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공주처럼 (이금이 지음, 고정순 그림, 사계절 펴냄, 40쪽, 9000원) 작은 왕국의 앵두공주는 전설 속의 망나니 공주처럼 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이들은 늘 몸가짐을 조심하는 앵두공주보다 망나니 공주를 더 좋아한단다. 사실은 앵두공주가 듣지 못한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었던 것일까.
2019-05-03 10:00사과나무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떠오르는가.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과일 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과일 꽃이 피는 4~5월엔 온갖 꽃들이 만발할 때여서 과일 꽃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일 꽃 자태도 웬만한 원예종 꽃이나 야생화 못지않다. 특히 사과꽃, 배꽃, 복숭아꽃, 앵두꽃, 모과꽃 등은 꽃도 어여쁜 데다 얘깃거리도 참 많은 꽃이다. 풋사랑의 싱그러움을 담은 사과꽃 향기 사과나무꽃은 하얀 5장의 꽃잎에 황금색 꽃술이 달린다. 꽃봉오리는 처음에는 분홍색을 띠다 활짝 피면서 흰색으로 변하는데, 분홍색이 아직 남아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 그즈음 사과꽃은 수줍어 살짝 붉어진 아가씨의 볼을 연상시킨다. 사과꽃은 향기가 참 좋다. 이 향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잘 익은 사과가 가득 담긴 박스를 처음 개봉할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 맑고 싱그러운 향기다. 은희경 소설 새의 선물에선 사과꽃 향기가 조숙한 소녀의 풋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새의 선물은 남도의 지방 소읍에 사는 조숙한 소녀가 주인공인 성장소설이다. 삼촌의 서울 친구인 허석이 서울에서 내려왔을 때 가족들은 밤 영화를 본 다음 과수원 길로 산책
2019-05-03 10:00흔히 장편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 문장’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우주와도 같은 장편소설의 세계관을 빚어나가는 첫걸음을 어떻게 떼느냐에 따라 작품 전체의 맛이 달라진다. 위대한 소설들의 유명한 도입부 몇 가지를 기억한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도입부도 기억할 만하다. “내가 지금보다 어리고 약하던 시절 아버지가 해주신 충고를 기억한다.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땐,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최근 들어 이와 같은 명작에 필적할 만한 ‘첫 문장’을 읽었다. 놀랍게도 2017년에 나온 작품이다.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장편소설 ‘파친코’는 다음과 같은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조선 여자 ‘순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2019-05-03 10:00‘한 학부모가 소크라테스에게 찾아와 학교에 불을 질러버리겠다고 한다. 사람 되라고 자녀를 학교에 보냈더니, 오히려 부모인 자신을 폭행했다는 게 이유다. 학교에서 뭘 가르쳤길래 애가 이 모양이 됐느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놀란 소크라테스는 줄행랑을 쳤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고대 아테네 소피스트들이 만든 학교의 폐해를 비꼰 희곡의 한 대목이다. 실제로 당시 소피스트 학교는 화려한 언변으로 대중을 선동, 정치·경제적 이익을 얻거나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이 같은 행태에 분통을 터뜨린 셈이다. 지난 2월부터 교육부 자문기구인 미래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헌 서울대 교수. 국내 손꼽히는 서양고전학자이다. 김 교수는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한 이 희곡은 오늘날 우리 교육현실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했다. “교육의 기본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인데 학교 교육이 인성은 뒷전인 채 좋은 대학을 나와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리는 수단으로 내몰리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물론 학교보다 사회의 책임이 더 크죠. 돈이 많아야 대접을 받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유리합니다. 결국 입시와 돈이 직결돼…
2019-04-03 13:30박범신의 장편소설 은교를 읽다가 여주인공을 쇠별꽃에 비유한 것을 보고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를 모은 이 소설은 예순아홉 노시인이 열일곱 소녀 은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큰 읽을거리다. 그중에서도 은교를 쇠별꽃에 비유한 대목이 하이라이트다. 한 소녀가 데크의 의자에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소나무 그늘이 소녀의 턱 언저리에 걸려 있었다. 사위는 물속처럼 고요했다. 나는 곤히 잠든 소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열대 엿 살이나 됐을까. 명털이 뽀시시 한 소녀였다. 턱 언저리부터 허리께까지, 하오의 햇빛을 받고 있는 상반신은 하앴다. 쇠별꽃처럼. 고향집 뒤란의 개울가에 무리 져 피던 쇠별꽃이 내 머릿속에 두서없이 흘러갔다. 브이라인 반팔 티셔츠가 흰 빛깔이어서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나는 고요히 그 애의 머리칼을 만져보았다. 그 애의 젊은 머리칼에선 적멸((寂滅·사라져 없어짐) 없는 빛이 흘러나왔고, 쇠별꽃 같은 향기가 풍겨 나왔다. 셔츠를 가만히 당겨 그 애의 어깨를 가려주었다. 투명하고 싱그러운 어깨였다. 첫 번째 대목은 시인이 자기 집 데크 의자에서 햇빛을 받으며 자고 있는 은교를 목격하는 순간으로, 시인이 은교를 처음…
