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표야, 영표야.”
갑자기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영표를 부릅니다.
“개구리다! 개구리.”
욕실에서 나온 엄마는 몸을 으스스 떨기까지 합니다. 겁쟁이 엄마. 선생님이 되어 가지고 엄살이 많습니다. 엄마는 밤이면 도둑고양이가 우는 소리에도 무섭다고 야단이고, 바람만 세게 불어도 방문을 꼭 잠급니다.
“이 깐 개구리가 뭐가 무섭다고, 에이 씨.”
영표는 욕실로 들어가 바닥에서 폴짝 폴짝 뛰어다니고 있는 개구리를 손으로 잡았습니다. 엄지손가락만 새끼입니다. 툭 튀어나온 눈이 겁도 없이 영표를 빤히 쳐다봅니다.
“이게, 뭘 봐.”
영표는 잡은 새끼 개구리를 변기통에 넣습니다. 개구리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립니다. 그 모양이 너무 재미있어 영표는 자꾸만 장난을 칩니다. 개구리가 물속에서 올라오면 잡아 던지고, 또 던지고. 몇 번을 계속합니다. 드디어 새끼 개구리는 지쳤는지 다리가 축 쳐졌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에이 시시해, 벌써 죽었어.”
영표는 그대로 변기통 물을 내렸습니다. 개구리가 물살에 휩쓸려 따라 내려갑니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는 밤이 되자 멈추었지만 밖은 여전히 안개로 자욱합니다. 영표가 현관 불을 켜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살이며 나방들이 불빛을 보고 몰려듭니다. 열린 문 틈 사이로 개구리들이 펄쩍 펄쩍 뛰어 들어옵니다. 거실까지 들어왔습니다. 엄마는 깜짝 놀라 징그럽다고 야단입니다. 마침 심심하던 영표는 개구리들을 잡아 일렬로 세웠습니다. 크기가 고만고만하고 생김새도 똑같습니다. 팬시점에서 보았던 장난감 개구리 같습니다.
“차렷”
영표는 개구리들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개구리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겁도 없이 창문으로 뛰어오릅니다.
“가만있어.”
영표가 잡으려고 손을 내밀면 재빠르게 도망갑니다.
“참 신기하다. 어쩌면 담쟁이 넝쿨처럼 저렇게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지?”
엄마는 새끼 개구리들이 창문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모양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이리 저리 고개를 돌리며 한참을 쳐다봅니다.
“쨘! 잡았다.”
영표는 살금살금 걸어가 창문에 붙어 있는 개구리를 잡아 손에 들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개굴개굴”
풀밭이 깔린 마당은 개구리들의 세상입니다.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들도 나무 사이에 숨어 영표 집에서 쏟아져 나온 불빛을 보고 있습니다. 안개비가 내리다 잠깐 멈춘 틈을 타서 모두들 나들이를 왔나 봅니다. 영표는 마당을 지나 텃밭으로 갔습니다.
휘익. 손에 들고 있던 개구리을 힘껏 던졌습니다. 슛, 골인. 풀밭에 놀고 있는 개구리를 사정없이 발로 찼습니다. 미처 피하지 못한 개구리가 하얀 배를 뒤집고 벌렁 나자빠집니다. 그래도 심심합니다. 괜히 심술이 납니다. 고추를 내놓고 바위 틈에 시원하게 오줌을 눕니다.
“쏴!”
오줌을 눌 때마다 누가 세게, 누가 더 멀리 가는지 친구들과 시합도 자주 했었는데 그 친구들이 보고 싶습니다.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집니다. 개굴개굴 울던 소리와 찌르르 거리던 벌레 소리들이 한꺼번에 멈춥니다. 하루살이들만 냄새를 맡고 영표를 맴돌며 달라붙습니다.
“아이고 이 냄새. 아 더러워!”
새끼 개구리들 외침을 듣고 아빠 개구리가 다가옵니다. 그리고 오줌을 누고 있는 영표를 부릅뜬 눈으로 쳐다봅니다. 순간, 아빠 개구리는 영표 고추를 향해 긴 혀를 날름거리며 펄쩍 뛰어오릅니다.
“앗, 따거 아얏.”
갑자기 고추가 따끔거리자 영표는 오줌을 누다 말고 뱅뱅이를 칩니다.
“너 개구리 새끼, 내 고추에 뭘 발랐어? 잡기만 해 봐.”
화가 난 영표는 옷을 올리다 말고 화끈거리는 고추를 한 손으로 잡으며 개구리를 쫓아갑니다. 개구리는 영표의 손끝을 비웃기라도 하듯 펄쩍 뛰어 바위틈으로 도망가 버립니다.
개구리를 놓친 영표가 식식거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바위틈에서 화가 잔뜩 난 소리가 들립니다.
“조심해라. 저 애한테 걸리면 아마 초록이처럼 너희들도 변기통으로 넣어 버릴 거야. 그런데 저 애는 처음 보는 아이인데 누구지?” “영표라는 아이예요. 엄마 따라 전학 왔대요.”
영표는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바위틈에서 불빛이 보입니다. 빛을 따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살금살금 걸어갔습니다.
‘아니? 무슨 동굴이지.’
그러고 보니 모든 게 이상합니다. 갑자기 발로 밟고 다닌 풀꽃들이, 나뭇잎에 붙어 있는 벌레들이 영표보다 더 커 보입니다. 엄마가 심어놓은 상추랑 깻잎은 영표 머리위로 천막을 쳐 놓은 것 같습니다.
영표는 겁이 났습니다. 엄마! 엄마를 부르기 위해 입을 벌리는데 하루살이들이 영표 입술을 꼭 찍어댑니다.
