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쌍둥이일지라도 먼저 나고 늦게 남에 따라 세대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는 동갑내기에도 윗물, 아랫물과 같이 폭넓게 차이를 보이는 이유와 비교된다. 하물며 오랜 세대 차이를 보유하는 학교공동체는 말해서 무엇 하랴. 옛말에도 “팔십 먹은 노인도 세 살 어린애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인생의 선후 관계에 따른 배움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배움을 태어남의 순서에 따른 위계질서로 당연시하거나 일방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학교는 다른 사회의 조직과 달리 세대 차이가 널찍한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 즉, 10대 전후에서부터 60대 초반까지의 연령층이 넓게 포진되어 있다. 그래서 각 세대 간의 의식에 큰 차이가 존재하며 이 차이로 인한 갈등이 표면화 되면 공동체 간에 조용한 날이 드물게 된다. 문제는 교사는 기성세대 성인이기 때문에 미성년인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는 주체라는 관념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배움은 세대의 순서를 역행해 발생하는 일이 많다.
학교에서는 환갑지난 교사가 10대의 청소년에게서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실제로 학교에 따라서 차이는 있으나 교사가 학생에게서 배웠다는 각종 사례와 교훈은 얼마든지 있다. 자연발생적이기도 한 현상을 거부하면 교사와 학생 간에 대화와 소통이 단절되고 소위 학교문화에 공동화(空洞化) 현상까지 발생한다. 이는 작금에 이르러 교육적 갈등으로 비화되고 따라서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소기의 바람직한 교육을 저해하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예전에 비해 훨씬 많은 사실을 보고 듣고 경험하며 자란다. 이는 과거와는 달리 청소년들이 해당 연령에 비해 많은 체험과 경험의 축적을 이루고 특히 독서의 효과로 인한 지적 성숙도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따라서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의젓한 ‘아이 어른(애늙은이)’들이 많다. 예전에 세상을 직접 보고 듣고 배운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의 차이를 보여준다. 실제로 학생에 따라서는 교사의 의식수준에 버금가는 경우도 많다.
교사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 즉 인플루엔서(Influencer)로 살아간다. 이는 가르치는 과목에서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함으로써 학생들의 인격 형성에도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게 된다. 따라서 교사는 항상 자기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하게 의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학생에 따라서는 교사를 우상이라고 생각하여 항상 관찰하고, 나아가 실제 슈퍼 히어로 모델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삶에 긍정적인 흔적을 남기는 일이 아름다운 성취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삶을 바꾸는 일이 결국은 이기는 일이지요.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는 만큼, 학생들에게서 똑같이 영감을 받아요. 바로 영감의 순환이죠.” (『세계의 교사』, 2024)
이는 한때 ‘세계의 교사’ 후보에 오른 히바 발루트라는 레바논 출신 한 젊은 교사가 한 말이다. 그는 교사란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며, 학생들이 큰 꿈을 품도록 응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부모나 교사는 잘 듣는 사람이 될 것을 주장한다. 이는 특히 청소년기, 미스터리한 면이 많은 십대 시절에는 그들이 각자의 비밀 상자를 열게 하는데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사는 예로부터 청소년기의 학생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관찰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겨 일방적인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시간에 따른 삶의 경험이 교사에 비해 적을 뿐이지 의식은 깨어있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청소년을 가르치는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금물이다. 때로는 그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배움을 얻는 삶의 지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