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중앙지법이 한국 근ㆍ현대사 교과서를 수정하는 것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계약 내용상 저자들이 주장하는 '동일성 유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동의 없이 교과서를 변경하는 것이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주장했고, 출판사는 저자들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ㆍ개편 요구에 성실하게 응하기로 약정했으므로 정당한 행위라고 맞섰다.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의 명예와 인격을 보호하는 것이고, 이 중 동일성 유지권은 창작물의 내용과 형식, 제호 등을 원래대로 유지할 수 있는 권한으로, 저작권법에서는 저자가 비록 원고료를 받고 책을 펴내는 것을 허락했더라도 출판사 등이 그 내용을 함부로 바꾸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출판 계약 당시 교과부의 수정ㆍ개편 요구가 있으면 저자들이 필요한 원고와 자료를 제출하기로 합의했고 교과부가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수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점, 이에 불응하면 검정 취소 등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점을 종합할 때 저자들도 교과부 수정 명령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봤다.
즉 저자들이 애초에 교과부 지시가 있으면 수정에 응하겠다는 취지로 계약한 이상 출판사의 교과서 변경 작업이 저자들의 동의가 없더라도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하는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이번 결정은 계약의 세부 내용에 따라 동일성 유지권의 침해에 대한 구체적 판단은 달라지지만 교과서에 대한 동일성 유지권 등 저작인격권의 성립 가능성을 확인해준 측면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 목적상 부득이하게 변경하는 경우 동일성 유지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예외 조항에 대해 재판부는 "이는 저작물을 바꿔 교과서에 싣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지 교과서 자체를 수정할 때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판시했다.
또 수정 명령을 위반하면 검정 취소 등을 명령할 수 있는 조항 자체가 동일성 유지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는 교과서가 교육 목적에 사용된다는 점이 동일성 유지권이나 저작인격권 행사를 제한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취지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