2019-04-03 13:30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이른바 ‘외모 규제’를 하려 한다며 큰 반발이 일었다. 여성가족부가 2017년에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는데, 2019년 개정판에 부록으로 딸린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문제가 된 것이다.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대부분 출연자들이 아이돌로 음악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다양하지 못하다며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 획일성이 심각하다고 안내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정부가 왜 아이돌 외모까지 규제하느냐, 아이돌 외모를 팬한테 맞춰야지 정부한테 맞춰야 하느냐, 아이돌도 각각 차별성을 확보하려 노력하는데 정부가 구분 못하면 획일적인 거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여성가족부가 완장을 찼다”며 과도한 권력행사를 비판하는 말도 나왔다. 심각한 오해다. 정부가 아이돌의 외모를 규제하거나 지침을 내리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돌이 비슷한 외형인데 그런 아이돌들이 출연을 독식하니 결과적으로 외모 획일성이 심각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가이드라인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아이돌 출연 독점을 줄여라’가 된다. 이것은 타당한 문제 제기다. 음악
2019-04-03 13:30성균관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재학생 수에 관한 것이다. 흔히 조선시대의 최고 학부로서 당시 수재들의 집합소이자 모든 학생들의 로망이었던 곳, 그래서 성균관은 언제나 학생들로 미어터졌던 공간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성균관의 실제 재학생 수는 가히 충격적이다. 성균관의 재학생 정원이 200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재학했던 학생 수는 많게는 수십 명, 적게는 한두 명에 불과하였다는 내용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심지어 재학생이 하나도 없다는 한탄들도 발견된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일까?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문제가 있다. 당시 성균관은 어떤 곳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죽어 나가다 조선시대 성균관에 관한 기록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학생들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의 기록은 그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대략적이나마 가늠하게 한다. 성균관 학생들이 여러 번 부종병으로 죽게 되어 저희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 (중략)… 한 자리에 오래 앉아서 글 읽기만 힘쓰므로, 정신이 피로하고 기운이 떨
2019-04-03 13:30# 1 무작정 떠난 인도 배낭여행 인도는 배낭여행객 사이에서 여행하기 어렵기로 손에 꼽히는 국가이다. 그런 인도를 아무런 계획 없이 여행했었다. 대학 졸업 전에 잠시 공장에서 근무했었다. 그때 함께 일하던 한 동료가 쉬는 시간이면 인도의 자이살메르에서 담아온 낙타 사파리 사진을 보여 주며 인도 여행기를 들려줬었다. 덕분에 그때 번 돈으로 카메라를 장만하고 인아웃 항공권만 결제하고 인도를 한 달 남짓 다녀왔다. # 2 가이드북 두 권에 모든 것을 의지한 여행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2009년이었다. 인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가이드북을 두 권 챙겼다. 지금은 스마트폰에 많은 정보를 저장해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그때는 종이에 대한 의존이 높던 시기였다. 가이드북을 통해 교통편, 숙박업소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며 여행을 계속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첫날 하루는 숙박업소를 돌아다니며 빈방을 찾고, 다음 도시로 향하는 교통편을 예약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이게 당연한 절차였기에 여행의 일부라 생각했고 재미있게 즐겼다. 물론 지금도 이런 방법으로 여행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시간은 금보다 귀하기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사전에…
2019-04-03 13:30사라진 스승 다시 교사의 길을 묻다 (정순우·정미량 엮음, 현암사 펴냄, 328쪽, 2만 원) 전통적인 사제관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교사 권위가 부정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일부 교사의 일탈이 사회적 가십거리로 오르내린다. 이는 교육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동서양의 역사를 통해 참다운 스승상을 찾아보고, 오늘날 뒤틀린 사제관계를 복원할 방안을 모색한다.
2019-04-03 13:30당신의 아들은 게으르지 않다 (애덤 프라이스 지음, 김소정 옮김, 갈매나무 펴냄, 304쪽, 1만5000원)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에 허송세월하는 아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 사춘기 남자아이들은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심신의 급격한 변화와 ‘남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적 시선, 이들이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2019-04-03 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