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가르치고 지원하면 뭐 하나. 졸업하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 버리면 우리 세금만 낭비한 것 아니냐’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다문화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 학교교육에 적응하려 애쓰고, 자부심을 갖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건실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믿습니다.”
다문화학생 20만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초·중·고교생 526만여 명 가운데 다문화학생은 18만여 명으로 전체의 3.5%를 차지한다. 해마다 다문화학생은 늘고 있어 2025년에는 20만 명에 다다를 것이란 전망이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동구로초등학교는 우리나라 대표적 다문화학교로 유명하다. 전교생의 70%가 중도입국한 다문화학생들이다. 국내에서 태어난 다문화학생까지 포함하면 80%에 이른다.
이 학교 김경동 교장은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선입견 없는 교육’을 가장 강조했다. 지난 1년 교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발전 가능성이 높고, 바른 심성을 가진 학생들인지 깨달았다고 했다. 중국 동포를 부정적으로 다룬 영화 때문에 거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막상 학교에서 만난 다문화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바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이라고 칭찬했다.
전교생 70%가 다문화학생 … 특별학급 증설 절실
교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허성무 교사는 처음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10여 년 교직생활을 하면서 다문화학생을 만난 적이 없는 그로서는 잘해 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주변에서 수업시간에 중국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말도 들려와 중국어 학원을 다닐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개학 후 정확히 일주일 만에 든 생각은 ‘똑같네’ 였다. 한국어 구사가 서툴다는 것 외에는 학생들끼리 너무 잘 어울렸다. 누가 한국학생이고 다문화학생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깨달았다. “아이들은 장벽이 없는데 나 스스로 장벽을 쌓은 것은 아닌지 반성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그 이후 허 교사는 한국학생이건 다문화학생이건 똑같이 대했다. 교육과정을 학급 특성에 맞게 재구성하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만 집중했다.
학교 차원에서도 선입견 해소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학생자치회를 중심으로 차별금지 캠페인을 벌여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기를 장려했다. 이를 잘 지킨 학생에게는 소정의 간식을 제공하고, 차별금지 다짐 포토존을 설치해 사진을 찍으면서 동기를 유발했다. 이 외에 친구나 선생님에게 칭찬 또는 격려의 글 남기기 이벤트를 통해 학교생활에서 차별없는 생활이 체화되도록 했다.
문화 다양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교육활동도 병행했다. 동구로초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을 대상으로 여러 나라의 인사말과 문화유산을 알아보는 문화 다양성 교육을 실시한다. 학생들에게 문화 다양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해 보는 시간을 제공해 우리 문화와 다른 문화를 모두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내면화하는 데 힘썼다.
문제는 언어장벽. 중도입국한 다문화학생들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언어다. 언어소통이 안 돼 수업을 못 따라오는 학생을 줄이기 위해 특별학급을 두고 다문화학생들에게 국어와 사회를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특별학급은 동구로초가 가장 역점을 두는 교육활동이다.
현재 1개 학급을 운영하는데 중도입국하는 학생들이 늘어 수용인원을 넘기는 바람에 학교 측은 고민이 깊다고 한다. 충분한 기간을 두고 언어를 비롯 우리 교육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몰려오다 보니 학급당 학생수 상한선을 넘겨, 준비가 덜 된 학생들을 일반학급으로 보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전병희 교무부장은 “언어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충분히 교과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아이들이다. 특별학급에서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생길 때까지 지원해 주고 싶은데 현실적 한계 때문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구로초가 시험을 치를 때 지필평가를 최소화하는 대신 과정중심평가를 주로 하는 데에는 이런 말 못 할 속사정도 담겨있다.
전 교무부장은 “예산 부족 탓도 있지만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줄어드는 교원 정원의 영향이 커 특별학급 증설에 어려움이 있다”며 교육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이중언어·세계시민교육 등 한국학생들이 얻는 것 많아
교사들은 또 다문화학생들에게 우리가 일방적으로 베푼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외국어 습득과 함께 세계시민의식 함양 등 한국학생들이 얻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고 입을 모은다. 김 교장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더불어 사는 삶을 일찍부터 체험하고 이를 통해 세계시민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소중한 토양이 되고 있다”면서 “어려서부터 다양한 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학생 중에는 중국에서 온 다문화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학생들이 제법 있다. 이들 중에는 ‘꼬마 통역사’로 불리는 학생들이 있는데, 학급에서 우리말이 서툰 학생들과 일반 학생 사이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한다.
동구로초가 개설해 운영하고 있는 이중언어교실도 다문화학교라는 특성을 살려 세계시민역량을 기르고 언어교육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중언어교실 프로그램은 방과후에 중국어·한국어교육 및 다문화 동아리(다문화 공작소) 활동 등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지난 학기 총 80명이 참여한 이중언어교실은 중국어에 관심이 많고 심화된 내용을 배우고 싶어 하는 한국학생들과 한국어를 더 공부하고 싶은 중국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동구로초는 서울 시내 어느 학교보다 분위기가 좋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의 신뢰가 워낙 깊다 보니 민원 한 건 찾아볼 수 없다. 학교폭력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정화 교감은 “학부모들이 학교를 이처럼 고마워하는 경우는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다”면서 “학부모회라도 열리는 날이면 연차를 내서까지 참여하는 열의를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저분들 실망시켜서는 절대 안 되겠다. 열심히 가르쳐 좋은 시민으로 키워내야겠다”는 사명감이 든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학교 전적으로 신뢰 … 민원 없고 학폭 없어
한국학생과 중국학생이 섞여 있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다. 한국과 중국이 국제경기를 치른 다음 날이면 학급 분위기가 미묘해진다는 것. 그럴 때면 교사들도 어느 한쪽이든 자극하지 않으려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잠시, 학년이 오를수록 분위기는 반전된다.
1·2학년 다문화학생에게 ‘우리나라’ 그러면 10명 중 8명은 중국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5·6학년쯤 되면 같은 질문에 대한민국이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아이들 성장에 맞춰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는 교육을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사회에 적응하고 동화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동구로초는 내년부터 대대적인 단장에 들어간다. 학교 증·개축에 착수, 다문화학생 교육은 물론 지역사회의 교육거점센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 교장은 교장실 벽면에 걸린 학교 조감도를 가리키며 “다양한 시설 인프라를 갖춰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안전하게 다양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동구로초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동구로초가 소프트웨어는 물론 하드웨어까지 새롭게 단장해 다음 세기를 준비하는 명실공히 최고의 학교로 거듭날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