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 평가결과를 둘러싼 오류 파문이 전국으로 확산하자 교육과학기술부가 20일 16개 시.도 교육청 전면 감사와 성적 결과 전면 재조사 등의 수습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채점과 보고 과정이 전반적으로 부실하게 관리됐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교과부가 애초부터 무리하게 성적공개를 추진해 화를 자초했다는 비판론이 커지고 있다.
◇ 무리한 성적공개가 '화근' = 학업성취도 평가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의 초ㆍ중ㆍ고교 학생 3~5%를 표본으로 삼아 실시하는 방식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전수 평가 방식으로 전환됐다.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학생 규모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려면 표집(표본추출)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교과부는 애초부터 이번 시험의 목적이 '학교 간 줄세우기'가 아니라 기초학력 미달 학생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제고사'라는 비판 속에서 전수평가를 강행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번 성적 오류 파문이 일면서 과연 교과부가 성적 결과까지 굳이 전부 다 공개할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과부는 지난해 10월 시험을 실시할 당시만 해도 시험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치르되 결과를 공개할 때는 기존 방식대로 일부만 표집해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시험을 실시하고 난 뒤 12월 초 성적을 집계하는 과정에서 성적 공개 방식이 '전수 공개'로 돌연 바뀌었다.
교과부는 이에 따라 뒤늦게 각 교육청을 통해 일선 학교의 성적을 모두 채점해 올 1월6일까지 보고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학교나 교육청에서는 자기 학교나 지역의 점수가 외부로 공개될 것이란 사실을 모르고 시험을 쳤다가 갑자기 성적 결과를 교과부에 제출하게 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만큼 애초부터 각 학교가 시험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을 가능성, 그로 말미암은 성적조작 등 부풀리기 가능성이 충분히 끼어들 수 있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교과부도 그런 가능성을 우려해 지난 16일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지역별 성적 전수 공개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가 누차 강조한 대로 이 시험의 목적이 지역 간 줄세우기가 아니라 기초학력 미달 학생 규모를 파악하는 데 있었다면 전수조사를 통해 그 규모만 파악하고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됐다는 지적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샘플조사와 전수조사 결과가 너무 달라 정확한 실상을 알리자는 차원에서 전수공개를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 시스템도 총체적 부실 = 성적 채점 및 집계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평가 방식이 표집에서 전수로 바뀌는 데 따른 채점 시스템을 충분히 보완하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시험 응시인원이 전국적으로 총 196만여명이나 되다 보니 한 곳에서 모아 일괄적으로 채점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따라서 개별학교에 채점을 맡길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초등학교의 경우 OMR 답안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아 교사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채점한 뒤 엑셀 파일에 문항별로 점수를 하나씩 기입하는 '재래식' 방식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시험 문항 가운데는 '수행평가'란 이름으로 서답(서술.단답)형 문항이 초등학교의 경우 전체 문항의 20%가량을 차지하는데, 누가 채점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물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작성한 채점기준이 각 학교에 전달되긴 하지만 단답이 아닌 서술형 답을 요구하는 문항의 경우 교사의 자의적 판단이 어느 정도 개입할 수밖에 없어 196만명의 답안이 같은 기준으로 평가됐느냐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 교과부 '책임론' 부상 = 이 때문에 교과부가 예견된 사고를 놓고 뒤늦게 감사, 재조사 등의 카드를 내세워 학교와 교육청만 탓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19일 열린 한 토론회에서 "학교, 교육청이 알아서 하도록 자율성을 줬더니 부작용이 생겼다"며 이번 사고를 일선 학교, 교육청의 잘못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결국 시스템 자체가 부실하고 더욱 치밀한 준비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성적을 공개한 교과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정교한 설계가 부족했다는 점은 시인한다"며 "앞으로 채점을 외부기관에 의뢰하거나 주관식을 화상으로 채점하는 등 보완책을 연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