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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지구촌 풍경]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홍콩의 거리

 

영화 <중경삼림>을 보았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홍콩이라는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일까? 하여 홍콩으로 떠나기로 했다. 일정은 5박 6일. 여행을 가기 위한 사전 조사를 해보면 정말 많은 사람이 3박 4일, 홍콩과 마카오를 묶어서 여행한다. 주변 지인에게 “홍콩에 5박 6일로 여행을 가려고요”라고 하면 “거기 뭐 볼 게 있어? 그렇게 오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5박 6일도 짧고 아쉬웠던 여행.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일단 걷자. 홍콩의 길거리. 골목은 더 좋고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홍콩 여행지는 바로 홍콩의 길거리, 골목이다. 홍콩에 왔다면, 이곳의 분위기에 흠뻑 젖고 싶다면, 일단 걷자. 숙소 주변부터 차근차근 걷는 것이다. 홍콩의 길거리는 낮이고 밤이고 좋다. 특히 간판들과 건물들을 보는 것이다. 1990년대에 아주 흥했던 도시. 그리고 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물들과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한자로 쓰여있는 간판들을 보면서 길거리를 걷는 것이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다.

 

밤은 또 어떠한가. 반짝반짝 네온사인 간판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너무 화려하고 번잡스러운 것이 아닌, 약간의 따뜻한 빨간빛과 주황빛의 간판들과 조명은 밤에도 잠 못 들게 한다. 홍콩의 밤거리가 아름다워서, 여행 내내 밤늦게까지 돌아다녔다. 낮보다는 밤을 즐기기가 좋은 곳이다. 그리고 1~2월에 가면 약간 선선한 가을 날씨라 춥지 않아 도톰한 카디건 한 장이면 충분했다. 밤에는 길에 다니는 택시들이 너무 예쁘다. 버건디색 택시들. 홍콩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길거리에 다니는 택시뿐만이 아니다. 2층 버스와 트램도 아주 예쁜 교통수단이다. 높은 빌딩과 도로 사이로 다니는 높은 2층 버스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버스에 타면 시야가 높아서 도로의 사람들과 주변 풍경들을 잘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트램은 홍콩섬에 가면 볼 수 있다. 도로에 선로가 깔려있고, 그 위를 지나다니는 이색적인 풍경에, 여기가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잠깐 헷갈릴 정도이다. 실제로 홍콩의 트램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대중교통이라고 한다. 느리고, 저렴하다. 시간의 여유가 되어 빨리 이동하지 않아도 될 때 타기에 적합하다. 홍콩의 길거리를 더 천천히 구경하고 싶을 때 트램을 이용했다. 느리지만, 시간의 여유를 즐길 수 있고, 주변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홍콩의 길거리를 걷다 보면 느끼는 점이 있다. 좁고, 높다. 건물들은 따닥따닥 붙어있고, 높이도 꽤 높은 편이다. 여기에는 지리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홍콩은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살만한 공간이 작다. 그런데 홍콩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살 땅은 적은데 사람들은 많으니, 건물은 높게 올라가고, 건물들 사이에도 여유를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홍콩은 숙소 값이 비싸다. 물가는 우리나라와 얼추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경우가 많은데, 숙소는 좁고, 비싼 편이다.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이 모든 곳이 관광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무늬. 오밀조밀한 모습. 뭔가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이 든다. 걸으면서도, 버스·택시·트램을 타면서도, 낮에도, 밤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일 뿐인데 계속해서 시선을 끈다. 관광지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여행지인 것이다.

 

대표적인 명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익청빌딩에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있다. 높고 특이해서 감탄이 나온다. 많은 관광객이 왔다 간다. 나는 궁금한 점이 생겨 더 있어 보기로 했다. 정말 이 주거지를 보러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렇게 오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싶어 장소를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주민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관광객들은 늘 그랬듯이 예쁜 사진을 남기려고 애를 쓰고, 줄을 서고, 사진을 찍고 바로 돌아간다.

