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네팔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평을 듣는 곳이다. 나는 대학 시절 네팔에 세 번 방문했고, 그중 한 번은 8개월 넘게 머무르며 도시·산촌·평야는 물론, 깊은 계곡까지 다양한 네팔의 지형을 느끼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주민들과 어울려 지내는 동안 네팔 사람들의 순한 성품과 향신료 가득한 음식, 그리고 히말라야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네팔에 가게 되었다. 동행인은 네팔이 처음이었기에 대표적인 여행지인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중심으로 일정을 계획하였다. 1월의 네팔 여행은 어디로 가면 좋을까?
따뜻한데 추운 곳? 수공예 장인들의 나라에서 쇼핑은 못 참지!
네팔은 우리나라보다 낮은 위도에 위치하여 카트만두는 서울에 비해 낮 기온은 약 15℃ 정도 높고, 밤 기온 역시 다소 온화하다. 대체로 한국 초봄 날씨보다 조금 더 따뜻하다고 할 수 있다. 출국 당시 기모 맨투맨과 패딩 점퍼를 입은 채로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하면 후텁지근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경량패딩으로 갈아입은 뒤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낮 기온만 고려해 인천공항의 ‘코트룸 서비스’에 옷을 맡기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네팔은 난방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많아 방한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네팔 여행을 시작할 때 카트만두의 ‘타멜 거리’ 방문을 추천한다. 타멜 거리는 좁고 미로 같은 골목길로 이루어진 관광 상업지구로 대부분의 여행객이 들르는 필수 코스 중 하나이다. 게스트하우스와 여행사가 밀집해 다양한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고,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축제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며, 다양한 수공예품과 아웃도어 의류 전문점도 많아 방한용품을 구매하기에 적합하다.
나는 여행할 때 여행지의 매력이 담긴 기념품을 꼭 구입하는 편인데, 이곳에서 귀마개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야크 헤어밴드와 캐시미어 목도리를 구매했다. 야크는 주로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서 키우는 가축화된 동물로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의 이름에도 쓰인다. 야크 털로 만든 제품은 의외로 매우 부드럽고 따뜻했다. 네팔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소재가 돋보이는 아이템은 착용만으로도 현지인처럼 보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소품샵 구경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카트만두에 수많은 크래프트샵(craft shop)이 있으니, 지도 앱에서 몇 군데 검색해서 들러보는 것도 좋다. 타멜 거리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의 랄릿푸르 지역은 공예 문화가 아주 발달한 지역이라 상점이 많다. 그릇·가구·의류·생활소품과 은으로 만든 장신구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나는 저녁에 조용한 환경을 선호하여 랄릿푸르 자왈라켈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랄릿푸르의 여러 상점에서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특히 ‘Milikara handcraft’ 상점의 섬세하고 소박한 목공예품에 반해 여러 제품을 구매해 잘 쓰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네팔의 전통과 일상
네팔은 전통적으로 힌두교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전체 인구의 약 81% 이상이 힌두교 신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활동이 주로 종교시설 내에서 이루어지는 데 비해, 네팔에서는 종교가 생활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일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네팔의 거리, 골목 모퉁이, 공원, 그리고 가옥의 대문과 차량까지 힌두교의 대표적인 종교 상징과 색채로 장식되어 있다. 시민들은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며 집 근처에 있는 돌·탑·사원과 같은 곳에서 붉은색 가루를 묻혀 이마 가운데 ‘티카’를 찍는다. 이는 제3의 눈을 상징하며 주로 축복의 의미이다. 사원과 같은 종교시설은 근린공원처럼 이용되며, 시민들이 탑에 앉아 쉬거나 누워 있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박타푸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중세 말라 왕국 시대의 건축물을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랄릿푸르 자왈라켈에서 차량으로 약 20분 거리이며, 사설 미니버스·마이크로버스·툭툭이 등 다양한 대중교통 수단이 있어 골라 타는 재미가 있다. 주로 현금으로 요금을 내며, 툭툭이와 같은 삼륜차는 운전사에게, 승합차 및 버스는 요금 징수원에게 낸다.
거리에 따라 요금이 상이하고 가끔 요금 징수원이 자체적으로 외국인 가격을 적용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변의 눈치를 잘 살피는 편이 좋다(체감상 네팔인들은 대체로 곤경에 처한 외국인을 잘 도와주는 것 같다). 나는 미니버스를 타고 갔는데 승객을 많이 태우기 위해 좌석을 개조하여 입석 승객도 많이 있었다. 대부분의 승객이 티카를 하고 있었고, 버스 내부에는 화려한 장식과 함께 시바(파괴의 신)·가네슈(번영의 신)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
‘박타푸르 두르바르 스퀘어’에 도착하여 외국인 가격으로 1,500NPR에 입장권을 구매하여 관람하였다. 박타푸르는 유적지이면서도 주민들이 실제 생활하는 곳으로, 살아있는 역사 공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토기를 만드는 주민들이 있었는데 ‘더히(요거트)의 왕’으로 불리는 ‘주주더히’를 이 토기에 담아 판매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막걸리 맛이 다르듯, 네팔의 더히도 지역마다 특색이 있으며 박타푸르의 더히가 맛이 진해 현지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더히 중 하나로 꼽힌다(나의 동행인은 평소에 요거트를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행 내내 주주더히를 빠뜨리지 않고 즐겨 먹었다). 대규모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유적지가 많았는데, 이는 2015년 7.8 규모의 강진으로 피해를 본 건축물 복구 작업이었다.
