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구입한 차종 중 하나로 ‘산타페’가 있다. 그래서 ‘산타페’가 주도인 미국 뉴멕시코주로 떠나는 여행은 출발 전부터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뉴멕시코주는 면적 31만 5천㎢로 남한의 세 배가 넘는 광대한 땅으로, 고원과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 지역이다. 주 대부분에 건조기후가 분포하여, 기후가 만들어낸 지형은 황량함과 쓸쓸함, 그리고 적막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땅을 더욱 새롭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뉴멕시코주는 드넓은 면적만큼이나 깊은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거룩한 믿음(Holy Faith)’이라는 뜻을 지닌 산타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도이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남아있는 도시다. 나바호족을 비롯한 원주민 자치지역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이곳은, 동시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사랑했던 땅이자, 맨해튼 계획의 핵심 거점이었던 로스앨러모스가 자리한 장소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열기구 축제가 열리는 앨버커키와 UFO·외계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로스웰 역시 뉴멕시코의 다층적인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공간이다. 라틴아메리카와 앵글로아메리카의 경계가 되는 리오그란데강이 흐르는 이 지역은, 두 문화권이 자연스럽게 섞이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온 땅이기도 하다.

신비로운 하얀 사막, 화이트샌즈 국립공원
뉴멕시코 남부의 사막을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저 멀리서 마치 눈이 내린 듯한 하얀 파도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곳이 바로 화이트샌즈 국립공원(White Sands National Park)이다. 이곳의 하얀 모래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모래도, 소금도 아니다. 밀가루처럼 곱고 부드러운 이 흰 입자들은 이 지역의 오랜 지질사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약 2억 5천만 년 전, 이곳은 얕은 바다였다. 바닷속에 쌓인 석고 성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침전되며 두꺼운 지층을 이루었고, 이후 지각 변동과 기후 변화로 산맥이 솟아오르고 분지가 형성되면서 이 석고층이 풍화와 침식을 겪어 오늘날의 하얀 사구로 변했다. 건조한 기후와 끊임없이 부는 바람은 이 석고 알갱이들을 운반해, 약 715㎢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고 사구 지대를 만들어냈다. 이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어, 사구는 매일 조금씩 모양을 바꾸며 살아 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화이트샌즈 한가운데 서 있으면, 내가 알던 세계를 떠나 전혀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이곳을 찾았던 때는 12월 중순이었다. 여름에 방문했던 지인은 하얀 모래에 반사되는 강렬한 햇빛과 뜨거운 열기 때문에 오래 머물기 힘들었다고 했기에, 일부러 겨울을 선택했다. 외투를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했지만, 한낮의 기온은 걷기에 쾌적할 만큼 온화했다.
화이트샌즈를 특별하게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먼저 사진 촬영이다. 하얀 도화지처럼 펼쳐진 사구를 배경으로 색감이 또렷한 옷을 입고 서면, 어디에서도 얻기 힘든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독특한 체험은 단연 석고 사구 위에서 즐기는 썰매 타기다. 석고 모래는 일반 모래보다 훨씬 곱고 부드러워, 플라스틱 썰매를 타고 경사면을 미끄러지듯 내려올 수 있다. 방문객들은 공원 방문자센터에서 썰매를 구매하거나 준비해 와서, 각자 마음에 드는 사구를 골라 활강을 즐긴다. 눈썰매와 비슷하지만, 마찰이 큰 석고 사구에서는 썰매 바닥에 왁스를 칠하는 것이 필수다. 하얀 사막 한가운데서 썰매를 타는 이 특별한 경험은 화이트샌즈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상상 그 이상의 지하세계, 칼즈배드 동굴 국립공원
뉴멕시코 남동부의 광활한 사막과 과달루페 산맥 아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계가 숨겨져 있다. 바로 칼즈배드 동굴 국립공원이다. 지표 위에서는 황량한 사막이 펼쳐지지만, 땅속으로 내려가는 순간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 열린다. 이곳은 자연이 수천만 년에 걸쳐 빚어낸 거대한 지하세계로, 인간의 시간 감각을 무력하게 만드는 장소다.
약 2억 5천만 년 전, 이 지역은 얕은 바다였다. 바닷속에 쌓인 산호와 조개, 석회질 퇴적물은 두꺼운 석회암층을 만들었고, 이후 지각 운동과 화학 작용이 더해지면서 암석 속에 거대한 빈 공간이 형성되었다. 특히 황화수소를 포함한 지하수가 산화되며 만들어진 산성 물질이 암석을 녹여, 일반적인 동굴보다 훨씬 넓고 깊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칼즈배드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규모와 구조를 지닌 동굴 지대를 이루게 되었다.
