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대다. 변화는 너무나 빠르고, 우리의 일상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제 정세는 불안정하며, 경제적 격차는 심화되고, 기술 발전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트럼프 2.0시대, 전쟁과 기후위기,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 등 모든 것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불안 자체가 공동체를 해체하고, 우리가 함께 미래를 상상하는 힘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희망을 품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그런데 유아교육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중심에 두고 교육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가?
유아교육과 돌봄의 관계
유아교육에서 돌봄(care)과 교육(education)은 분리될 수 없다. 기본과정과 방과후과정의 돌봄 분리 주장, 0~2세와 3~5세 연령별 이원화 주장들도 결국 영유아를 제도와 정책에 알맞게 돌봄과 교육을 효율적으로 배치하자는 주장이지, 유아교육에서 교육과 돌봄을 무 자르듯이 가르겠다는 편협한 시도라고 보기 어렵다. 유아교육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정체성이 동일시와 분리의 균형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한 아이가 ‘나’를 인식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그러하듯, 유아교육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하며 진화해 왔다. 유아교육과 돌봄도 서로를 포용하고, 동일시와 분리를 거듭하고,불안한 갈등을 일으키면서, 지금까지 동행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유아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유보통합, 무엇을 위한 정책이었나?
2022년 유보통합 논의가 본격화되었을 때, 현장은 열광했다. 단순한 보육과 유아교육의 행정적 통합을 넘어, 교육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정부는 ‘출발선 평등’을 내세우며 유아교육과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후 2023년 12월 교육부로의 부처 통합이 이루어졌지만, 정책은 점점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는 목표의 불명확성이었다.
유보통합은 행정적 통합인가, 아니면 교육개혁의 핵심 정책인가? 중앙정부의 통합이 곧 유보통합의 성공인가, 아니면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시작점인가? 유아교육과 보육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핵심인가, 아니면 모든 운영 시스템을 일괄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목표인가?
정부는 한 번에 모든 것을 통합하려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자체 수준에서까지 이를 확장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운영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일 수 있었지만, 무리한 접근방식이 정책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쯤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유보통합의 성공인가?”
정책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교육개혁 또한 그렇다. 만약 정책의 1/4만 달성해도 성공이라고 인정했다면, 이후 논의를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불가능에 도전했고, 결국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제, 유아교육,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유보통합 논의는 한국 유아교육의 역사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필자는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며, 유아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고 싶다.
이제는 새로운 인간의 내면적 성장과 깊은 의미를 탐구하는 교육을 통해 보다 포괄적이고 열린 교육철학을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가치 속에서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사랑의 교육을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핵개인·다문화·다종교 사회에서 유아교육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유아교육이 종교적 가치를 넘어설 때, 보다 넓은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공동체가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유아교육의 본질적인 방향이 되어야 한다.
희망의 교육개혁을 위하여
우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이 교육을 시장화하고, 경쟁을 강화하며, 공동체의식을 약화시키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교육이 불평등을 조장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교육이 신뢰를 잃고,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국가책임교육의 부재 때문이다. 역대 정부들이 매번 국가책임교육을 강조해 왔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새로운 정부를 꿈꾸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 되어 버린 ‘국가책임교육’인 것이다. 유아교육이 다시 희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유아교육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돌봄과 교육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본래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둘째, 유보통합의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일괄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유아교육의 형평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셋째, 희망의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을 넘어, 민주적이고 공공성이 강화된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넷째, 유아교육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보수성을 넘어서, 새로운 영성교육과 다문화적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 다섯째, 불안을 넘어 희망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이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확신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육이 다시 희망이 되려면
불안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믿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 그 출발점은 유아에 대한 사랑, 유아교육에 대한 희망이다. 희망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희망이란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것이 의미 있다는 깊은 확신이다. 유아교육이 불안과 위기를 넘어 희망이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유보통합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유아교육의 미래를 위한 혁신적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유아교육을 한다’는 것은 유아를 교육과 돌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우리 사회를 다시 연결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유아교육의 방향을 다시 설정할 기로에 서 있다. 이제 유아교육을 진짜로 ‘국가책임’으로 해보자.
유아교육단계를 공교육제도 내에서 제대로 인정하고, ‘기초교육체제(basic early education system)’로 정립하자. 유아교육을 제대로 ‘국가책임’으로 하려는 정당이 있다면, 다음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믿어본다. 그리하여 다시 희망해본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깊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희망은, 아이들에게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