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는 백수린 작가가 2016~2020년 발표한 소설 8편을 담은 소설집의 표제작이다. 이 소설집은 2021년 ‘백수린 문학의 한 절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일보문학상을, 단편 <여름의 빌라>는 2018년 문지문학상을 받았다. 문학평론가인 고(故)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1년 발표한 작가의 단편 <폴링 인 폴>을 읽고 “물건 되겠다 싶데”라고 높이 평가한 일화가 유명하다.
<여름의 빌라>는 주인공이 독일 여성에게 편지를 보내며 회상하는 형식이다. 주인공 주아는 대학시절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독일에서 한스와 베레나라는 중년 부부를 만나 친구가 된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메일을 주고받았고, 남편 지호가 독일 유학을 가면서 5년 정도 더 교류했다.
교살자 무화과나무를 보는 한·독 부부의 시각차
남편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주아 부부는 삶이 엉망이 됐다. 남편은 교수 임용 심사에서 여러 차례 탈락했다. 부부는 강사료가 적더라도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강의를 맡아야 했다. 치솟는 전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변두리로 이사를 거듭했다. 아이를 낳아 키울 경제적·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임신과 출산은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학문적 열정은 식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창때의 린덴바움 잎처럼 새파랗던 열정’도 시들고 두 사람은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린덴바움(Lindenbaum)’은 학창시절 배운 슈베르트 가곡에 나오는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를 말한다. 독일 등 유럽에서 가로수로 심어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다. 베를린에 가면 이 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린덴바움 아래)’이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 토종인 보리수나무가 있기 때문에 보리수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 린덴바움 잎이 보리자나무·찰피나무 잎과 비슷하다고 누군가가 ‘보리수’라고 번역해 생긴 혼선이다. 린덴바움은 피나무의 일종이기 때문에 ‘유럽피나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다 한스 부부가 자신들의 캄보디아 여행에 주아 부부를 초대한다. 주아는 한스 부부와 여행하면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던 독일시절, 그러니까 ‘린덴바움 잎처럼 새파랗던 열정’을 되찾을 것 같은 기대에 한스 부부의 초대에 응했다. 처음에 그들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서 주아의 마음 한편에선 불편한 마음이 싹튼다. 우기에 수상가옥 마을 등을 돌아보면서 가난한 현지인 일상을 관광하는 것이 불편하게 다가온 것이다. 주아의 남편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원에서 폐허를 뚫고 자란 거대한 나무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거대한 나무가 사원을 뚫고 자란 폐허를 당신들은 아름답게 바라봅니다. 나는 이제 사원들을 바라보는 것이 싫어졌어요. 돌무더기에 핀 이끼와 그 위로 부서지는 빛은 틀림없이 아름다웠고, 무너져 내린 것들 사이를 지탱하는 수백 년 된 나무를 보는 길은 황홀했지만, 그것을 태연하게 향유하는 행위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 한스가 여행이 좋았다고 하자 술을 좀 마신 주아 남편은 선진국인 독일 사람들은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없다며 반박하기 시작한다. 얘기 도중 한스가 (동남아 국민들이) 만족하고 살면 그곳이 천국이고 불만족하는 순간 증오와 폭력이 생긴다고 하자, ‘개소리’라는 말을 내뱉는 지경에 이른다. 여행을 어색하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주아는 베레나의 편지를 받는다. 상처를 주어서 미안하다는 내용과 함께 한스 부부가 여행 6개월 전쯤 테러로 딸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2016년 12월 베를린에서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 추종자가 대형 트럭을 몰고 시장으로 돌진해 12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한스 부부는 아픔을 잊기 위해 동남아 여행을 떠났고, 주아 부부를 초대한 것이다.
베레나는 편지에서 ‘긴 세월의 폭력 탓에 무너져 내린 사원의 잔해 위로 거대한 뿌리를 내린 채 수백 년 동안 자라고 있다는 나무. 그 나무를 보면서 나는 결국 세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라고 썼다. 주아 부부에게는 거대한 사원 나무들이 선진국들의 긴 세월에 걸친 폭력으로 비쳤지만, 테러로 딸을 잃은 한스 부부에게는 증오와 폭력 속에서도 살아야 하는 삶의 한 단면으로 보인 것 같다.
‘살벌한 나무’ 對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
동남아 사원의 폐허 위에서 자라는 ‘거대한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이들은 ‘교살자 무화과나무(strangler fig)’들이다. 이 나무들은 처음에 씨앗이 다른 나무줄기에 붙어 발아한 다음 땅을 향해 뿌리를 내린다. 뿌리가 땅에 닿으면 주변의 모든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 나무는 교살자 나무줄기에 점차 둘러싸여 말라 죽고, 교살자 무화과는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로 성장한다.
교살자 무화과나무는 이런 식으로 다른 나무의 표면에 붙어살다가 그 나무를 뒤덮는 속성이 있는 무화과나무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무화과, 천선과나무와 같은 속(屬·Ficus)이다. 반얀트리(Banyan tree)라고도 부르는 벵갈고무나무가 대표적인 교살자 무화과나무다. 벵갈고무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실내 식물로 많이 키우는 나무인데 고향에서는 거대한 나무로 성장한다는 것이 놀랍다.
교살자 무화과나무는 생태계의 악당만은 아니다. 최대 키가 45m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하기 때문에 태풍이나 홍수 때 숲이나 건물을 보호하고 풍부한 열매 등으로 숲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랑우탄이 먹는 전체식량의 25% 이상이 이 나무들 열매라고 한다. 소설에서 표현한 대로 이 거대한 나무들은 다른 나무를 죽이는 폭력적인 측면도, 숲을 유지하는 생명의 나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책 <극한 식물의 세계>).
교살자 무화과나무 중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건물을 뒤덮고 있는 나무들이다. 태국 아유타야 한 사원에서 뿌리가 불상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나무도 교살자 무화과의 일종이다. 이 나무 안내문에는 ‘보리수나무(Bodhi Tree)’라고 적혀 있는데, 흔히 열대·아열대지역에서 보리수나무는 인도보리수를 가리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