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 지 반세기를 훌쩍 넘으면서 청소년들의 역사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과서의 서술이 역대 정권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북관계가 무수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대결구도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탓인지 역사교과서의 6·25전쟁 서술이 더디게 바뀌었으나 햇볕정책을 추진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는 크게 변했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탄생한 이명박 정부의 역사교과서는 참여정부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합의한 6.15선언을 이명박 정부가 존중하지 않고 북한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쓴다는 진보진영의 비난과 달리 역사교과서에는 6.25전쟁과 관련한 서술을 거의 수정하지 않은 것이다.
연합뉴스는 6·25전쟁 59주년을 맞아 그동안 발간된 시대별 역사교과서들을 분석함으로써 6.25전쟁 기술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짚어봤다.
전쟁 직후인 1950∼60년대 역사교과서들의 6·25전쟁 묘사와 관련한 가장 큰 특징은 '괴뢰정부', '적화야욕' 등의 표현이 주를 이룬 것.
1957년 발간된 교우사의 '고등국사'와 1961년 나온 탐구당의 '우리나라역사' 등은 북한을 '소련의 후원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세운 괴뢰정부'로 기술했다.
1963년 간행된 탐구당의 국사교과서는 "(소련이) 모든 애국자를 숙청하는 한편 괴뢰정권을 세우고 세계 적화의 야욕을 채우려…"라고 적었다.
김정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석연구위원은 "당시 남북이 서로 극단적 위치에서 대립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냉전의 중심에 서 있었기 6·25전쟁에 대한 서술방식도 감성적이고 정치적인 색채를 띨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사정권기인 1970∼80년대의 역사교과서에서는 '괴뢰정부', '괴뢰군' 등의 용어가 '북한', '북한의 공산주의자', '공산군' 등으로 다소 순화됐다.
1990년대를 전후해서는 북한의 남침을 직접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소련에 대한 서술도 변화를 보였다. 1990년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교과서는 "북한공산군은 소련의 지원 아래 남침을 개시했다"는 식으로 '지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수십년 이상 사용해온 '불법남침' 또는 '불법침입'이라는 용어도 1990년대 이후에는 '남침'이나 '무력남침'으로, '6.25전란', '6.25동란'은 '6.25전쟁'으로 바뀐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국사교과서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국정에서 검정으로 출판 체제가 바뀌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출간된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는 박정희 정권을 비판적 각도에서 조명하는 등 기존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내용을 수록함으로써 '역사교과서 논란'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이 교과서는 6·25전쟁의 발생원인을 국내 내전상황 및 국제정세 등과 연결지어 서술한다.
"남북 사이의 무력 충돌도 적지 않았다", "국제정세의 변화도 이러한 (통일을 둘러싼) 대립을 부추겼다"는 등의 문장이 이에 해당한다.
이를 두고 "예전보다 균형잡힌 역사서술"이라는 평가와 함께 '좌편향적 서술' 혹은 '양비론적 서술'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금성교과서에 대한 '좌편향 논쟁'이 커지자 작년 말 교육과학기술부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50곳의 수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6·25전쟁 부분은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권고안에서 제외함으로써 개정판에서도 6·25전쟁의 서술 시각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특히 6.25전쟁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엄청난 피를 흘려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았다는 부분이 국민의 정부 시절 교과서에서 빠졌다가 이번 교과서 개정판에서도 반영되지 않았다.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북한 포용정책을 추진하면서 '연합군과 한국군이 연합해 공산주의자들과 싸웠다'는 부분 등은 개정판에도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교육 관련 전문가들은 시대가 변화하고 관련 연구가 쌓이면서 과거 사건에 대한 교과서의 서술방식이 어느 정도 바뀌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도 6·25전쟁을 비롯한 근현대사에 대한 내용이 '정치'라는 외적 요인에 큰 영향을 받아온 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택민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지금까지 (시대의 변화가 아닌) 정권의 변화와 함께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크게 바뀐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유용태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도 "역사교육의 목적은 역사적 경험과 문화를 후대에 전수하는 것"이라며 "역사교과서에서 종교, 좌우 이념과 같은 정치적 시각을 배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