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영풍문고 북 갤러리. 휴지와 한지를 엮어 만든 드레스 3점이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끈다. 20여 평 되는 작은 전시공간에 수채화에서부터 수묵화, 만화,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작품 70여점이 전시돼 있다. 튀밥으로 눈을 표현하거나 책의 가장자리를 불에 태우고 못과 핀을 박은 조형물, 묵의 두껍고 거친 획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소의 그림, 홀치기염색으로 디자인한 티셔츠 등 독특한 작품들이 모여 있다. 그림 오른쪽 하단에 소박하게 적은 이름 세 글자가 전문가가 아닌 학생의 작품임을 드러내는 단서일 뿐이다.
서울 강남·서부권역에서 미술영재로 선발돼 수도여고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고교생 37명이 17~21일 5일간 올해 만든 작품을 이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이번에는 영재학급을 수료하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작품까지 참여했다. 수도여고는 재작년까지 교내 전시로만 했던 것을 지난해 보라매공원을 시작으로 올해는 무료로 대관할 수 있는 갤러리에서 전시를 한 것이다. 미술영재학급 담당 김은숙 교사는 “무료로 미술영재교육을 받은 만큼 학생들이 그동안 배운 것을 일반 시민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봉사한다는 차원에서 외부 전시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운영되는 미술영재학급은 총 4곳. 미술영재 선발시험에 합격한 서울 지역 고1~2학생들이 수도여고를 비롯해 반포고와 용산고, 청량고에서 토요일과 여름방학을 이용해 전문가들에게 연간 100시간의 수업을 받고 있다.
수도여고에서는 판화와 조형, 의상·컴퓨터그래픽·칠보공예 디자인, 전통회화, 아크릴화 등 다양한 장르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정된 영역에서 심화된 내용을 가르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막연하게 꿈꿔왔던 분야를 제대로 알고 적성을 찾기를 바라는 취지에서다. 또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창의적인 예술감각을 키워가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선발시험도 사교육을 통해 세련된 기법을 배운 학생이 아니라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학생들을 뽑는다. 이날 전시회 관리를 맡고 있던 어머니 윤 정씨는 “딸이 원래는 서양화를 하려고 했는데 수업을 받다보니 동양화에 더 관심을 보였고 그동안 미술학원은 다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은 평범한 주제와 재료를 줘도 창의적으로 만들어내는데 장소가 협소해 그 작품들을 모두 전시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이 중에서 나중에 유명한 예술가들이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