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벌어지는 녹음과 관련된 문제는 사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다만 작년 유명 웹툰 작가 자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은 특수교사 사건에서 학부모가 학생 가방에 녹음기를 몰래 넣어 녹음한 내용을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하면서 다시금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비단 이런 학부모의 녹음뿐만 아니라 교원들 역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상담과정을 녹음해도 되는지를 궁금해하거나, 학생 본인이 학교생활을 직접 녹음하는 일로 벌어지는 문제 등 학교현장에서 녹음과 관련한 다양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녹음에 대해 법은 어떻게 정하고 있는지, 주의할 점과 대응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녹음과 관련된 「통신비밀보호법」 규정과 해석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할 수 없다고 한다(「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 이를 위반하는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하여 별도로 벌금형이 정해지지 않아 중한 범죄로 취급되며(「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제1항 제1호),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도 두고 있다(「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2항 제4조).
이처럼 「통신비밀보호법」이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할 수 없다고 하므로, 녹음하는 사람이 대화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다. 또 대화하는 사이에서 녹음에 대한 상대방의 동의를 얻거나 녹음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관련하여 학교에서 자주 묻는 예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닌 예
① 학부모와의 전화 통화 과정에서 선생님이 학부모 몰래 녹음함. 마찬가지로 학부모가 선생님 몰래 녹음함.
② 대면 상담과정에서 상담을 진행하는 선생님이 학부모 몰래 녹음함. 마찬가지로 학부모가 선생님 몰래 녹음함.
③ 위협을 당하는 학생이 위협하는 학생 몰래 녹음함.
④ 수업 중 소란을 부리는 학생의 말을 선생님이 몰래 녹음함.
⑤ 학생이 선생님의 수업을 몰래 녹음함.
그렇다면 다수에게 말하고 있거나 큰 목소리로 말하고 있어서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이를 듣고 녹음할 수 있을 때는 어떨까?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아니한’이라고 하였는데, 다수에게 말한다거나 큰 소리로 말한다는 것은 이미 공개된 대화이니까 대화 중이 아닌 사람도 녹음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와 관련하여 선생님이 수업시간 중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통상적으로 교실 내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서 교실 내 학생들에게만 공개된 것일 뿐, 청취자가 다수였다는 사정만으로 ‘공개된 대화’로 평가할 수는 없고, 따라서 부모가 학생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녹음한 행동을 위법하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대법원 2024.1.11. 선고 2020도1538 판결 참조).
또한 ‘공개되지 아니한’이란 반드시 비밀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고, 들리는 범위 내라고 하더라도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 역시 처벌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해당 사례는 대화가 공개된 것인지는 발언자의 의사와 기대, 대화의 내용과 목적, 상대방의 수, 장소의 성격과 규모, 출입의 통제 정도, 청중의 자격 제한 등 객관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하여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의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닐 가능성도 열어두고는 있다(대법원 2022.8.1. 선고 2020도1007 판결 참조). 이러한 판례를 바탕으로 하였을 때, 학교에서 자주 묻는 예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문제 될 수 있는 예
① 부모가 자녀의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로 교실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녹음함.
② 선생님과 학부모가 교무실에서 상담하던 중 큰 소리가 들리자, 교무실에 있던 다른 사람이 녹음함.
③ 몇몇 학생들이 누군가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듣게 되자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학생이 녹음함.
유명 웹툰 작가 사건에서는 증거로 쓸 수 있다고 했는데?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녹음은 재판이나 징계 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라는 ‘위법수집 증거’의 문제도 있겠지만,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애초에 「통신비밀보호법」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교사가 수업 중 학생에게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저쪽에서 학교 다닌 거 맞아, 1·2학년 다녔어, 공부시간에 책 넘기는 것도 안 배웠어, 학습훈련이 전혀 안 되어 있어, 1·2학년 때 공부 안 하고 왔다갔다만 했나봐”라고 말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했다는 사례에서 부모가 학생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녹음한 것의 증거능력을 인정할지가 문제 되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담임교사의 수업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이며, 부모가 몰래 녹음한 것은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의 연령과 부모가 학생의 친권자라는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제삼자의 녹음에 해당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대법원 2024.1.11. 선고 2020도1538 판결 참조).
