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국립대학 발전계획안이 발표되고 7월 28일 공청회가 개최됐다. 교육부는 이 안에 대해 8월10일까지 대학별로 의견수렴을 거쳐 8월 중순 교육부 안으로 확정하고 8월중에 국무회의에 상정하여 국립대학발전계획을 확정한다고 한다. 한 학기의 강의가 끝나고 차분히 다음 학기를 준비하여야할 대학가에 또 다시 일파만파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이 계획안은 `발전'계획이라는 이름을 달고 기존의 구조조정 정책의 단순 경제논리와는 다소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그 취지 자체에 이의를 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립대학에서 국가정책적으로 필요한 분야의 인적 자원개발을 하도록 지원하고 학문의 균형발전을 위한 기초·보호 학문분야를 육성토록 하며 지역 고등교육의 질적·양적 기회를 확대한다는 점에 대해 누가 반대할 것인가.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론에 들어가면 국립대학의 근본 위상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들로 가득 차 있다. 우선 대학 총장을 교육부가 공모하여 책임운영 시키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관료적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임운영기관이란 기본적인 목표의 달성을 전제로 그 기관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조직운영방식이다. 그러나 대학의 기본적인 목표는 학문 연구와 교육으로 이 목표를 단기간에 구체적인 지표로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책임운영기관화 된 모든 대학은 교육부의 정책과 평가에 종속되어 자율성과 민주성을 상실하게 될 뿐이다. 총장직선제가 실시되기 이전의 국립대학 총장을 누가 임명하고 임명된 총장이 어떤 일을 했었던가를 상기해보면 책임운영기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린아이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학자치라는 헌법 정신에 기초하여 대학이 자신의 역량에 따라 스스로 자기결정을 해나가는 자율운영기관이 되어야 한다. 대학 교수회의 법제화는 현 정부의 공약사항이었고 모든 교수사회의 절박한 요구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안에는 소위 대학평의회라는 새로운 기구를 제안하고 있다. 대학 경영층, 교수대표, 직원대표, 학부모대표, 동문회 대표, 교육부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추천하는 인사로 구성한다는 평의회는 너무나도 이상적이어서 당장에 교육부 운영부터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이다. 방대하고 전문적인 대학의 문제를 이런 평의회에서 의결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은 들러리화 된 평의회를 통해 교수회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대학 정책의 자문기관으로 평의회를 두고 대학 문제에 관한 실질적인 논의와 의결은 대학 교수회의 법제화를 통해 해결토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또한 대학을 연구중심, 교육중심, 특수목적, 실무교육 중심으로 나눈다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머리식 발상일 뿐이다. 대학은 유기적인 전체로서 생명력을 갖는 것이지 연구와 교육과 전문화를 따로 떼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 상대적인 비중의 차이를 고려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학과단위나 단과대학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정해가도록 해야지 교육부가 특정 대학은 연구중심이다, 실무교육중심이다라고 규정해서 고착화시킬 문제가 아니다. 이밖에도 계획안에는 대학의 질 관리 체제에 관한 것, 특별회계제도에 관한 것, 교수 계약제와 연봉제 등 실로 중대한 문제들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계획안에 대한 의견수렴과정을 너무나 통과의례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하필이면 방학기간 중에 의견 수렴을, 그것도 2주일만에 하겠다는 것은 무슨 속셈인지 모를 일이다. 개인 교수들에게 주어진 실제 시간은 2∼3일 정도다. 모 대학에서는 8월1일 학과장회의에서 공개했으며 학과장은 8월2일 전 교수에게 알리게 되고 단과대학은 8월5일까지 교수들에게 의견을 내라고 한다. 대학교육의 큰 틀을 바꾸는 구조조정을 담고 있는 발전계획안이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거듭 당부하고 촉구하건대 교육부는 최소한 올해 말까지라도 시간을 두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길 바란다. 진정으로 국립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아무 길이나 나서기보다 가장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