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어린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동화 ‘꺼벙이 억수’가 다시 책장 위로 돌아왔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 어리숙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진심 어린 마음을 지닌 주인공 억수. 그 이야기를 써온 윤수천 작가는 이번 재출간을 통해 “변하지 않는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스무 해를 지나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억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년간 꾸준히 출간돼 온 ‘꺼벙이 억수’ 시리즈는 한때 멈출 위기를 맞았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출판사와 자연스럽게 계약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출판사와의 인연이 닿으며 ‘억수’는 다시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윤수천 작가는 이를 “무척 기쁜 일”이라고 표현한다. 오랜 시간 이어온 이야기가 다시 숨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되는 5권 시리즈는 이야기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맞춘 세심한 보완이 이루어졌다. 일부 표현을 다듬고, 아이들의 대화를 보다 현실감 있게 수정했으며, 몇몇 장면의 삽화도 새롭게 그려 넣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지금의 어린이들이 더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작은 변화’가 이번 개정의 핵심이다.
‘꺼벙이 억수’라는 독특한 이름은 의외로 현실에서 비롯됐다. 작가가 수원중앙도서관에서 15년간 진행한 글쓰기 강의에서 만난 한 수강생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 이름을 처음 본 순간, 작가는 직감처럼 느꼈다. “이 이름은 동화 주인공이다.” 마침 동화 집필 제안을 받은 시기였고,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 그대로 작품 속 주인공 이름으로 사용하게 됐다.
그렇게 탄생한 억수는 겉으로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이로 그려진다. 실수도 많고 어리숙하지만, 친구를 향한 진심과 배려는 누구보다 깊다. 독자들은 그 모습에서 웃음을 느끼고, 동시에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다. 이처럼 현실에서 출발한 이름은 이제 하나의 살아 있는 캐릭터로 자리 잡아 오랜 시간 사랑받는 존재가 됐다.
작가는 ‘꺼벙이 억수’ 시리즈가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유로 “재미와 따뜻함”을 꼽는다. 억수와 친구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정겹다.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서툴지만, 그 안에는 늘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특히 이번 시리즈에서 강조되는 메시지는 ‘참된 우정’이다. 서로 다른 환경과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이해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어린이 독자들이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한다.
또한 자연에 대한 고마움, 꿈에 대한 설렘, 나눔의 기쁨 같은 가치들도 이야기 곳곳에 스며 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시간이 인생에 어떤 의미로 남는지를 아이들이 은연중 깨닫게 되길 바라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각 권 2000부씩, 총 1만 부 규모로 출간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진 요즘, 종이책 시장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출간 규모는 작지 않은 도전이다.
윤수천 작가는 이를 “모험에 가까운 선택”이라고 말하면서도, 출판사가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억수의 이야기가 여전히 어린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출간과 함께 독서감상문 모집도 진행된다. 이는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독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하는 시도다. 아이들이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작가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지—그 생생한 반응이 또 다른 이야기의 씨앗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는 5월 27일 오후 3시에는 ‘문학의 집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시 낭송과 동화 구연, 작가와의 대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독자와 작가가 직접 만나는 뜻깊은 자리가 될 예정이다.
윤수천 작가는 좋은 아동문학의 기준을 단순하게 정의한다. “재미있고, 따뜻하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 그는 앞으로도 특별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꾸준히 글을 써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다만 한 가지 새로운 바람이 있다면, 그림동화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 마음속에 구상해둔 이야기들도 있어, 또 다른 형태의 작품으로 독자들을 만날 날을 기대하게 한다.
스무 해를 지나 다시 돌아온 ‘꺼벙이 억수’. 화려한 변화 대신, 변하지 않는 가치를 선택한 이야기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들—우정, 따뜻함, 그리고 진심. 윤수천 작가는 그 소중한 가치들을 이번에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아이들 곁에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