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마우스를 움직이자, 책상에 놓인 럭비공만 한 조명기기가 교실 천장을 오색 빛으로 수놓는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색깔도 방향도 마음대로 가능하다. 13명의 학생이 강사의 지시에 따라 각자 조명을 천장으로 쏘아 올리자 화려한 쇼가 금방이라도 열릴 듯하다.
지난 1월 15일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경기공유학교 무대연출 수업시간. 성남지역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수업은 무대공연에 필요한 조명·음향·연출 등을 배운다. 단순히 배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안무도 짜고, 연출도 하면서 실제적 체험을 한다. 총 16시간으로 진행되는데 오늘이 세 번째 시간. 모든 수업이 끝나면 지역에서 밴드활동을 하는 동아리를 초청해 실제 연출도 보여줄 예정이다.
장래 꿈이 방송국 PD라고 밝힌 정여령 학생(불정초·6)은 “5학년 때 학교 방송반 모집에서 떨어져 아쉬움이 컸다”며 “중학교에서는 반드시 방송반에 들어가고 싶어 공유학교 프로그램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조명이나 음향기기를 직접 만져 보는 기회가 많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경기공유학교는 지역사회와 협력을 기반으로 학생 맞춤교육과 다양한 학습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 밖 학습프로그램. 학생 한 명 한 명의 다양한 교육요구를 학교가 모두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역사회 다양한 전문가를 활용, 학생들에게 필요한 맞춤형교육을 하는 시스템이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에서 지역실정과 학생 수요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운영된다. 로컬리티에 기반한 지역 학생 맞춤교육이다 보니 교육내용은 물론 이름도 다 다르다. 예컨대 안성은 ‘안성맞춤 공유학교’, 파주는 ‘파주미파솔 공유학교’, 시흥은 ‘시작부터 흥미진진 시흥 공유학교’ 등 지역 특성을 살렸다. 또 레저산업이 발달한 가평은 여름이면 수상레저학교가 열린다.
만화의 도시 부천은 웹툰 작가들이 참여한 웹툰 공유학교가, 하남과 광주 등 지역 오케스트라 문화가 발달한 지역에서는 오케스트라 공유학교가 운영되는 식이다. 느린학습자나 다문화학생을 위한 공유학교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어 학교교육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부분을 보완해 준다. 공유학교 프로그램 중에는 고등학교 학점으로 인정되거나 공유학교 과목이 고등학교 교과목으로 편성이 되는 사례가 있을 정도다.
이와 더불어 공원형 공유학교는 경기도교육청이 올해부터 적극 추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현재 이천에서는 SK에서 반도체 공유학교를 공원형으로 운영해서 연구원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도 용인에 반도체 공유학교를 공원형으로 운영한다. 올해는 기업이나 단체가 공원형 공유학교에 적극 참여하도록 확대한다는 게 경기도교육청 복안이다.
공유학교의 또 다른 강점은 소규모학교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용인 백암면의 경우 학생수가 적어 축구수업을 하고 싶어도 11명을 채우지 못하는 학교들이 제법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거점학교를 만들어 인근 5개 학교 학생이 방과후에 모여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제는 축구는 물론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가능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지역이 넓어 학생들이 통학에 어려움을 겪자, 지역 택시기사들이 나서 학생들을 실어 날랐다. 일종의 공유택시인 셈이다. 한 관계자는 “지자체와 교육청,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 지역 아이들에게 좋은 프로그램들을 제공해 준 대표적 사례”라고 전했다.
지난해 경기공유학교에 참여한 학생만 무려 6만여 명. 운영된 프로그램 수는 3,241개에 달한다. 참여 학생들의 프로그램 만족도는 95.2%에 이른다. 공유학교 프로그램이 학생과 학부모 등 지역사회 수요에 기반해 마련되는 데다 일회성 체험형이 아닌 12차시 이상의 깊이 있는 학습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학교 수업에서 하기 어려운 과학실험 등도 공유학교에서 실시돼 교사들의 호응도 매우 높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경감에 경기공유학교가 큰 도움을 준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드론수업의 경우 신청이 1분 만에 마감되는가 하면, 영어나 수학수업에 수요가 높은 지역에서는 과목이 개설되기 무섭게 모집정원을 넘긴다.
학부모들은 공유학교가 학생들의 공부습관을 길러주고 부족한 교과목을 보완해 줄 뿐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고 만족해했다. 자녀를 공유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한 학부모는 “아이가셋이다 보니 학원비가 너무 비싸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공유학교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공유학교와 늘봄학교를 통합해서 학교 안과 밖으로 연결되는 촘촘한 교육돌봄시스템, 즉 늘봄공유학교를 본격적으로 운영한다. 이는 지역 내 유휴교실을 활용해 인근 학교 학생들이 다양한 늘봄프로그램과 돌봄교실을 함께 이용하는 새로운 늘봄학교 모델이다. 대표적 케이스가 성남오리초등학교에 마련된 경기형 늘봄공유학교다. 이곳에서는 과학마술·골프·사물놀이·리듬체조·뮤지컬·프라모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인근 26개 초등학교 259명이 10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1995년 개교한 오리초는 한때 26학급 규모의 제법 큰 학교였으나, 지금은 학생수 감소로 단 6학급만 운영하는 소규모학교가 됐다. 5층 건물에 교실만 40여 개에 이르고 있지만, 텅 빈 교실이 많아 아예 한 개 층은 통째로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관리에 어려움이 컸지만, 무엇보다 학생수가 적어 방과후프로그램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수강인원이 적다 보니 좋은 프로그램들이 폐강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늘봄공유학교가 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학교시설은 깨끗하게 새 단장됐고 AI 학습코칭, 요리, 뮤지컬 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을 비롯 쾌적한 학부모 대기실까지 마련됐다.
공유학교가 되면서 외부에서 학생들이 몰려오고 학교에 활기가 넘쳤다. 100명이던 전교생 수가 공유학교 이후 늘봄학교 참여 인원을 포함 360여 명으로 늘었다. 김기범 교장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자연스레 교류가 확대되다 보니 학생들이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등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늘봄공유학교 운영을 통해 오리초는 물론 인근 학교들도 학부모 만족도가 높아진 것 같다”며 “정규 교육과정은 물론 돌봄기능까지 강화돼 우리 공교육이 좀 더 새로워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