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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동성애의아이콘 가니메데

물병자리(Aquarius)는 황도 12궁의 11번째 별자리로, 염소자리와 물고기자리 사이에 있다. 이웃한 독수리자리(Aquila)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소년을 낚아챈 독수리의 별자리다. 그리스신화에서 물병자리는 독수리 혹은 독수리로 변신한 제우스에게 납치된 트로이 왕자 가니메데의 별자리다. 성인 제우스에 의한 미소년 가니메데의 납치는 현대의 가치관으로 보면 매우 불편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성인 남성과 소년 간의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승인된 문화였다. 여성은 열등한 존재였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정신적으로 통하는 남자들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병자리에 얽힌 신화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물병자리는 황도 12궁의 11번째 별자리로, 염소자리와 물고기자리 사이에 있다. 2세기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립한 48개의 별자리 중 하나였으며, 국제천문연맹(IAU)이 정리한 88개의 별자리에 속한다. 가을 밤하늘에서 가장 눈에 띄는 페가수스자리의 페가수스 사각형 남쪽으로 희미하게 반짝이는 작은 별들의 무리가 물병자리다([그림 2]). 


알파별은 사달메리크로 ‘왕의 행운’, 베타별은 사달수드로 ‘행운 중의 행운’, 감마별은 사다크비아로 ‘은둔자의 행운’이라는 뜻이다. 서양 별자리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듯 별들의 이름도 아랍어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 많다. 이웃한 독수리자리(Aquila)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소년을 낚아챈 독수리의 별자리다.

 

제우스에게 납치된 미소년 가니메데의 별자리, 물병자리
그리스신화에서 물병자리는 독수리 혹은 독수리로 변신한 제우스에게 납치된 트로이 왕자 가니메데의 별자리다. 그리스인들은 이 별자리를 물병을 들고 있는 가니메데의 모습으로 상상했다. 


가니메데는 이다산에서 트로이의 양 떼를 돌보는 미소년이었다. 제우스는 어떤 아름다운 소녀보다도 더 예쁜 가니메데의 외모에 한눈에 반했다. 원래 제우스와 헤라의 딸이자 청춘의 여신인 헤베가 신의 음료인 넥타르와 신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가니메데를 데려와 대신 시중을 들게 했다. 제우스는 그에게 영원한 젊음과 생명의 음료 넥타르를 신들에게 따라주는 일을 맡긴다. 물병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남쪽물고기자리의 입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모양새이지만([그림 3]), 신화로 보면 물병이 아니라 사실은 술병인 셈이다. 

 

 

물병자리에는 메시에 2(Messier 2)와 메시에 72 등의 구상성단이 위치해 있다. 구상성단(globular cluster)은 구형의 항성모임(성단)으로, 중력에 의해 단단히 묶여 구형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은 이들 구상성단의 모습은 천상의 보석들이 대규모로 우주에 흩어져 있는 듯한 환상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지름이 175광년인 이 성단은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큰 구상성단 중 하나로, 지구에서 약 55,000광년 떨어져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밝다.


또한 물병자리에는 행성상성운(planetary nebula)인 토성성운과 나선성운과 같은 아름다운 천체가 위치하고 있다. 행성상성운은 행성 모양의 성운이란 뜻으로, 별의 일생에서 마지막 단계에 이른 별이 남기는 잔해들이다. 수명이 다한 중앙의 별이 이온화한 가스를 바깥으로 분출해 고리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 모습이다. 토성성운은 형태가 태양계의 6번째 행성인 토성의 형태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운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분홍색과 파란색으로 빛나며 어둠 속에서 거품처럼 나타난다. 나선성운은 지구에서 가장 밝고 가까운 행성상성운으로 ‘신의 눈동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편 물병자리에서는 아주 화려한 에타 유성우를 볼 수 있다. 유성우는 혜성이나 소행성 같은 소천체들이 지구 공전궤도 근처를 지나면서 남긴 잔해물에 의해 생긴다. 에타 유성우는 4월 21일부터 5월 12일까지 보이는데, 마치 물병자리에서 방사되는 것처럼 보인다([그림 1] 참조). 특히 5월 5일 밤부터 기다리면 5월 6일 새벽 4시경에 밤하늘에서 최대의 에타 유성우를 볼 수 있다. 상황이 좋으면 시간당 최대 50개의 유성을 보기도 한다. 일반 유성우가 생성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치다.


동성애 코드로 그려진 가니메데 그림들
제우스에 의한 가니메데의 납치는 수 세기 동안 회화와 문학작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 중 하나였다. 시각예술에서는 신의 구애에 깜짝 놀라는 척하지만, 사실은 행복해 보이는 미소년부터 거대한 새에게 낚아 채여 곧 잡아먹힐 순간에 겁에 질려 울부짖는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양한 작품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남성의 육체미와 동성애 코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체로 가니메데는 날씬한 몸매, 아름다운 얼굴, 금발의 곱슬머리 소년 혹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르네상스부터는 도상학적으로 붉은색 망토가 추가되었다. 


