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이후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학부모가 보낸 문자입니다. "선생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내일 준비물이 원고지가 맞나요.” 짧고 정중한 문장 앞에서 교사는 잠깐 멈춥니다. 지금 답해야 할까, 아침에 답해야 할까, 그런데 아침이 되면 또 아침대로 바쁠 텐데. 이 짧은 문자 하나가 남긴 무게가 하루의 끝자락에서 오래 남습니다.
늦은 시각의 연락이 무거운 것은 응대 그 자체보다 응대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 때문입니다. 답하지 않으면 다음 날 학부모에게 또 연락이 올 것이 신경 쓰이고, 답하면 하루 종일 이어져 온 나의 시간이 문득 잘려 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교사도 퇴근하면 한 사람의 부모이고, 자식이고,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를 재우는 사람입니다. 그 시간을 지키는 일이 사실은 다음 날 교실에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담을 근본에서 덜어주는 새로운 지침이 지난 3월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함께 발표한 ‘학교 민원 대응 및 교육활동 보호 강화 방안’에 따라, 이제 교사 개인 연락처나 개인 SNS를 통한 학부모 민원 접수는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학부모와의 소통은 학교 대표번호와 온라인 소통 시스템인 이어드림 등 학교가 미리 정한 공식 창구로 일원화합니다. ‘교사의 학교 민원 대응은 교사 개인의 일이 아니라 기관의 일이다.’ 새 지침이 담고 있는 이 문장은 오랜 세월 혼자 민원 등의 스트레스를 감당해 온 교사들에게 든든한 뒷받침이 됩니다.
공손하면서도 단호한 어조의 안내
학기 초에 한 번, 새 지침을 부드럽게 안내해 두시기를 권합니다. ‘올해부터는 학교 대표번호와 이어드림 등을 통해 소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담임 교사도 집에 돌아가면 여러분과 똑같이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하는 사람이니 배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낮에 공식 창구를 통해 남겨 주시면 다음 날 아침에 확인해서 정성껏 답 드리겠습니다.’ 이런 안내를 해두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은 이후 한 해의 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미리 부탁한 것은 무례가 아니라 배려이고, 부탁받은 학부모도 그 선을 지키려 애쓰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심하게 다쳤거나 많이 아파서 내일 등교가 어려운 경우, 학교에서 있었던 사고와 관련된 응급한 사안은 시간과 상관없이 알려주셔야 한다고 함께 안내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예외를 분명히 하면 학부모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집니다. 언제 연락해도 되는지 언제는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려도 되는지 기준이 서면, 애매한 상황에서 학부모가 덜 망설이게 되지요.
응급 상황으로 학부모가 연락을 했을 경우에도 화법은 간단합니다. 상대의 말을 짧게 되짚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은혁이가 열이 많이 나는군요. 내일 등교도 어렵고요. 잘 알겠습니다.’ 이 세 문장이면 됩니다. 조언이나 걱정을 길게 덧붙일 필요도 없고, 자세한 조치를 밤에 결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상대의 말을 그대로 받아주는 이 짧은 응답만으로도 학부모는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필요한 조치는 다음 날 출근해서 하시면 됩니다.
‘무례’엔 ‘무시’로 마음 지켜야
그럼에도 늦은 시각에 반복해서 문자를 보내는 학부모가 있다면, 이제는 학교 관리자와 함께 대응하시면 됩니다. 새 지침은 이런 상황에서 학교장이 직접 경고와 출입 제한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마련해 두었고, 반복적인 침해에는 과태료 부과도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혼자서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한 가지만 마음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늦은 시각에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자기 행동을 객관적으로 돌이켜보지 않기 때문이고요. 그런 무례를 마주할 때, 그 무례 때문에 마음이 오래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지킬 것은 학부모의 기분이 아니라, 다음 날 교실에서 아이들을 웃으며 맞이할 나 자신이니까요.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사이에 선을 긋는 일은 냉정한 일이 아닙니다. 오래 다정할 수 있기 위해 미리 해두는 정성스러운 준비에 가깝습니다.

김성효
전북 문창초 교감
상처받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교사의 말 기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