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와 근대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의 30여 년에 걸친 기나긴 우정 이야기는 한 편의 흥미로운 소설을 방불케 한다. 그들 사이의 우정이 처음 싹트기 시작한 것은 남프랑스 엑상 프로방스 시절의 개구쟁이 소년시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졸라는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엑상 프로방스로 이사함에 따라 거기서 부르봉 중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런데 동급생 중에 세잔이 있었던 것이다.
졸라는 7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데다 병약했고 지독한 근시여서 자주 같은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 때마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세잔이 나타나 개구쟁이들을 물리쳐주곤 했다. 세잔이 처음으로 못 되게 구는 아이들을 혼내준 다음날 졸라는 고마움의 표시로 사과를 선물했다. 세잔이 훗날 정물화의 소재로 자주 사과를 선택하여 그린 것은 이 ‘유년시절의 사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던 그가 그린 정물화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1890~94, 사진)은 구성원리의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선구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소년시절이래 변함없는 죽마고우로 지내던 이 두 예술가 사이의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 직접적인 발단은 졸라가 1886년에 발표한 ‘작품’이라는 소설에서 비롯되었다. 졸라가 ‘작품’에서, ‘실패한 화가’ 랑티에의 모델이 세잔임을 독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했기 때문이다. 졸라가 세잔과의 오랜 교우관계를 세부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너무 지나치게 소설창작에 이용함으로써, 세잔이 커다란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세잔은 소설 ‘작품’을 읽고 난 후, 30여 년간의 우정에 종지부를 찍는 정중하고 짤막한 편지를 졸라에게 보낸다. “친애하는 에밀에게, 자네가 보내준 ‘작품’을 지금 막 고맙게 받았네. ‘루공 마카르’총서의 저자에게 이 훌륭한 추억의 증거에 대하여 감사하네. 그리고 흘러간 옛 시절을 추억하면서 그에게 악수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하고 싶네. 흘러간 시절의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며.”
세잔은 1889년 4월 4일에 보낸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졸라를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세잔은 졸라가 1902년 9월 29일 벽난로에서 새어나온 가스 중독으로 어이없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 오랜 친구의 죽음을 누구보다 애도하며 통곡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