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은 어쩌다 건달이 됐을까.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를 치다가 사소한 싸움이 자존심을 건드려 시비가 벌어져 우발적 사고를 치면 `그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형사는 어떨까. 때로 자신이 건달인지 경찰인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 아쉬운 소리 안듣고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안전한 공무원인 만큼 별 불만은 없다. 그렇게 그렇고 그런 깡패와 형사가 지하주차장에서 만나 쓰러질 때까지 혈투를 벌인다.
류승완 각본·감독·주연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고교시절 패싸움을 벌이다가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깡패와 경찰로 운명이 갈린 두 친구의 삶을 4편의 단편으로 엮은 이 영화는 정말 독특하다. 독립영화지만 재미는 상업영화 못지 않고 액션영화지만 코믹과 공포도 섞여있다.
당구장 주인의 냉소적 발언과 고교생 패싸움을 현란하게 갈마들며 편집한 1부, 전과자에 대한 냉대와 살인에 대한 악몽을 몇 개의 선명한 이미지로 표현한 2부, 형사와 깡패의 격투사이에 당사자의 인터뷰 내용을 유사 다큐멘터리로 녹여 넣은 3부, 뛰어난 사실감으로 대파국을 그려낸 4부는 제각기 `따로'이지만 `또 같이' 어우러지면서 묵직한 주제를 펼쳐낸다.
철저히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분노와 폭력, 그리고 좌절. 돌파구 없는 세상을 향해 맨주먹 하나로 아등바등하며 슬픔만 토해내고 거꾸러지는 젊은 군상들. 그들은 시종일관 "X팔, X새끼, X같이…"를 내뱉는다. 칼을 맞아 죽어 가는 형사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도 "X새끼"다.
세상은 정말 그렇게 `X같은' 것일까.... 어찌되었든 영화를 보고 나면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다. "진짜 이 영화를 73년생, 고졸, 2000 여 편의 영화를 본 것밖엔 특별한 경력도 없는 감독이, 그 것도 남이 쓰다버린 자투리 필름으로 시작해 16㎜ 비디오로 찍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