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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라이프&역사] 남산에서 안중근 의사를 만나다

조선 시대 서울에 도읍한 이후 한반도를 지켜오며, 서울의 온갖 변화를 한눈에 내려다본 남산(南山). 남산의 옛 이름으로는 목멱산‧마뫼‧인경산‧잠두봉‧종남산 등이 있다. 우선 남산이란 ‘도성의 남쪽에 있다’해서 붙여졌으며, 지금도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성곽과 봉수대가 있다.

 

남산의 본명은 목멱산이다. 고려 시대에 이곳의 지명이 목멱양(木覓壤)이었기에 목멱산이라 했다고 한다. 인경산(引京山)은 조선 시대에 수도를 개경에서 이곳으로 천도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잠두봉(蚕頭峰)은 산의 모양이 누에 모양으로 생겨서 지어진 이름이다. 또 남산에는 전국 각지의 소식을 들을 수 있게 한 봉수대가 마지막으로 멈추는 곳이다. 그래서 봉수대가 끝나는 곳이라는 뜻으로 종남산(終南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을 지탱하는 큰 힘이었던 남산은 1885년 일본인들이 이주하면서 거주지와 헌병대, 조선 신궁 등을 지으면서 훼손됐다. 해방 이후 남산은 공원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이곳에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3월이면 생각나는 독립운동가

 

3월이면 생각나는 독립운동가로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1919년 3·1운동과 관련한 많은 분이 꼽는데, 안중근 의사도 그중 하나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연해주의 하얼빈역에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려 한국의 민족혼이 살아있음을 세계인에게 알린 불멸의 영웅이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힐튼 호텔 뒤편을 지나면 백범광장이 나온다. 백범광장에는 백범 김구의 동상과 함께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있다.

 

이곳에서 백여 계단을 오르면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나온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와 국민 성금으로 일본 식민지의 상징인 조선 신궁 터에 세워졌다. 협소한 전시 공간과 시설의 노후화로 40년 후인 2010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101주년을 기념하면서 재개관했다.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품(遺品)과 사진, 유묵 등이 전시돼 있다. 유묵을 보니, 자나 깨나 오직 나라만 생각한 듯하다. 그는 독립에 대한 결의를 다진 동지 11명과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의 넉 자를 써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를 훌륭하게 가르친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사진도 있다. 그녀는 아들이 사형을 선고받자, 두 동생을 급히 여순의 감옥으로 보내 “자식으로서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해 상고하겠다면 그건 결코 효도가 아니다. 큰 뜻을 품고 죽으려면 구차히 상고하여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전하라고 했다. 어찌 자식이 죽는 것에 대해 가슴이 아프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자식의 죽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꿋꿋하게 죽음을 맞이하라는 조마리아 여사의 가르침은 오늘날 어머니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한다.

 

불멸의 영웅, 안중근

 

얼마 전, 한 연예인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SNS에 올리자, 어떤 일본인이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반응을 보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테러’를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조직적·집단적으로 행하는 폭력 행위. 또는 그것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사상이나 주의’라고 나와 있다. 한 마디로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양 삼는 것이다. 그러나 안 의사의 의거는 그 어디에서도 무고한 시민의 희생은 없었다. 더구나 안 의사를 조사했던 일본인 검사는 “일본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안중근은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라고 할 정도였다.

 

중국의 석학 장타이옌도 “안중근은 조선의 안중근, 아시아의 안중근이 아니라, 세계의 안중근이다”라고 했으며, 중국 속담에는 “혁명가가 되려거든 손문처럼 되고, 대장부가 되려거든 안중근처럼 되라”는 말이 있으니, 테러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역 역사에는 안 의사의 뜻을 기리려는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마련해 놓았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애국지사요, 동양 평화론자인 안 의사를 추모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지금도 안 의사의 묘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사형당한 안 의사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두 동생이 애원했지만, 독립운동의 성지(聖地)가 될 것을 두려워한 일본 정부의 반대로 여순감옥의 죄수 묘역에 은밀하게 묻혔고, 지금도 위치를 알 수가 없어 안타깝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10시를 안 의사의 사형 집행 시간으로 잡은 것은 복수심에 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안중근 의사는 일찍이 ‘일일부독서면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면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라고 했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여순 고등법원장과의 면담에서 자신의 동양평화론을 설명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공동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위해 동양평화회의를 이룩하자는 내용이었다. 안 의사의 구상은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에 의해 실현되지 못했다. 오늘날 동아시아 정세는 불안하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따라 한, 중, 일 삼국이 대등한 관계로 서로 상대를 존중하며 공동번영을 도모하자는 주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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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알아보기) 이토 히로부미도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다.

 

1. 동양 삼국은 상호협력을 통하여 문명을 증진시켜 구미 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

2. 동양 삼국은 문명국가로 위장하고 침략을 일삼는 러시아에 대항하여야 한다.

3. 한국 황제가 일본의 제의를 이해하여 일본과 존망을 같이할 경우 일본은 한국의 국권을 보전해 줄 것이다.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동양평화론’이 근본적으로 달랐음을 나타내주는 사건은 무엇일까? 또 이토 히로부미가 생각한 동양평화의 방법은 무엇일까?

 

(해설은 다음 회에)

 

전회 해설) 의상은 문무왕이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려 하자 부처님의 평등사상을 말하고 이를 사양했으며, 의상의 제자 중에는 농민 출신 진정, 노비 출신 지통이 있어 신분을 초월했다. 의상에 의해 세워진 화엄 10찰도 경주가 아닌 주로 지방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 왕권 강화보다 일반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한 종교를 지향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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