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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과 문학] 서울 가로수도 개성시대

 

많은 도시가 가로수를 심어 저마다의 이미지를 만든다. 프랑스 파리는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개선문까지 마로니에(가시칠엽수)를 심었고, 독일 베를린은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등에 린덴바움(Lindenbaum; 유럽피나무)을 가로수로 심었다. 이탈리아 로마를 대표하는 가로수는 우산소나무다. 나무 꼭대기의 가지가 우산 모양으로 펼쳐져 자태가 아름답고, 지중해 여름 땡볕도 가려줘 관광지 가로수로 제격이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서울을 어떤 나무로 기억할까. 가로수로 쓰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나무가 아름다우면서 사람에게 해롭지 않아야 하고, 도시 매연과 병충해를 잘 견뎌야 한다. 또 가지가 간판을 가리지 않고, 나뭇잎이 넓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면 더욱 좋다.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절반 차지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는 비교적 이 조건에 잘 맞는 나무였다. 창경궁 주변 플라타너스는 일제강점기부터 서울의 영욕을 지켜보았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플라타너스’로 시작하는 김현승 시인의 시 ‘플라타너스’는 1953년에 나온 것이다. 1970년대 강남을 개발할 때 플라타너스를 대대적으로 심으면서 1980년대 초에는 플라타너스가 서울 가로수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88 서울올림픽’은 서울 가로수 분포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계기였다. 올림픽이 열리는 가을에 가장 보기 좋은 나무로 은행나무를 선정해 대대적으로 심으면서 이 나무가 단숨에 1위에 올랐다. 올림픽 시설이 많은 송파구는 지금도 가로수 2만 3,000그루 중 절반가량인 1만 1,000그루가 은행나무 가로수다. 은행나무는 서울시 시목(市木)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반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비중은 90%에 육박했다. 보통 사람들이 ‘가을’ 하면 붉은 단풍과 함께 노란 은행잎, 거리에 흩날리는 플라타너스잎을 연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나무는 삭막했던 서울 경관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금도 서울 가로수 30만 그루 중 절반 가까이를 이 두 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두 나무는 조금씩 문제가 있었다. 은행나무는 열매가 떨어지면 지저분해지고 악취가 났다. 수나무만 심으면 문제없지만, 15~20년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암수를 구분할 방법이 없었다. 임신부 배를 보고 아들딸 구분하듯, 가지가 위로 뻗으면 수나무, 아래로 뻗으면 암나무라는 속설에 따라 수나무를 골랐지만, 지금도 서울 은행나무 10만여 그루 중 2만 그루는 암나무다. 국립산림과학원이 2011년 DNA 성감별법을 개발해 지금은 수나무만 골라 심을 수 있다. 서울시는 점차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는 중이다.


플라타너스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성장이 빨라 가지치기를 자주 해야 하고, 봄에 꽃가루가 날리는 데다 흰불나방 등 벌레가 꼬이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이 같은 단점이 적은 느티나무와 벚나무가 대체 수종으로 많이 심어졌다. 이렇게 해서 2023년 현재 서울 가로수는 은행나무(35%)·플라타너스(16%)·느티나무(13%)·왕벚나무(12%)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팝나무·소나무 비중 급상승 중
이들 나무가 서울의 4대 가로수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나무들이 서울에 대거 진출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팝나무·회화나무·메타세쿼이아다.


서울시는 청계천을 복원(2003~2005년)할 때, 가로수로 이팝나무를 선택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해 온 나무인 데다 개화기간도 긴 편이고, 봄꽃이 들어가는 초여름에 꽃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팝나무는 꽃이 피면 꼭 이밥(쌀밥)을 얹어 놓은 모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다른 나무에 비해 병충해에도 강해 관리가 용이하고, 생육속도가 빠르지 않다 보니 간판 가림 등 민원 발생이 적어 상가·지역 주민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경북 구미 ‘박정희로’의 가로수도 이팝나무다.


회화나무는 조선시대 서원을 열면 임금이 하사한 나무로, 학자나무라고도 불렀다. 올림픽대로를 건설할 때 강변에 회화나무를 심었더니 모래땅인데도 잘 자랐다. 그 후 강남구 압구정역에서 갤러리아백화점까지, 서초구 반포대로와 사평대로, 마포구 서강로 등에도 이 나무를 심었다. 서울 가로수로 심은 나무는 아직 그렇게 크지 않지만, 고궁이나 서원 등에 가면 거대한 회화나무도 만날 수 있다.


서울시는 2000년대 초반 난지도의 자연생태계를 복원하면서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를 많이 심었다. 이때 심은 메타세쿼이아 숲은 현재 하늘공원의 명소로 떠올랐다. 이 나무는 백악기에 공룡과 함께 살았던 나무였는데 빙하기를 거치면서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1940년대 중국의 한 나무학자가 쓰촨(四川)성 동부 작은 마을에 있는 거대한 나무의 표본을 보고 메타세쿼이아임을 직감했다. 이 나무는 워낙 성장 속도가 빠르고 형태도 아름다워 전 세계로 보급됐다. 서울 강서구청 앞 화곡로, 양재천 가로수길도 메타세쿼이아로 유명하다. 현재 이팝나무는 인기가 급상승해 서울 가로수 9%를 차지할 정도로 늘어났고 회화나무(2%), 메타세쿼이아(2%)까지 ‘7대 가로수’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나무 가로수길도 늘고 있다. 서울 중구는 “소나무는 민족 정서를 잘 대변해 주는 나무”라며 명동역에서 광희문길까지, 롯데백화점 앞길 등에 소나무 가로수길을 조성했다. 중구의 경우 은행나무에 이어 소나무가 두 번째로 많은 가로수다. 최근 소나무 가로수길이 늘어나면서 서울 시내 전체적으로도 메타세쿼이아에 약간 못 미치는 숫자로 8위 가로수에 올라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남부지방에서 가로수로 심고 있는 배롱나무가 서울에서 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다. 다만 아직 중부지방에서는 월동을 위해 볏짚 등으로 배롱나무 줄기를 감싸 주어야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 이 같은 서울 가로수 변천사를 고려하면 가로수 종류와 그 굵기를 보고 해당 거리의 조성 시기를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도 있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 환경에 적합한 가로수들을 선정하고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비중을 점차 줄여 가는 수종 다양화 정책을 펴고 있다. 다양한 가로수길이 생기면 그만큼 서울에 개성 넘치는 거리도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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