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5, 6세기는 삼국의 나라들이 제각기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이다. 삼국의 전성기는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최대 영토를 획득한 시대를 말한다. 백제는 375년 근초고왕, 고구려는 476년 장수왕, 신라는 576년 진흥왕 시절이다. 연천 지역의 은대리성, 호로고루성, 당포성은 모두 고구려의 남하정책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6세기 중엽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이후 임진강 유역으로 후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한탄강변에 있었던 성들은 신라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으며 이후 전략적 가치의 상실로 인하여 폐성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기도 연천군 지역에는 옛 삼국시대 성터가 여러 개 남아 있다. 한강유역과 더불어 이 지역은 옛부터 한반도의 군사적, 지리적 요충지이다. 한국전쟁 뿐 아니라 옛 삼국시대에도 이 지역을 차지하고자 많은 피를 흘렸던 곳이다. 한탄강와 임진강을 기점으로 적을 방어하기 용이한 지역에 성터가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은대리성, 당포성, 호로고루 성이다. 일시적으로 백제, 신라에 내어 주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고구려 소유의 성으로 추정된다. 연천군에 이러한 삼국시대의 성터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지 않았다. 역사에 관심이 많고 또, 이 지역에 자주 다녔던 필자 조차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갈색 표지판(문화재 임을 알리는 표지판 색)을 조금만 유심히 쳐다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차츰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경기도 연천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은대리성은 전곡읍 내에 있으며 당포성과 호로고루성은 전곡읍에서 약 30분 거리 이내에 위치해있다. 전곡읍내에 사는 주민조차 은대리성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은대리성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연천군보건의료원 주차장을 지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즉, 도로밖으로 노출이 되지 않고 보건의료원 내부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기에 그 접근성은 매우 제한적이다.
○ 은대리성(차탄천)/물거미 서식지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582-52 일대
은대리성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2006년 1월 2일 사적 469호로 지정되었다. 한탄강 북쪽 기슭, 장진천의 합류 지점에 형성된 삼각형의 하안단구 위에 축조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성곽의 전체 길이는 약 1,005m이고 동서 400m, 남북 130m이다. 성 내부의 면적은 약 7,000평 정도인데 일부는 경작지로 이용되고 나머지 부분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은대리성을 가기 위해서는 전곡읍 내 연천군 보건의료원 내부를 지나쳐야 한다. 그곳에 주차하면 바로 은대리성을 마주할 수 있다. 한탄강과 차탄천이 만나는 삼각형 지형의 언덕 위에 옛 고구려의 작은 성인 은대리성이 자리한다.
은대리성은 1995년 연천군 문화원에서 발간한 ‘향토사료집’에 의해 그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과 토지박물관 등에서 이곳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였고 2003년 단국대 매장문화재 연구소에 의해 정식으로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성의 평면은 삼각형으로 3면이 막다른 벼랑이다. 동쪽만 평지로 이어져 수비하기에는 좋은 요새지만 만약 성이 적군에게 점령당한다면 고립되어 싸우다 죽던지, 아니면 벼랑에 몸을 던져야 한다. 무조건 성을 사수하고 만약 성이 함락되면 성과 함께 최후를 맞으라는 왕이 주는 무언의 명령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현재 은대리성은 성벽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흡사 토성과도 같은 모습이다. 차탄천과 한탄강이 만나는 지점이 굽어 보이는 높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파주, 연천 방면에서 오는 적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적들이 어느 방향으로 침범을 하던 쉽게 관측이 가능하고 방어에 용이하다.
5, 6세기경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병사들은 이 절벽을 끝없이 오르고 또 막아내길 반복했을 것이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새하얗게 성을 뒤덮은 듯한 개망초는 그 당시 홀로 죽어간 병사들의 영혼이라도 깃든 것일까? 수많은 나비들이 그들의 영혼을 달래듯 쉴 틈 없이 날아다닌다. 가끔 들려오는 구슬픈 소쩍새의 울음소리와 차탄천의 물소리만이 정적을 깨곤 한다. 띄엄띄엄 서 있는 소나무들의 모습이 외롭게만 느껴진다. 전쟁의 상흔은 평화로운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구불구불 굽이쳐 흐르는 한탄강의 줄기는 아픈 상처를 피하여 나아가듯 흐르고 있다.
물거미 서식지는 세계적 희귀종인 물거미(argyroneta aquatica)의 국내 서식지로 천연기념물 제412호이다. 전곡읍 은대리의 차탄천변 습지 일대에 위치한다. 주변은 현재 대부분이 논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외의 지역은 군사 훈련장이 있다. 은대리성과 함께 연천군 은대리에 속해 있다. 은대리성과 매우 가깝다.
물거미는 공기 방울을 만들어 물속에서 거의 모든 생애를 보내는 독특한 생활사를 가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동물이다. 물거미는 전 세계에 1속 1종만이 존재한다. 북반구 유럽에 주로 분포하고, 아시아권에서는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한국 등지에 분포하는데, 국내에서는 1950년대 중반에 보고된 이후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5년 전곡읍 은대리 일대의 군 주둔 지역에서 물거미의 서식이 확인되었다. 2007년 개체 수 조사에 의하면 이 서식지 내에 약 4만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연천문화원).