동굴 내부의 중심부에는 ‘빅룸’이라 불리는 거대한 공간이 펼쳐진다. 길이와 너비, 높이 모두가 압도적인 이 공간은 마치 땅속에 숨겨진 대성당처럼 느껴진다. 천장에서는 수천 개의 종유석이 늘어져 있고, 바닥에서는 석순이 자라나 있으며,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하나의 거대한 석회암 기둥을 이루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수천만 년 동안 물방울이 떨어지며 조금씩 쌓아 올린 자연의 예술작품이다.
동굴 속 공기는 연중 서늘하고 고요하다. 바깥이 한여름의 사막 열기로 가득 차 있을 때도, 겨울철에도 이곳은 약 13도 안팎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천천히 걸으며 동굴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대비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압도적인 경관에 관광객들은 말이 없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이 공간에서도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칼즈배드 동굴은 지질 경관뿐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특별한 장소다. 이곳은 수많은 박쥐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동굴 입구에서 수천수만 마리의 박쥐가 소용돌이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이는 사막과 동굴, 낮과 밤이 만나는 장면처럼 장엄하다. 지하세계와 지상의 생태계가 이 순간 하나로 연결된다.
화이트샌즈가 지표 위에서 자연의 신비를 보여준다면, 칼즈배드는 그 신비를 땅속 깊은 곳에서 펼쳐 보인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 아래에 이처럼 웅장한 공간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뉴멕시코라는 땅이 지닌 오랜 시간과 자연의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UFO와 외계인이 만든 관광명소, 로즈웰
뉴멕시코 동부의 평범한 소도시 로즈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물보다도 거리 곳곳에 자리한 외계인의 얼굴이다. 가로등에는 커다란 회색 외계인의 머리가 달려 있고, 상점 간판과 벽화, 기념품 가게의 진열대까지도 외계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한때 조용한 농업 도시였던 이곳은 이제 UFO와 외계인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로즈웰이 세계적인 이름이 된 계기는 1947년에 발생한, 이른바 ‘로즈웰 사건’이다. 당시 미군 기지 인근에서 미확인 비행물체가 추락했고, 군은 처음에는 ‘비행접시를 회수했다’고 발표했다가 곧 기상 관측용 기구라고 정정했다. 이 모순된 발표는 오히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로즈웰은 외계인의 비밀을 숨긴 도시라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다양한 음모론과 과학, 대중문화가 얽힌 이야기로 여전히 회자된다.
도시 한복판에는 로즈웰 국제 UFO 박물관이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시 사건과 관련된 자료·사진·신문기사·모형들이 촘촘히 전시되어 있어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이 작은 도시가 어떻게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진실이 무엇이든, 사람들의 궁금증이 이곳을 하나의 이야기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로즈웰의 재미는 일상적인 공간마저 외계인 이야기로 재해석했다는 데 있다. 이곳의 맥도날드는 UFO를 닮은 둥근 형태로 지어져 있고, 내부에도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장식이 더해져 있다. 평범한 패스트푸드점조차도 이 도시에서는 하나의 관광명소가 된다. 밤이 되면 외계인 얼굴이 달린 가로등이 거리를 비추며, 마치 다른 행성의 마을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로즈웰은 자연경관이나 웅장한 유적 대신, 하나의 사건과 이야기를 도시 전체의 브랜드로 만들어낸 사례다. UFO와 외계인이라는 소재는 과학과 상상력,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며 사람들을 이 작은 마을로 불러 모은다. 황량한 뉴멕시코의 사막 한가운데서, 로즈웰은 스토리텔링이 장소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에필로그
뉴멕시코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막연히 ‘사막뿐인 곳’, ‘볼 것이 별로 없는 황량한 땅’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여러 정보검색을 해도 그저 막막하고 막연했다. 그러나 실제로 뉴멕시코주를 마주한 뒤, 그 생각은 철저히 무너졌다. 여행의 이유를 되새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국의 30개가 넘는 주를 여행했지만, 여러 지역 중 뉴멕시코주는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화이트샌즈의 비현실적인 풍경, 칼즈배드의 카르스트 지형이 만든 엄청난 지하세계, 로즈웰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물론, 차코와 산타페, 로스앨러모스가 들려주는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이 땅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곳을 여행하며,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이 지역의 오랜 역사와 선주민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멕시코주 여행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여행을 넘어, 누군가의 땅이자 누군가의 기억인 공간을 이해하는 여행이었다.
뉴멕시코주를 처음 마주했던 7일의 여행은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다음 해 미국 추수감사절 연휴에 고민 없이 가장 다시 보고 싶었던 장소였던 뉴멕시코주 여행에서는 이 땅의 선주민들과 역사와 관련된 장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날 뉴멕시코주가 기다려진다. 많은 사람이 뉴멕시코주의 무한한 매력을 경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