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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칼럼] 문제학생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학생의 문제를 해결하자

병원은 병을 고치는 곳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살리는 곳에서 왜 하필 죽음의 장례식장을 운영하는지 참 이상합니다. 우리는 장례식장을 겸비한 병원의 편리함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상반된 두 곳이 한 장소에 공존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지요. 편리하기는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곳에서는 그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은 일본에서도 병원과 장례식장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물론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니 아예 같은 장소에서 마무리까지 다 하고, 문상객이 쉽게 찾아올 수 있고, 이미 24시간 운영되는 곳이어서 밤새는 삼일장을 치를 수 있다는 등 편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아마 한국에는 수요자의 ‘원스톱 서비스’라는 편리함과 공급자의 상당한 수입 이윤이 딱 맞아떨어진 결과일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빨리빨리’ 문화의 대명사라고 하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병원’의 본분이 퇴색되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처럼 이상한 게 학교에도 있습니다. 학교는 가르치는 곳입니다. 학교는 교육자가 중심에 우뚝 서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학교는 일과를 교육적 시각에서 교육적 방법으로 처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왜 변호사와 경찰 같은 법조인들이 상주하고 개입하는 곳이 돼버리는지 참 이상합니다. 왜 자꾸 학교 문제를 법가에 외주를 주고 의존하는지 속이 상하고 영 못마땅합니다.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학내에서 벌어지는 사건 중 일부 폭력 행동과 악성 민원은 교육철학과 방법으로만 처리하기에는 너무 벅찬 면이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문제가 학교 울타리 내에서 발생했다 하더라도 흔히 학교 밖에서 잉태한 문제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외부인에게 의존하고 해결책을 그들에게 맡기는 게 편리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행여 교육으로 변화를 일구어낸다는 교육자의 철학과 신념이 훼손될까 께름칙하고 불안합니다. 이러한 학교현상에 익숙해진 나머지 교육자와 법률가가 학교를 공동 운영하는 게 정상으로 보이게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 이상한 모습만큼은 외국을 닮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경우는 이미 늦었습니다. 미국인은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 버렸고, 더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대도시 학교에는 권총을 찬 경찰이 상주하는 모습이 흔합니다. 학교는 인근 법무법인과 계약을 맺고 수시로 법률 자문을 받습니다. 규모가 큰 학교는 아예 전담 변호사를 고용하고 학교 일에 깊이 관여시키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기에 앞서 법률가가 검토하고 최종 승인합니다. 학교에 ‘덕치’는 점차 사라지고 ‘법치’가 중앙으로 비집고 들어온 셈입니다. 1970년대부터 급증한 학교폭력 문제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미루고 뒤치다꺼리만 하다 보니 이 지경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타임지 커버를 장식한 뉴스를 보면 학교폭력 현상에 대한 미국인의 견해가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99년도 커버 뉴스는 학교폭력 가해자를 ‘옆집에 사는 괴물’이라며 아이를 악마화하였습니다. 2000년도에는 ‘이혼이 아이에게 미치는 악영향’이란 주제의 뉴스가 커버를 장식하였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아이가 4명 중 3명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소개하며, 가정이 안정적으로 지속되지 않는 어두운 실태를 염려했습니다. 이 현상을 아이에게는 ‘가정중단’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수 있겠습니다. 2006년에는 학업중단 학생이 4명 중 1명이라는 수치를 지적하면서 나라의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였습니다. 가정중단이 학업중단이라는 현상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2012년 커버 뉴스는 애착손상을 지적하였습니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으로 인하여 아이의 정서적 발달에 문제가 생기고, 이로 인해 행동조절을 잘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행동조절 실패의 결과에는 당연히 다툼과 폭력적 행동이 포함됩니다.

 

학내 다툼이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험악한 학교 분위기의 부작용은 예상치 못한 부분에 나타납니다. 2014년도 타임지 커버는 ‘rotten apple(상한 사과)’이라는 기사가 차지했는데, 학교에 실력 없는 교사가 너무 많다는 실태를 고발한 것입니다. 본래는 상한 사과 하나가 광주리에 담긴 모든 사과를 상하게 한다는 개념으로 문제학생 한 명이 반 전체를 망가트린다는 비유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는 이 비유를 학생이 아니라 교사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즉 실력 없는 교사로 인하여 교육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유능한 인재가 교직을 기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교육 대신 법리가 중심이 된 교육현장이 한몫했을 것입니다. 대다수 OECD 국가의 경우, 한국과 정반대로 교사의 평균 역량이 전체 대졸의 평균 역량보다 한참 밑입니다. 교육자의 역량이 국민의 평균치보다 못하다면 어떻게 더 나은 다음 세대가 양성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미래가 암울한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이리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한국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한국은 외국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좀 다른 길, 훨씬 더 현명한 길을 선택할 수는 있겠습니다. 더 현명한 길은 조금 힘들더라도 단기적이고 지엽적인 대처 방안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교육변화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바로 이러한 마스터플랜을 작성하라고 있잖아요. 겨우 수시나 정시 비율을 조정하라고 있는 게 아니지요.

 

국가교육위원회는 아이들을 골병들게 하는 입시 제도를 조정하는 게 아니라, 정지하고 폐지해야 합니다. 정답 있는 문제풀이 위주 교육은 중단하고, 방정식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도전하는 교육을 중시해야 합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국·영·수·사·과 위주로 디자인된 교과과정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초·중·고를 거치면서 어떠한 교육 경험을 할 것인지를 디자인해야 합니다. 수업내용과 범위와 진도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호기심·모험심·즐거움·꿈과 비전을 지니도록 교육 경험 결과물을 섬세하게 그려내야 합니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이루어 내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와 사대를 새롭게 구축해야 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으로 파격적으로 변하고 있는 교육현실에 맞추어 예비교사 준비과정이 완전히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예비교사에게 학문적 이론은 조금 줄이고, 현장에 절실히 필요한 학생지도 기술, 학부모 면담 기술, 갈등 관리 기술, 팀빌딩 기술, 소통 기술, 리더십 기술 등 사회·정서적 역량을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사람 사이 갈등문제는 논리와 이성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90%는 감정 때문에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감정을 배제해서는 애초에 감정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감정을 개입시켜야 갈등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즉 감정은 문제해결의 걸림돌이 아니라 쐐기돌인 셈입니다.

 

효과성이 검증된 학생들을 위한 관계조율 기술들이 이미 존재합니다. 따라서 사회·정서적 역량을 갖춘 교사가 학생들에게 감정을 조절하고, 갈등을 관리하고, 서로 소통하고, 화해하는 능력을 갖추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학교와 교육청에 변호사와 경찰이 주둔해 있을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쉬운 과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 차원의 위원회를 만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해내라고 법까지 뜯어고쳐서 설립한 위원회입니다. 부디 기대에 부응하길 바랍니다.

 

학교는 문제학생들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법치나 정치가 아니라 교육과 덕치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권이 회복되고 교육자가 학교와 교육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니까요. 그래야 아이가 올바른 지도를 받고 인재로 성장하게 될 테니까요. 이상한 일이 정상처럼 보이고 여겨지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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