“조용히 해 눈치도 없이, 대장 개구리 눈에 띄면 넌 죽어.”
잔뜩 겁이 나서 떨고 있는 영표에게, 하루살이가 따라오라고 날개 짓을 합니다. 영표는 하루살이의 날개를 잡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그 곳에 개구리들 집이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초록이 엄마는 얼마나 슬프겠니? 초록이가 변기통에 빠져 죽었으니. 참 꽃밭에 던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어요?”
엄마 개구리의 물음에 아빠 개구리가 안경을 올리며 대답합니다.
“겨우 목숨은 구했다는데 많이 다쳤어. 쉽게 낫기 힘들 거야. 영표 그놈 이제 자기 집에 못 가. 아까 내가 몸이 작아지는 약물을 고추에 발랐어.”
듣고 있던 영표는 몸을 바들바들 떱니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니, 힘이 빠지고 눈물만 납니다. 영표는 자기도 모르게 으앙! 하고 큰 소리로 울어버립니다. 개구리들이 쳐다봅니다.
“아니 저 애는? 언제 왔어.”
영표를 발견한 새끼 개구리들이 와! 하며 한꺼번에 달려듭니다.
“너 잘 왔어. 두고 봐.”
새끼 개구리들은 떨고 있는 영표에게 달려들어 물갈퀴가 있는 발로 쿡, 쿡 찌릅니다.
“아, 아얏!”
영표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도 모른 척합니다. 오히려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로 영표를 끌고 가서 퐁당! 빠뜨립니다. 영표는 물속에서 허우적댑니다. 곧 죽을 것만 같습니다. 엄마가 생각나고 아빠 생각도 납니다.
“그만해라, 영표야 이리와 봐.”
엄마 개구리가 영표를 불렀습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힘없이 다가온 영표 손을 엄마 개구리가 꼭 잡았습니다. 그러자 영표 손과 발에 물갈퀴가 생겼습니다. 등에 미끈거리는 딱지도 얹어졌습니다. 영표는 눈이 튀어나온 청개구리로 변했습니다.
“너는 이제 개구리가 되었으니 우리랑 살아야겠다.”
새끼 개구리들이 야! 환호성을 지릅니다. 영표는 깜짝 놀라 자리에 쓰러집니다.
아이들의 힘찬 소리가 운동장에 퍼집니다. 2학년 교실에서 흘러나온 노랫소리는 영표를 부른 것 같습니다. 개구리가 되어버린 영표는 교실 창가에 웅크리고 앉아 교실 안을 보고 있습니다. 엄마, 엄마! 불러보지만 개굴개굴 소리만 나옵니다.
“웬 개구리냐?”
무심한 엄마는 아이들을 시켜 영표를 쫓아냅니다. 영표는 기가 막힙니다. 더욱 더 어이가 없는 일은 교실 안에 자기를 꼭 닮은 영표가 자리에 앉아 방글 방글 웃고 있는 모습입니다.
친구들은 영표를 모두 싫어했습니다. 시골 아이들이라고 무시하며 너무 잘난 척 했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엄마가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 했는지 친구들에게 심술도 부렸습니다. 그런데 엄마 선생님은 조금만 잘못해도 오히려 혼을 냈습니다. 학교에서 어쩌다가 실수로 “엄마”라고 부르면 벼락이 떨어집니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교실 창가에서 쫓겨난 영표가 풀밭에서 울고 있는데 참새가 옆으로 날아왔습니다.
“너 사택에 사는 아이구나.” “넌 나를 알아보니?” “그럼 네가 아무리 개구리가 되었어도 난 알아볼 수 있단다.”
영표는 조그만 새가 자기를 사람으로 알아보는 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넌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난 아침이면 너희 집 꽃밭에서 노래했던 새야.” “아, 그 감나무에 앉아 이른 아침부터 울던 새.” “그래 맞아, 잠도 못 자게 시끄럽게 한다고 돌 던진 것 생각나지?”
영표 고개가 수그려 집니다. 이제 막 풀밭에서 올라온 강아지풀이 부드러운 몸을 비비며 빙그레 웃습니다.
공부가 끝난 아이들이 왁자글 떠들며 교실에서 나옵니다. 개구리 영표는 부러운 눈으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입이 야문 참새는 영표가 불쌍한 모양입니다. 가짜 영표에게 날아가더니 머리카락 한 개를 쑥 뽑아 물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개구리 영표 머리 위에 얹어 놓습니다.
“자, 이제 됐어. 눈을 감아 봐.”
영표는 참새가 시킨 대로 눈을 감아 봅니다.
“영표야, 엄마 기다렸니?”
어디서 엄마 목소리가 들립니다. 영표는 너무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납니다.
“영표야 왜 울어 응, 오늘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던데.”
영표는 눈을 떠 봅니다. 앗, 이럴 수가! 사람으로 다시 돌아간 영표를 엄마가 다가와 꼭 껴안아 줍니다. 영표는 제 몸을 만지며 자꾸만 엄마 품안으로 더 깊이 파고듭니다. 참새들이 감나무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 출입문 앞에 개구리 한 마리가 툭 튀어나온 눈을 깜박거리며 앉아 있습니다.
“영표야, 개구리다.”
엄마는 개구리를 보자 또 다시 몸을 으스스 떨고 맙니다. 영표는 두 손으로 개구리를 잡아 손 안에 곱게 들고 풀밭으로 갑니다. 그리고 웅덩이를 피해 개구리를 놓아줍니다.
영표네 집 마당에는 개구리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장마 손님은 개구리들을 앞세우고 찾아온 모양입니다.
-김경희 전남 해남동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