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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새의 선물이 주는 노스텔지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의 태양이 쏟아내는 열기는 대지를 불사를 기세다. 냉방기 아래서 힘들고도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바로 사백 쪽이 넘은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을 보면서다.

 

새의 선물은 무엇일까?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단지 열두 살에 삶을 완성한 진희만 보일 뿐이었다. 이 책은 스물두 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제목끼리는 복선을 주어 다음 소제목과 이어지며 책장을 넘기게 한다. 그래서 한 번 읽기 시작하였다면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특히 감성적인 묘사와 비유의 멋진 부분이 매력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진희의 눈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려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열두 살에 삶을 완성한 애 어른 진희가 보는 세상 사람의 삶과 사랑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인다. 그것은 1969년 한 해와 1995년의 모습이 불러일으키는 노스텔지어다. 이 노스텔지어는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MZ세대들에겐 느껴보기 힘들 것이다. 읽는 내내 지금의 나는 유년이 이어져 온 삶이므로 다시금 그 시절을 반추해 보며 웃어보는 것이었다. 펜팔, 선데이서울,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노래, 더러운 차부(터미널), 혼식 검사, 띠기 장수(달고나),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 삼풍 유가족 등이었다.

 

여러 내용이 나오지만, 특히 가슴 아픈 일은 학교와 사회의 가진 자들의 불공정 행위와 가부장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의 굴레, 사랑은 여전히 배신을 동반한다는 것이었다.

 

대동병원 딸 신화영이 관련 내용을 보며 나도 아픔을 느꼈다. 재력 있다고 학교에서 뒤를 봐주어 부회장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부회장에 뽑힌 아이는 있지도 않은 부회장 서리라는 직함을 주는 부분에 교육 부조리 현실에 대한 적의가 분출했다.

 

 

이 소설의 진면목은 또 있다. 바로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상에 희생을 무릅쓰는 여자의 굴레이다. 진희의 할머니는 여자이면서도 지극히 가부장적이다. 진희의 할머니는 어른으로 판관 역할을 한다. 거기에 박자 아닌 박자를 맞추는 사람은 수다쟁이 장군이 엄마와 가출에 실패한 광진테라 순분이 아줌마이다.

 

“아무리 똑똑하다 어쩐다 해도 결국 계집애들은 그저 계집애더라구요.” 장군이 엄마의 말이 남성 중심의 사회상을 대변하고 있다. 힘으로는 여자가 남자를 당할 수 없다.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과감하게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지만 포기하고 체념하는 광진테라 아줌마의 모습을 보면 안쓰러울 뿐이었다.

 

광진테라 아줌마는 남편의 바람과 손찌검으로 처음 가출을 시도 했지만 실패하고 두 번째는 성공하지만 이내 돌아오고 만다. “여자는 할 수 없나 봐요”란 말과 함께 팔자소관으로 단정 짓는 모습이 아쉽다.

 

사랑의 배신에 대하여 알아본다. 이 책은 전체적인 주제가 사랑에 대한 표현이라면 맞을 것이다. 진희의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통해서 열두 살에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된다. 즉, 사랑은 배신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애초 진희는 펜팔로 맺어진 이모와 이형렬의 사랑 행각에 데이트의 어린 배심원, 편지 전달자로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광진테라 아줌마의 무산된 가출과 수업 시간 ‘꽃밭에서’를 노래하며 아빠라는 발음을 처음 해 본다. 찾아오는 외로움, 제방길에서 염소와 하모니카 실루엣의 주인공이 허석이란 착각 속에서 사춘기 갈등을 겪는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초등학교 5학년인 진희는 빨리 겪은 것 같다.

 

사랑을 만들기 위해 외모를 바꾸는 진희 이모를 보며 난 막내 누나를 생각한다. 나보다 5살 위인 누나는 언제나 포켓 가요집을 사고 노래를 부르며 펜팔란을 찾아 편지를 하기도 하였다. 흡사 진희 이모와 같다. 그리고 남자를 만나러 갈 때는 유리 테이프를 잘라 눈 위에 부쳐서 쌍꺼풀로 하고 간다. 아마 사위 볼 때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모의 사랑은 진희가 좋아했던 허석과의 새 사랑으로 노골적인 비탄에 빠지지만 위로나 배려도 받을 수 없는 입장에서, 그 고통을 혼자서 이겨낸다. 아픔만큼 성숙해지는 것이다. 결국 이모는 허석의 아이를 중절 수술하고 진희는 염소와 하모니카 실루엣의 주인공이 허석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로써 진희는 어린애의 책무인 성숙하는 일을 이미 끝마쳐 버린다. 그리고 초경으로 여자로서 서게 되고 아버지를 만난다.

 

새의 선물이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랑이란, 세상살이란 이야기로 흐른 이 책은 다시 읽어도 새로 읽는 것 같다. 이제 눈이 침침해진다. 현관문을 열고 동녘을 본다. 일출을 앞둔 구름이 붉게 물들고 있다. 별 하나가 아직 빛을 잃지 않고 빛나고 있다. 또다시 새로운 날이다. 남은 일은 마음으로 새의 선물이 무엇인지 되새김질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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