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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지구촌 사람들] 스페인 북서부의 두 도시 라 코루냐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세계 최초의 등대를 만나다, 라 코루냐
영국 런던 히드로공항을 거쳐 라 코루냐(La Coruna)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호텔까지 가는 동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살짝 열었다. 무르고 축축한 스페인의 봄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사람들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달리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느티나무 아래를 느리게 걸어갔다. 안개 너머로 대서양의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안개 속에서 가만히 서 있노라면 무언가를 조금씩 채워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주 오랫동안 음악을 듣지 못하다가 어느 날 이어폰을 귀에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기분과 비슷하다. 여행도 마찬가지. 여행은 어쩌면 안개 속에서 오랫동안 서 있기, 오랜만에 들어보는 음악인지도 모른다.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자리한 도시 라 코루냐는 갈리시아 지방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우리에겐 아직 낯설다. 여행자들이 이 낯선 도시를 찾아오는 이유는 ‘헤라클레스 등대(Torre de Hercules)’를 보기 위해서다. 
헤라클레스 등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대다.

 

스페인 지역을 점령했던 로마인들이 파룸 브리간티아(Farum Brigantia)를 건설했을 때인 AD 1세기 후반에 등대를 경계 표시용으로 설치했다. 카이사르가 이곳을 정벌한 후, 등대는 로마 제국의 선단이 영국과 아일랜드로 가는 길목을 밝혔다. 만들어진 지 1900년의 세월 동안 전쟁과 약탈로 황폐해졌고, 몇 차례 개축을 하면서 1791년 마침내 재점등했다.


구글맵이 등대에 다 왔다고 알렸지만, 자욱한 안개 때문에 등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갑자기, 불현듯, 눈앞에 거대한 등대가 나타났다. 거인처럼 보였다. 왜 헤라클레스 등대라고 부르는지, 뱃사람들이 왜 안개를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약간이나마 이해가 됐다. 앞에 뭐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들을 집어삼킬 어마어마한 크기의 문어가 안개 속에 숨어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등대는 길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넘어 그들에게 신앙과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이름에 걸맞게 탑은 거대하다. 탑 자체의 길이는 55m인데 높이 57m의 암석 위에 서 있으니 더 높아 보인다. 수면으로부터 112m 높이에서 깜빡이는 불빛은 50km 밖에서도 보인다. 등대가 위치한 ‘코스타 다 모르테(Costa da Morte)’의 뜻은 ‘죽음의 해변’이다. 그만큼 위험하다. 세계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고대 로마인들에게 이곳은 세상의 끝이었다.


등대 꼭대기에 올라갔다. 잠깐 물러갔던 안개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밀려왔다. 산등성이에 자리한 집들이 어렴풋해졌다. 안개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바다가 있겠지. 세계는 평평하지 않아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도 떨어지지 않는다. 한때 수평선 너머가 궁금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수평선 너머는 그냥 바다겠지. 여행을 다니며 깨닫게 된 건 살아가면서 여행자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 세상을 보는 순간도 필요하다. 등대 아래 세상은 짙은 안개에 묻혀 있었다. 안개 너머엔 뭐가 있을까. 바다 너머엔 뭐가 있을까. 우리를 한 발 내딛게 하는 건 언제나 호기심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여행이란 게 있다. 종교적 의무 또는 신앙을 고취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4세기경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쫓아 이스라엘을 순례한 사람의 기록이 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순례자가 성지로 순례를 떠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순례길 가운데 ‘산티아고 순례길’만큼 사람들의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길이 있을까. 순례자들은 발에 생긴 물집과 상처를 산티아고 순례길이 자신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고행의 걸음을 내디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세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고 걸었던 길이다. 유럽 각지에서 출발한 길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부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한다.


야고보는 어느 날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님의 계시를 받았는데, 당시 땅끝은 로마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이베리아반도였다. 야고보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순교를 당했고, 그의 시체가 있는 자리에 별이 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별이 가리키는 곳에 산티아고 대성당이 지어졌다. ‘콤포스텔라’는 라틴어로 ‘별의 땅(campus stellae)’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별이 점지한 야고보의 시신이 묻혀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산티아고는 예루살렘·로마와 함께 유럽 3대 순례지다. 

 

 

순례자는 ‘크레덴시알(Credencial)’이라는 여권을 발급받는다. 이 여권이 있으면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숙소)에 묵을 수 있다. 하루에 2개 이상의 스탬프를 호텔·알베르게·성당·관광안내소와 순례자 사무실 등에서 받을 수 있는데, 사무국 직원은 이를 근거로 날짜와 순례 거리를 산정해 증명서에 기재해 준다. 증명의 기본 요건은 대성당으로부터 최소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부터 와야 한다는 것. 도보·자전거·휠체어를 구별하지 않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면 순례 완료 증서(Compostela)를 받는다.


순례자들이 그토록 닿고 싶어 하는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처럼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도시지만, 도시 자체만으로도 많은 매력을 가진 곳이다.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다. 성당 지하에는 야고보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는데 순례자들은 이곳을 참배하면서 순례를 마감한다. 성당 앞에는 완주를 했다는 벅찬 감동으로 희열에 들떠 울음을 터뜨리는 순례자들도 볼 수 있다.


산티아고 광장에는 가리비를 가방에 단 사람들이 많다. 야고보 사도의 문장이 가리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배를 이용해 야고보의 시신을 스페인으로 옮길 때 풍랑 때문에 시신을 바다에 빠뜨리게 되었는데, 나중에 겨우 찾고 보니 가리비가 성인의 몸을 덮어 유해가 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성당 왼쪽에 자리한 우아한 건물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파라도르호텔이다. 파라도르호텔은 스페인에서 가장 유서 깊은 국영호텔로 스페인 전역에 8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왕과 귀족계급이 거주하던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답게 내부에는 기사의 갑옷과 투구, 당시의 가구와 화려한 샹들리에 등 볼거리가 많다.  


대성당 가까운 곳에 순례 사무국(Pilgrim’s Reception Office)이 있다. 이곳은 언제나 순례 완주 증명서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20대의 젊은이부터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순례자들이 저마다 행복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좋은 여행이 되길, 너의 길에 행운이 있길’이라는 뜻이다. 순례자들은 길을 걸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이 말을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한다고 한다. 산티아고를 떠나는 날, 이 말을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산티아고에는 꼭 다시 올 것이다. ‘언젠가는 꼭’이라는 말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 텐가. 언젠가 이 도시를 다시 찾을 날을 기다리며, 부엔 카미노.

 

 

☞ 여행정보  
영국항공을 이용해 런던을 거쳐 라 코루냐로 갈 수 있다. 유럽여행은 유레일패스(02-775-1571, www.eurail.com/kr)가 편하다. 라 코루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기차로 30분이 걸린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는 아바스토스(Abastos) 시장에 가보자. 아케이드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치즈·생선·고기·채소 등을 파는 상점들이 구역별로 들어서 있다.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전 7시에 열어서 오후 2~3시에 문을 닫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 지역에서 나는 검은 돌인 아자바체(Azabache)로 만든 다양한 액세서리를 볼 수 있다. 가리비나 묵주·십자가 등 종교 관련 액세서리를 사서 선물로 주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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