가브리엘 페리에(Gabriel Ferrier, 1847~1914)의 그림에서는 가니메데가 여리고 여성스러운 몸매의 청년 모습이다. 화관을 쓴 청년이 오른팔을 독수리의 목에 얹고 왼팔로는 날개를 껴안은 채 그 품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같은 주제의 그림 중 가장 ‘납치 같지 않은 납치’ 장면일 것이다. 독수리 역시 맹금류라기보다는 백조같이 우아하게 날개를 펼치고 잠에 빠진 아름다운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본다. 배경도 환한 햇살이 가득 차 있어 밝고 경쾌한 분위기라 폭력적인 강탈의 주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독일화가 피터 에드워드 스토일링(Peter Edward Stroehling, 1768~1826)의 그림에서는 좀 더 깊숙한 사적 공간에서 내밀한 욕망이 야릇하게 분출되고 있다. 한 손에 술병을 들어 소년이 가니메데임을 암시하지만, 화가는 올림포스의 연회가 아닌 동굴 속의 허니문 장면으로 연출하고 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외진 동굴 속 부드러운 불빛이 서로 애무하고 있는 듯한 제우스와 가니메데를 비추고 있다. 동굴 밖 밤이 내린 숲에서는 잔잔한 냇물이 보름달을 비추며 고요히 잠들어 있고, 안으로 스며든 교교한 달빛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다음 두 작품은 제우스가 어린 소년 가니메데와 함께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미성년자와의 성적관계, 혹은 소아성애를 암시하는 그림들이다. 현대의 가치관으로 보면 매우 불편한 상황이다. 그러나 동성애에 대한 사회인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매우 달랐다. 고대 그리스에서 성인 남성과 소년 간의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승인된 문화였다. 동성애는 아테네·스파르타·테베·크레타 등 거의 그리스 전 지역에서 통용되었다.

 

특히 크레타에서는 소년을 납치하는 풍속이 만연했다. 귀족 남성이 점찍은 소년의 부모와 사전 협상한 후 납치해 성적인 관계를 맺고 소년의 후견인이 되었다. 여성은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어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필요했고, 진정한 사랑은 정신적으로 통하는 남자들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소아 혹은 미성년자 성 착취를 끔찍하고 잔인한 범죄로 보는 오늘날의 법체계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문화다.


안톤 라파엘 멩스(Anton Raphael Mengs, 1728~1779)는 독일 화가다. 로마에 가서 라파엘의 데생과 구성, 티치아노의 색채를 배워 자신의 독창적인 신고전주의 양식을 창조했고, 당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림에서는 곱슬머리와 검은 수염을 가진 제우스가 왕좌에 앉아 있다. 그의 어두운 피부색, 근육질 체격과 대조적으로 가니메데의 몸은 여리고 창백한 색채로 묘사해 두 캐릭터의 연령차를 강조한다. 멩스는 하늘을 배경으로 독수리가 가니메데를 강탈하는 진부한 전통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 손으로 소년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끌어안고 입맞춤하려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프란체스코 알바니(Francesco Albani, 1590~1660)는 17세기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 화가다. 안나발레 카라치의 조수로 많은 종교 제단화와 신화를 소재로 한 우화를 그렸는데, 우아하고 서정적인 화풍으로 인해 회화의 시인이라고 불렸다. 알바니는 납치 직후 제우스가 변장을 벗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후 가니메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욕망을 고백하는 장면을 그렸다. 알바니 역시 멩스와 마찬가지로, 아마도 한 손으로 소년의 얼굴을 떠받쳐 들고 키스하려는 순간을 묘사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소년 납치에 대한 일화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제우스와 가니메데 이야기뿐 아니라 펠롭스를 납치한 포세이돈,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동성애 이야기도 있다. 신화 속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신화는 고대인의 삶과 가치관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젊은 남자의 육체를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받아들였다.

 

성인 남성은 소년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취하면서 그를 최고의 남자로 교육하고 후원하는 것이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남성 동성애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을뿐더러 사회적으로 장려되고 찬양되기까지 했다. 고대 로마에서도 소년과 성인 간의 동성애에 대해 특별한 탄압을 하지 않았으나, 313년 밀라노칙령을 통해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허용되고부터는 동성애에 대한 처벌이 입법화되었다. 이제 동성애는 교회에 의해 죄악으로 간주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동성애자는 대체로 편견과 차별, 집단괴롭힘, 증오범죄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는 동성애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법적 권익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종교계에서는 여전히 동성애를 비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죄악시하지만,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한 시대와 사회가 성을 어떻게 보고 규정하느냐에 따라 성 윤리와 규범도 달라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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