○ 당포성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778 외)
당포성은 임진강 하류에서 중상류로 올라가는 수상 교통의 요지인 당개나루(당포나루)에 자리하고 있다. 육상 교통상으로도 양주 일대에서 최단 거리로 임진강을 건너 북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당포성은 2006년 1월 2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 면적은 35,174㎡이다. 당포나루로 흘러 들어오는 당개 샛강과 임진강 본류 사이에 형성된 높이 약 13m의 삼각형 절벽 위 대지의 동쪽 입구를 가로막아 쌓은 성곽이다. 1994년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고 2003년 이후 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하여 성의 구조가 어느 정도 밝혀졌다. 동쪽 성벽은 길이가 50m, 잔존높이가 약 6m이며 동벽에서 성의 서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200m에 달한다. 당포성의 배후에 있는 마전현(현재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 인근)은 개성으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양주분지 일대에서 최단거리로 북상하는 적을 방어하는 데에 꼭 있어야 할 성이었다. 또한 북진 시에도 강의 북안에 교두보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신라의 점령기에도 꾸준히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에서는 대부분 신라계인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석축이 있는 부분의 퇴적토와 성돌 사이에서 삼국시대 기와 조각을 포함하여 고려와 조선시대의 기와 조각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성 내부에서는 고구려 토기조각과 고구려 기와 조각들이 다수 출토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당포성은 ‘별을 보기 좋은 곳’으로 오늘날 연천 9경 중의 하나로도 지정되어 있다. ‘당포성 별빛 축제’라는 이름으로 2022년부터 매년 9~10월에 당포성에서는 별을 관찰할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
‘별’이라는 낭만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당포성 또한 이 지역을 차지하고자 하는 삼국의 치열했던 전투의 장소이다. 한탄강이 굽어 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삼면에서 다가오는 적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방어할 수도 있다. 성의 서쪽은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천애의 절벽이다. 적들은 절대 이곳으로 오를 수 없지만 자칫 성을 점령당했을 때에는 여느 다른 성들과 마찬가지로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당포성을 본 느낌으로는 당포성이 군사적 요충지임에는 동의하지만 적으로부터 성을 지키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장소라고는 말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침입하는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전열을 정비할 수 있고 보급도 가능하나 성을 지키는 병사들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오직 등 뒤에 절벽을 두고 적들과 싸워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포성은 삼화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캠핑장도 몇 군데 자리하고 있다. 동쪽 성벽은 아직 돌을 쌓은 모습이 남아 있지만 그 외 부분은 흔적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당포성은 별을 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포성 입구에는 별과 달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명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 호로고루 성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1260)
호로고루 성은 최근 4~5년 전 무렵부터 연천군의 주요 관광지가 되었다고 현지 주민에게 들었다. 9월이면 호로고루 성 앞 벌판에 ‘해바라기 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유튜버나 사진작가들은 호로고루 성 주변의 아름다운 일몰을 화면에 담으려 수없이 모여든다고 한다.
호로고루성 주변에는 임시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당포성이나 은대리성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은 벌판과 탁 트인 시야가 인상적이었다.
가을바람에 하늘하늘 춤추는 코스모스는 세련된 댄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 각자가 움직이는 듯하지만 멀리서 보면 비슷한 모습으로 함께 춤을 춘다. 조화롭다. 이처럼, 약속되고 계획된 시간보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삶의 시간 들이 훨씬 여유롭다.
길쭉하게 뻗어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서 있는 호로고루성의 해바라기는 연천의 코스모스와는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통일바라기’라 명명한 호로고루의 해바라기는 가을 저녁을 물들이는 붉은 노을과 어울리며 한 폭의 진한 톤의 유화를 만들어낸다. 그동안 이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건 말건 상관없이 자신들 나름대로 아름다운 장관을 매일 만들어 낼뿐이다.
호로고루 성 초입에는 거대한 광개토대왕릉비 모형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 중국에 가서 본 실제 광개토대왕릉비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구려의 전성기를 보낸 광개토대왕의 기상과 호기로운 모습이 연상되었다.
호로고루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 부근의 지형이 표주박, 조롱박과 같이 생겼다." 하여 호로고루라고 불린다는 설과 "고을"을 뜻하는 ''홀(호로)''와 ''성''을 뜻하는''구루''가 합쳐져 ''호로고루''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호로고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효종 7년(1656)에 편찬된 『동국여지도』이며 이 책에는 호로고루가 삼국시대의 유적임이 명시되어 있다.
1991년부터 2003년 사이 호로고루 성에 대한본격적인 학술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성의 형태는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는 임진강에 접한 현무암 천연절벽의 수직 단애 위에 있는 삼각형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성의 가장자리를 따라 재었을 때 약 400여m이고, 그중 남벽은 161.9m, 북벽은 146m이며, 동벽은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이 93m이고 성내부는 전체적으로 해발 22m, 성벽 최정상부는 30m 정도이다. 성벽 중 가장 높은 동벽 정상부와 서쪽 끝부분에는 장대(將臺)가 설치되었으며, 성으로 진입하는 문지는 동벽 남쪽을 제외하고는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위키백과).
앞서 밝혔듯이 은대리성, 당포성, 호로고루 성은 모두 30분~ 40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전곡 읍내에서 은대리성과 물거미 서식지 등을 돌아본 후 당포성을 거쳐 호로고루 성으로 이동할 것을 추천한다. 호로구루성 인근에는 경순왕릉과 고랑포구역사공원이 있다. 또 그 인근에는 황포돛배나루터가 있어 돛배를 타고 임진적벽을 관람할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조금 일찍 서둘러 나가면, 하루동안에 모두 관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간이 빠듯하다면 아예 당포성과 호로고루 성 주변만 여유있게 관광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조태원(에세이스트, j7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