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6년 완성된 훈민정음을 기념하는 한글날이 올해로 561돌을 맞는다. 한글날을 앞두고 만난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은 “우후죽순처럼 양산되는 영어마을에 대한 교육계의 견제와 비판이 필요하다”면서 “현장 교사들이 올바른 국어관으로 언어생활을 선도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 한글날이 국경일로 재승격된 지도 2년여가 지났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경일은 ‘4절 1날’입니다. 삼일절, 광복절, 제헌절은 모두 일제침략과 관련된 기념일이고 개천절 역시 일제시대 당시 대종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1날’인 한글날은 민족의 역량과 직결되는 날이고 그런 의미에서 국경일 승격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글은 사용자 숫자로 따지면 세계 12위이고 자국민들만 사용하는 힌두어 등을 빼면 8위권 수준입니다. 최근에는 국제특허위원회가 한국어를 국제공개어로 채택, 이제 한글로도 특허출원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한글 위상이 높아진 경사지요.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국민 인식 고양을 위해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됐으면 합니다.”
-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도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글의 가장 뛰어난 점을 꼽으신다면.
“외국 학자들도 한글을 ‘완벽한 발명품’이라고 평가합니다. 미국의 한 언어학 교수는 한글의 우수성에 매료돼 20년 동안 한글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는 고급정보를 빠른 시간에 입력해야 하는 속도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일본어나 중국어는 컴퓨터에 입력하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한글이야말로 정보화시대에 딱 맞는 글자입니다. 이제 한글을 단순한 의사소통도구가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한글은 문자가 없는 사회의 구술자료를 기록하는데 가장 적합한 문자입니다. 이렇게 한국어를 세계화하는 방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일제시대에는 우리 말글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퍼뜨릴 때입니다.”
- 일각에서는 영어교육에 대한 사교육비 지출이 너무 높다며 한글과 영어 병용을 주장하기도 하고, 한자 병용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범용문자로 만들기 위해 한글을 창제했습니다. 한자로 된 어려운 법제용어 때문에 백성들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거나 형벌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세종대왕의 뜻이었지요. 그 귀한 정신이 한글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인 사회를 이끌어야 할 학자들은 한문을 고집했고 이것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글은 민주적인 문자입니다. 몇 년씩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나 일상생활의 지적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버섯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인터넷만 검색하면 학명부터 요리법, 독소제거 등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창제정신이 500년이 지나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한글전용은 논란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어마을이 곳곳에 설립되고 있고 제주도에도 정부가 수천억이 넘는 돈을 들여 영어교육도시를 조성한다고 들었습니다. 영어에 투자하는 돈의 10분의 1만 한글을 해외에 알리는데 투자한다면 큰 변화가 생길 겁니다.”
- 요즘 청소년들의 국어왜곡 현상이 심각하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한글은 ‘음소+음절’ 기능을 가진 표음식 표기문자입니다. 한글이 가진 총체적 우수성이지요. 청소년들이 특이한 신조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특징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의 신조어는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있다고 봅니다. 청소년들이 창의력을 발휘하는 통로 역할도 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언어는 어차피 생명력이 길지 않습니다. 한글날만 되면 앞다퉈 이런 문제를 지적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는 풍토가 오히려 문제라고 봅니다.”
- 세계 각국에 세종학당 설립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종학당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해외문화원과 현지대학 등에 설립되는 교육기관입니다. 지난 3월 몽골, 중국 대학들과의 협약을 시작으로 앞으로 5년간 100여개의 세종학당을 세울 계획입니다. 아직 ‘한글 세계화’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인데 세종학당이 본격적인 출발이 될 것입니다. 6월 미국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도 세종학당은 ‘21세기 새로운 다중언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국어에 대한 외국인의 수요가 증대되고 있는 만큼 웹에 기반한 다국적 사전 제작, 이주여성들이나 근로자들을 위한 교육이나 학습지 개발에도 적극 나설 것입니다.”
- 바람직한 언어문화를 위해 언론매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국어 정책은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이고 언론매체가 여론을 이끌어줘야 합니다. 특히 교육신문에 그런 역할을 당부드립니다. 교육부가 영어마을을 끌고 나가면 비판하거나 견제하는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또한 공중파 방송에서 국민의 예산을 써가며 연예인들의 잘못된 모국어를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언어정화를 위해 각별한 각오를 해야 합니다.”
- 일선 교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최근의 언어환경은 국어교사들에게 많은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올바른 국어관, 국어교육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고유어 창고는 텅텅 비어 있습니다. ‘부추’는 분추, 소풀, 솔, 졸, 정구지 등 각 지역마다 다르게 쓰이고 있는데 어떻게 부추를 가리키는 말이 하나뿐이라고 하겠습니까. 물론 교육은 규범대로 해야 하지만 방언이나 옛말 등 민족어를 소홀하게 다루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교사들이 좀더 실천적으로 학생들을 이끌어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