2002년), 명절휴가비 100% → 150%(2003년), 정액급식비 8만 원 → 9만 원(2003년) → 12만 원(2004년), 교장·교감 직급보조비 교장 인상(2003년)도 교섭·협의 결과물이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교총과 교과부 간 교섭·협의는 교원에 대한 예우 및 처우를 개선하고 신분보장을 강화함으로써 교원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한편 교육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교총이 벌이는 여러 활동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앙단위에서 이뤄지는 교총-교과부의 교섭·협의뿐 아니라 시·도교총과 시·도교육청 간의 교섭·협의도 지방화·분권화 시대를 맞아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경기교총과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경기도 내 교사가 자율연수를 받을 때 교육청이 경비의 70% 이상을 지원키로 했다. 또 승진가산점 중 선택가산점을 대폭 축소하고, 초등전입교사가 전입 희망교에 임용될 수 있도록 했다. 교직원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 설치, 학급당 학생 수 감축, 학교 신축 시 교사 휴게실·탈의실·연구실 설치 등도 합의했다. 경기교총-도교육청 단체 교섭·협의 결과물이다.
지난 2006년 강원교총과 강원도교육청은 특수지 및 농·산·어촌 지역의 교원사택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후된 사택의 보수 및 부족사택 확충을 연차적으로 추진하고, 특수지 중심지역에 임대사택을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같은 해 대전교총과 대전시교육청은 학교마다 다르게 편성돼 있는 대전 시내 학교의 교사 연구활동비를 일원화하는 내용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도교총과 시·도교육청의 교섭·협의는 해당 지역 교원들의 교육활동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창구로 자리 잡았다.
교총은 시·도교총이 보다 효율적으로 교섭·협의를 할 수 있도록 지난해 7월 사무국 직제개편을 통해 담당 부서를 신설하기도 했다. 시·도교총의 교섭·협의를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교총 교육정책연구소 정책지원팀 관계자는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한 교섭·협의가 되도록 시·도에서 필요한 교섭·협의 과제를 발굴하고, 교섭위원들의 전문성을 신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에 대한 연수를 권역별로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로 교섭·협의 역사가 18년에 이른다. 교총-교과부, 시·도교총-시·도교육청 간 교섭·협의에서 다뤄진 수많은 과제는 우리 교육현실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합의를 통해 실현된 것들과 미뤄진 과제 모두가 소중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