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부터 수석교사제가 시범 실시된다. 수석교사는 해당 학교에서 수업을 코치하고 교육과정을 개발, 보급하며 교내연수와 신임교사 지도 등을 담당한다. 한마디로 학교에서 교수지도자(instructional leader)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수석교사제는 그리 낯설지 않다. 이미 1980년대부터 교육계에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온 과제다. 실제로 1982년 정책적으로 추진됐다가 중단된 적이 있고, 1995년에도 교육당국이 추진하다가 중단한 적이 있다. 당시 예산 부처에서는 수석교사를 위한 수당까지 확보했으나, 제도 시행과 관련된 미시적 문제들을 갖고 논쟁을 벌이다 기회 자체를 상실했던 뼈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수석교사제는 교사가 교육의 중심에 서도록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동안의 많은 정책들이 교사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삼아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제도는 방향을 제대로 잡은 듯한 느낌이다. 교단교사가 존경받는 교직문화가 우리 학교에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어서 반갑고, 교장이 되는 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저명한 교사를 더 부러워하는 풍토가 아쉬운 상황이어서 더 반갑다.
필자는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동료 교수가 학장이나 총장이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 스스로 학장이나 총장이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필자가 부러워하는 것은 학계에 저명한 교수다. 학생들도 학장이나 총장보다는 저명한 교수를 더 존경한다.
수석교사가 지향하는 바는 교사 중에 계급이 높은 교사가 아니라, 저명한 교사다. 동료 교사들이 부러워하고, 학생들이 존경하는 교사다. 그런 교사라면, 필시 학부모들의 신뢰도 높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수석교사를 계급 관점에서 보려 한다. 수석교사는 일반교사의 상위 계급으로서 또 다른 교직의 위계화를 심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동안 교장 중심의 관료제도가 고착돼 있는 교직문화에 수석교사라는 또 다른 계급이 등장해 옥상옥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원제도를 관료적 위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계급적 관점이 존재하는 한 계급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관점이 기승을 부릴수록 계급투쟁이 더 강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교장이 학교지배구조에서 최고 권력 자리이기 때문에 많은 교사들이 교장이 되고 싶어 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발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원들끼리 지위 획득을 위해 경쟁한다면, 학교의 최고 권력자로서 계급화 된 교장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 시대 우리의 교직문화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관료적 위계문화가 아니라 전문적 공동체 문화이다. 교원조직은 교육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적 조직이므로 여타의 일반조직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일반조직은 계서제나 외부 통제방식에 의존, 명확한 관리구조와 절차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교원조직은 돌봄과 상호보완적 결속, 규범과 가치에 의한 내적 통제, 개인의 헌신과 동료 간의 협력 등이 강조된다.
전문적 학습공동체에서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교육방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교육방법들을 추구하며, 그 결과에 대해 반성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인자(key player)는 교수지도자인 수석교사다. 수석교사가 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자발적 헌신을 유도해야 하며, 어떤 방향으로 교육활동이 변화해야 할지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교사들 간에 협력이 강조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그야말로 수석교사의 역할이 막중하다. 전문 지도자가 아닌 단순 관리자로서는 임무수행이 불가능한 일들이다.
이제 활이 시위를 떠나려 한다. 그동안 오랫동안 교직을 지배하던 관료 문화를 벗어나 교직의 본성인 공동체 문화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10여 년 전에 아쉽게 기회를 놓쳤던 경험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