네팔은 인도-유라시아판이 만나는 지진대에 위치해 크고 작은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다. 2015 네팔 대지진을 겪은 지인이 내게 “우리가 든든히 딛고 서야 할 ‘땅’이 흔들리니 혼란이 온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이 있었으리라 짐작해 보았다. 그리고 그 땅에서 여전히 삶을 이어가는 주민들을 보며, 속히 복원이 완료되고 새로 복원된 건축물들이 더욱 안전하게 지어지기를 기원했다.
히말라야와 더 가까이, 포카라
카트만두에서도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건물이 없는 곳에 가면 히말라야산맥을 부분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지만, 네팔의 제주도(제주도는 휴양지의 대명사로 통하는 것 같다)라 불리는 ‘포카라’에 가서 히말라야를 더 가까이에서 느껴보기로 했다. 포카라는 히말라야산맥에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 페와 호수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는 버스·항공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버스를 타면 풍경을 관찰할 수 있고, 항공을 이용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히말라야를 느끼려면 산을 올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네팔까지 왔는데 트레킹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나는 체력 이슈로 일반적인 장기간 트레킹은 못 하지만, 네팔의 자연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칸데’에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1,920m)까지의 미니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약 1시간 정도의 가벼운 등산 코스로 생각하면 된다(캠프의 짐을 옮기는 현지인들은 슬리퍼를 신고도 매우 빠르게 이동한다). 마을과 경사로를 지나면 평평한 지대에 너른 마당을 가진 숙소가 등장한다.
마당에는 네팔 전통 그네가 있어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라면과 백숙을 먹을 수 있었다(간간이 한식을 먹어줘야 하는 것 같다). 저녁 기온은 0℃ 내외였고 숙소는 번듯한 실내였음에도 난방이 없어 인생에서 겪어본 가장 추운 밤이었다. 다음날 숙소 옥상에 올라가 일출과 함께 안나푸르나산맥을 바라보았다. 자연의 장엄함이 느껴져 창조주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지난밤의 추위를 이겨낼 가치가 충분한 풍경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내려와 가볍게 아침을 먹고, ‘사랑코트’(1,592m)로 이동했다. 이곳도 안나푸르나산맥을 관찰할 수 있는 뷰포인트로 차량으로 중간 지점까지 가고 도보로 30여 분 언덕을 오르면 된다(현재는 케이블카가 정상 가까운 곳까지 운행한다고 한다). 이번이 사랑코트에 네 번째 방문이었는데, 그중 가장 아름다웠다. 기온 역전 현상으로 골짜기에 거대한 운해가 형성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팔이 ‘구름 너머, 산 위의 숨겨지지 않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며 다시 한번 네팔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포카라에서는 트레킹 외에도 패러글라이딩·래프팅, 페와 호수 나룻배·카누 등의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사랑코트 근처에서 출발해 앞에는 페와 호수가, 뒤로는 히말라야산맥이 보이는 패러글라이딩은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도 타보았는데, 정말 신나지만 약간의 울렁거림이 있었다. 함께 타는 전문가인 탠덤 파일럿이 내게 구토봉투를 주었는데 다행히 하지는 않았다(공중 구토를 피하고 싶다면 멀미약을 먼저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페와 호수 근처에 숙소를 잡고 허기를 달래려 달밧떨까리(우리나라의 백반과 비슷한 일상 식사)와 버팔로 짜우멘(버팔로 고기를 넣은 볶음면)을 먹었다. 네팔은 밥과 반찬을 리필해주는 문화가 있어, 대부분 식당에서 고기 외의 반찬을 무료로 추가 제공해 달밧떨까리를 배부르게 즐길 수 있다.
그리고 향신료 맛이 익숙하지 않다면 버팔로 짜우멘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후 카페에 가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네팔은 커피가 꽤 맛있는데, 이유는 커피 산지이기 때문이다. 네팔은 북위 약 26°~30°에 위치하여 커피벨트로 불리는 북위 25°~남위 25° 범위에서 벗어나 있지만, 고산지대의 특별한 환경 덕분에 커피를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기념품으로도 좋으며, 커피 외에 꿀과 핑크 솔트도 인기가 좋다.
에필로그
오랜만에 다시 찾은 네팔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듯 복잡하지만,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카트만두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포카라 두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건강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다. 고산 지대인 네팔에서는 체력 저하가 예상보다 빠르게 올 수 있으니, 자기 몸 상태를 면밀히 살피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써버이자나 나마쓰떼!(! 모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