사실 위와 같은 2024년 1월 대법원의 판례가 있기 전까지 하급심(제1심·제2심) 법원들의 판단은 다른 경우가 다수 있었다. 위 사례도 하급심에서는 증거로 쓸 수 있다고 보았다가 대법원에서 판단이 바뀐 것이고, 그렇기에 굉장히 주목된 판례였다. 해당 판결에 따라 일반적인 초·중·고 학생들에게 부모들이 학생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녹음한 행동은 불법한 것이고, 증거로도 쓸 수 없다는 점이 명확히 확인되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대법원판결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있던 유명 웹툰 작가의 판결에서는 여전히 문제 된 녹음이 증거로 쓰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대중적인 관심이 쏠린 이 사건의 판결로 학부모들은 법원에서 문제없음을 인정해 주었다며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는 경우가 빈발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은 학생이 장애학생이어서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점을 주요한 근거로 삼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이고, 이후 제2심과 대법원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이런 구체적인 검토 없이 자녀에게 녹음기를 부착시켜 보내는 학부모들의 행동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소지가 매우 큰 위험한 행동이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만 아니면 될까?
이렇게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되지 않는 대화자 간 몰래 녹음의 경우 범죄가 되지 않으므로 처벌받지 않는다. 그런데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음성권 침해’로 손해배상 책임이 문제 될 수 있다.
법원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방송·복제·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데, 이를 헌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라며 음성권을 인정하였다. 다만 녹음에 대한 정당한 목적 또는 이익이 있고 녹음자의 비밀녹음이 이를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정도라면 비밀녹음은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한다.
음성권이 문제 된 사안에서 녹음된 내용에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없고, 증거 확보의 긴급성이 있으며, 녹음파일과 녹취록 등이 법원이나 수사를 위한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것에만 사용하였다고 하여 몰래 녹음한 행동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7.10. 선고 2018나68478 판결).
이를 토대로 살펴보면, 음성권 침해 여부는 녹음된 내용과 몰래 녹음하게 된 경위, 그리고 녹음된 내용을 어디에 사용하였는지가 핵심이다. 만일 학부모가 교사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무분별하게 제공하는 등의 행동을 하였다면, 이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음성권 침해로 손해를 배상하게 될 책임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학부모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였다고 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므로, 녹음된 내용은 방어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함부로 유포해서는 안 된다.
학부모가 아닌 학생 스스로가 녹음한다면 어떨까?
학부모는 학교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 명확하므로, 자녀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보내 녹음하는 행동은 원칙적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된다는 점은 이미 설명했다. 판단이 어려운 것은 학교에서 학생이 직접 녹음하는 경우이다.
수업을 몰래 녹음하는 학생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복습을 위해 녹음을 하게 되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교원으로서는 부담이 상당하다. 학생은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이고, 따라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의 동의 없이 이를 녹음하더라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은 아니다. 다만 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의 음성이 녹음될 것이므로 음성권 침해가 문제 될 소지는 있다.
이에 교육부 학교교수학습혁신과에서는 ‘수업 중 학부모·학생의 녹음 관련 가이드라인’을 통해 학생이 수업 전에 교사에게 녹음을 신청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며, 교사의 허가를 얻더라도 허가된 목적 외로 활용될 소지가 있다면 녹음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수업 중 녹음된 음성을 무단 배포하는 것은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에 따른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된다. 학생에게 이러한 기준이 존재함을 설명하고, 향후 수업 녹음에 대해 주의하라고 당부하여 한정된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지도함이 타당하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에 상주하는 모든 시간을 녹음하는 학생이다. 수업 중이거나 학생 본인이 다른 학생과 직접 대화하는 과정에서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설령 들리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더라도 다른 학생들 사이의 대화까지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크다.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목소리를 높여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의 말이 전부 녹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학생을 교사가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학생은 녹음의 이유가 학교폭력이나 아동학대 증거를 잡겠다는 등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막상 교사로서 학생이 불법한 행위를 한다며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렇게 학생이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사가 알았다면, 이미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도 해당 학생의 녹음 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에게 비밀을 말해준다며 녹음 사실을 말했을 수 있고, 몰래 녹음한 음성을 다른 학생에게 들려주면서 “누가 뒤에서 너 욕하고 다닌다”라는 등으로 말하여 학교폭력 사안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결국 이런 사실이 퍼져나가면 자연스럽게 다른 학생들이 다가가기를 피하게 되며, 학부모들도 자녀에게 해당 학생과 어울리지 말라고 해 외톨이로 전락한다.
이런 당연한 결론을 당사자는 모른다. 따라서 몰래 녹음을 계속하는 학생을 알게 되었다면 학생과 보호자에게 이런 사례들을 알려야 한다. 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과 동시에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임을 알리고 학생 본인과 자녀를 위해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방식으로 교육적 지도를 시도해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