 

 

주민들은 관광객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치 자체 블러처리를 한 것처럼. 1층에는 상가들이 있었다. 식당도 있고, 미용실 같은 것도 있었다. 잠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겼을 때 뭔가 깨달았다. 이곳은 주말의 평화로운 주거지구나. 여느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식사를 하고, 머리를 하고, 앵무새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잠깐 바깥바람을 쐬며 통화를 하는 곳이구나.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담겨있는 공간이구나 싶었다.

 

진짜 진짜 길거리만 주야장천 걷는 것이 맞는가 싶었던 찰나, 홍콩 소호 거리 벽화마을에 들렀다. 뭔가 두근두근. 길거리에 벽화가 그려져 있으면 얼마나 예쁠까 싶었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벽화마을이 많은데, 그 벽화마을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대하며 간 장소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 벽화에 엄청나게 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벽화일지 궁금해서 봤다. 벽화를 보고 나니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 남았다. 어찌하여 이렇게 줄을 서 이 벽화에서 사진을 찍는 것일까? 이 벽화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찾아보니, 별다른 의미는 없고 소호 거리 벽화마을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대표 사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장소를 검색했을 것이고, 이 사진을 봤을 것이고, 그리고 장소에 도착했을 때 왜 이것이 예쁜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줄 서 있고 하니까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무 아름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특히 여행하러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들에게 진절머리가 나 있는 요즘에는 더더욱 반갑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장소를 떠났다. 

 

여행 일차를 거듭할수록 홍콩은 딱히 특별한 관광지라고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관광지를 가기 위한 여정에는 뜻밖의 행운도 있었고, 도전도 있었으며, 새로운 발견도 있었고, 나만 아는 멋진 관광지도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관광지에 가지 않아도 여행을 하는구나. 여행이란 관광지를 가는 것이 아니구나. 여행이란 모든 여정이구나. 관광지에 가도 여행을 하지 않을 수 있고, 관광지에 가지 않아도 여행을 할 수 있는 거구나.

 

관광지를 추천한다면 구룡채성
아무리 모든 곳이 여행지라고 하더라도 홍콩에서 갔던 좋은 관광지를 소개하자면 구룡채성을 추천하고 싶다. 시각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구룡채성은 홍콩 시내에서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곳이다. 버스를 타고 빌딩 숲을 벗어나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외곽지역이 나오는데, 그곳에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있었다’.

 

지금은 공원으로 바뀐 이곳. 구룡채성은 매우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 물론 사진으로만 남아있지만, 구룡채성은 무수히 빽빽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무법지대이다. 영국도, 중국도 관리하지 않는 무법지대. 세금을 내지 않아 많은 이민자가 모여 살았고, 법이 닿지 않는 곳이라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된 곳이다. 과거 구룡채성의 사진을 보면 어떻게 이러한 공간에 사람들이 살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햇빛과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 도박·매춘·마약·쥐·바퀴벌레와 함께 살 수 있었다니.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 공항이 있었는데, 건물들이 15층까지 올라가니 과거에는 머리 바로 위로 비행기가 지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공원이 되어 사람들이 가족들과 여유롭게 주말을 즐기는 공간. 과거에는 참으로 답답한 공간이었을 이곳이 지금은 너무나도 여유 있는 공간인 것이 흥미롭다. 예전, 구룡채성에 살던 사람들은 이곳이 이렇게 다른 장소가 될지 상상이나 했을까.

 

한 지역에 오래 머무는 여행. 뭐 볼 게 있나 싶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같이 보이는 여행. 하지만 그만큼 깊게 느낄 수 있고, 쉽게 지나치느라 볼 수 없던 것들을 볼 수 있는 여행이다. 홍콩에서의 일주일은 그러했다. 뭔가 더 많이 돌아다녀야만 한다는 불안감과 투쟁하며 그저 걷고, 한곳에 오래 머물고, 같은 곳을 여러 번 가고, 같은 음식을 여러 번 먹었다. 그럴수록 많이 생각할 수 있었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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