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만나는 수많은 학습자료, 교과서부터 각종 영상 자료, 과학실의 복잡한 실험 기구와 시약들, 그리고 아이들이 매일 기록하는 공책에 이르기까지 그 목록을 나열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우리 수업의 현장에는 이처럼 수많은 자료가 늘 함께합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요? 지식 전달을 위한 단순한 도구나 소모품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요? 진정한 배움은 학습자가 대상과 깊이 있게 만날 때 시작됩니다.
특히 학습 자료와 먼저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학습의 세계 안으로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때 대상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열쇠가 바로 ‘질문 만들기’입니다. 수학 시간 ‘각도’에 대해 배울 때를 떠올려 봅시다. 필수 준비물은 각도기입니다. 보통은 각도기를 꺼내자마자 재는 법을 가르치기 바쁩니다. 하지만 그전에 아이들이 각도기와 충분히 상호작용하게 하면 어떨까요? 각도기를 보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 무심히 보던 물건은 정밀한 관찰의 대상이 됩니다.
관찰을 몰입으로 바꿔야
“각도기는 왜 둥근 모양일까?”, “숫자가 왜 위아래로 두 줄이나 써져 있지?”, “밑줄과 중심은 왜 따로 표시되어 있을까?” 등 아이들이 쏟아내는 이러한 질문들은 각도기의 필요성부터 유래, 사용 방법, 수치 읽는 법까지 실제 수업의 핵심 원리와 곧바로 연결됩니다. 이 과정에서 각도기는 더 이상 플라스틱 조각이 아니라, 아이들과 대화하는 ‘지적 파트너’가 됩니다. 이러한 원리는 과학 시간의 온도계나 저울 등 모든 실험 기구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왜 온도를 표시하는 액체는 붉은색일까?” 등 실험 기구와 충분히 상호작용하며 ‘지적 파트너’가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교실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시청각 자료입니다. 화려한 영상과 강렬한 시각적 자극은 아이들을 마치 자석처럼 화면 속으로 빨아들입니다. 꼼짝 않고 화면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상호작용이 잘 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상호작용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영상 속 정보는 제작자가 의도한 선형적인 흐름에 따라 이미 정해진 답을 향해 질주합니다. 아이들은 그 속도에 맞추어 화면을 따라가기 급급할 뿐, 의문을 품거나 자신의 생각을 개입시킬 틈을 얻지 못합니다. 뇌는 바쁘게 자극을 받아들이지만, 정작 ‘생각의 근육’은 멈춰버린 수동적 관찰자의 상태에 머무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영상이라도 그 자체로 상호작용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영상이 끝난 뒤, 혹은 중간중간 영상을 멈추고 “방금 저 장면에서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만약 결과가 달랐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와 같이 화면 너머의 진실을 묻는 질문이 던져져야 합니다. 삶의 지식으로 발효되기 위해서는 질문으로 ‘멈춤’과 ‘되새김’이 필요합니다.
배움은 ‘조작’과 ‘질문’에서 시작
학습 자료와의 상호작용은 학습 전반에 걸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이들이 자료를 직접 보고, 만지고, 조작해 보는 활동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탐구 욕구를 충족시켜 줍니다. 예를 들어 저울을 활용한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마음껏 물건을 달아보게 하는 활동은 그 자체로 배움의 기초가 됩니다.
하지만 단순히 만지는 것에서 멈추면 놀이에 그칠 수 있습니다. 이때 질문 만들기를 결합해야 합니다. 손으로는 자료를 조작하고, 머리로는 질문을 던지며 사고 활동을 촉진할 때, 비로소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폭발합니다. 질문으로 학습 자료와 상호작용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기술이 아닙니다.
주변의 사물과 세상을 향해 의문을 던지고,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공부하는 태도를 기르는 과정입니다. 우리 교실의 아이들이 학습 자료를 정답을 찾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질문을 주고받는 친구’로 대할 때, 배움은 더욱 단단하고 깊어질 것입니다.

양경윤
창원한들초 수석교사
'질문수업 어떻게
시작할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