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란 한 인간을 변화시키되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하는 유목적적 행위가 바로 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자는 모든 학생의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창의력 신장과 바른 인성 함양에 힘써야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또한 교육자는 교직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과 제자를 사랑하는 따뜻한 인성, 그리고 교직의 전문성을 갖춘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육자는 모든 학생들을 자기 자식같이 생각하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여 국제화시대에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실력과 인성을 갖춘 우수인재 양성에 최선의 노력과 봉사를 하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자의 진정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12월 10일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발표가 있었다. 지난해보다 어렵게 출제된 이번 수능시험임에도 불구하고 환일고 박창희 군은 수능 전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 스타로 탄생했다. 참으로 감격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서울시 중구 만리동 산언덕에 자리 잡은 환일고는 여러 가지로 여건이 매우 열악한 사립학교였기 때문이다.
박창희 군은 내가 환일고 교장 재직 시 2006년 3월에 입학한 학생이다. 선지원 후배정인 학군에 속해있는 우리 학교는 지원자가 부족해 항상 고민이 많았다. 2005년 3월, 내가 초빙교장으로 부임한 후 우리 학교를 명문학교로 도약시키기 위해 우수학생 유치를 시작했다. 전 교직원이 한마음으로 관내 30여개 중학교를 교장, 교감, 부장교사 등 교직원 92명이 모두 조를 편성해 1년에 3회씩 방문, 우수학생들을 유치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었다. 중3 담임선생님들에게 우리학교의 교육방침과 진로지도 계획을 설명하고 최고의 실력 있는 학생들을 만들어 좋은 대학에 책임지고 진학시켜 주겠다고 호소하고 설득하여 환일고로 입학을 권유했던 것이었다.
중구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명문인 경복고, 용산고를 선호하기 때문에 기타 학교는 우수학생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악조건 하에서 오직 우리 학교를 명문학교로 도약시켜보자! 우린 할 수 있다! 나를 따르라! 불가능은 없다! 새 역사를 만들어보자 라고 교직원들을 이해시키고 협조를 받아 노력한 결과, 1지망 희망자가 100명도 안 되던 학교가 1년 후 지역사회에서 가고 싶은 학교로 여론이 형성되면서 수많은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박창희 군은 용강중 출신이다. 나는 용강중 학생들이 대부분 공립 명문고로 진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선묵 교장선생님을 직접 방문해 나의 학교 경영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한 후 중3 담임선생님들에게도 협조를 받아 용강중 학생들을 환일고로 지원토록 했다.
환일고로 가는 버스 노선도 없었다. 용강중 학부모들은 교장의 열정을 믿고, 미니버스를 계약해 학부모 부담으로 운영하면서까지 환일고에 학생들을 보내주었다. 나는 감동했다. 이런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우린 어떻게 봉사 할 것인가?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집에서 학교로 향했다. 3년간 매일같이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근무했다. 교장이 이럴진대 교감, 교사, 전 교직원이 똘똘 뭉쳐 학생 교육에 전력을 다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학생들의 학력신장은 물론 2006년에는 홍원표 군이 전국 과학창의력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작년 7월에는 고2 박창희 군이 드디어 동아일보 주최 전국 수학 경시대회에서 전국의 명문고를 모두 제치고 금상을 받아 학교의 명예를 높여주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고 교사들에게는 정신교육이 더욱 필요할 것 같아 환일고 부장교사 12명을 인솔해 2007년 8월 일본의 경기고라고 하는 130년 역사를 가진 동경의 ‘히비야 ’고등학교를 방문, 동경 최고의 명문고 학교경영을 벤치마킹 하고 돌아왔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 같다. 노력한 만큼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환일고 박창희 군의 수능만점에 거듭 축하를 보내면서 그동안 3년간 나를 도와준 교직원과 학부모님들 그리고 한마디 불평 없이 열심히 선생님들 말씀 잘 듣고 공부해준 사랑하는 우리 환일고 학생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교육자의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