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미술대가 11일 올해 입시전형부터 실기고사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여 2013학년도부터는 실기고사를 폐지하겠다는 획기적인 입시개혁안을 내놓았다.
학교 측은 '손으로 하는' 실기 평가를 일절 반영하지 않는 이 입시안이 미술 사교육의 폐해를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실기고사 왜 폐지하나 = 권명광 홍익대 총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2013학년도부터 홍대 미대에서는 실기고사가 아예 없다"고 선언했다.
홍대 미대의 실기고사는 1962년부터 시행돼 왔으므로 50여 년 만에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국내 미술인의 '산실'인 홍대 미대가 '실기고사 폐지'라는 혁신적인 입시안을 내놓은 데는 미대 실기고사가 학생들의 창의력과 잠재력, 미술에 대한 소질을 평가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로지 입시를 위한 '암기식 경쟁'으로 변질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미대 입시를 겨냥한 사교육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사교육이 미대 입시를 좌우하게 되면서 '예술인'이 아닌 '기능인'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일부 대학들에서는 학원과 결탁한 입시부정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교육에만 의존하다 보니 학교에서 미술 교과의 중요도가 날로 떨어지고 결국 공교육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학교 측은 지적했다.
권 총장은 "실기고사 방법을 여러 번 개선해 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또 다른 형태의 사교육이 나타난다"며 "이런 폐단을 줄이고자 아예 실기고사 폐지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실기시험 없어지면 어떻게 뽑나 = 실기 고사를 폐지한 후의 입시는 크게 두 단계로 구성된다는 것이 홍대의 설명이다.
우선 1단계 전형에서는 고등학교 학생부를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이 전형에서는 재학 3년간의 미술교과 성적과 함께 일반 교과 성적, 미술 동아리 활동 등 미술과 관련된 비교과 영역의 성적이 모두 평가 대상이 된다.
학교 측은 추후 논의를 통해 1단계 전형에 자기소개서 등 추가적인 전형 요소를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1단계 전형을 통과한 학생들은 다시 두 번에 걸친 심층 면접을 거치게 된다.
첫 번째 면접에서는 '미술 전문 입학 사정관'들이 학생들의 고등학교 학생부에 적힌 내용을 다시 한번 검증한다.
비교과 영역에서의 활동을 좀 더 심층적으로 점검해 미술에 소질이 있는지를 평가한다고 학교 측은 밝혔다.
두 번째 면접에서는 전공 교수들이 학생들의 창의성, 인성 등을 평가하게 된다.
이 면접 역시 구술고사로 진행되는데 창의성을 잴 수 있는 다양한 질문들이 제시될 예정이다.
홍대 관계자는 "예를 들어 '사과'라는 소재를 주고 '평화'라는 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고 묻는 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대는 소재를 주고 나중에 결과물을 평가하는 실기고사와 달리 새 전형방식은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 '미술 사교육' 폐해 사라질까 = 권 총장은 "지금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미술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심지어 미술 교사가 없는 고등학교도 있다"면서 미술 사교육을 부추기는 주범으로 실기고사를 지목했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실기고사가 없어지면 미술 사교육이 어느 정도 위축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하지만 홍익대의 이번 실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는 않다.
참교육학부모회 관계자는 "홍익대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구술고사에 대비하기 위한 다른 형태의 사교육이 성행할 수도 있다"며 "내신이나 수능 비중이 높아져 오히려 다른 부분의 사교육을 더 조장하는 역효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