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여년 전 일선 학교 현장으로부터 시작되어 전국의 많은 학교로 전파된 '열린교육' 만큼 우리 사회 민주화의 정도와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 열린교육의 모태로 알려진 영국의 비형식 교육이 1960년대 영국에서 시작되었을 때, 비형식 교육을 주창한 영국의 교육자들은 그들의 아이디어를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으로부터 얻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진보주의 교육이 영국에 가서 꽃을 피웠고 그것을 다시 미국의 교육자들이 배워서 미국에 전파시켰다. 우리 나라에는 미국에 유학한 학자들을 통해서 1950년대에 이미 진보주의 교육이 도입되었고, 그 이념을 수업에 적용한 '새교육운동'이 전국에 퍼져나갔다. 그러나 불과 1, 2년만에 새교육운동은 학교 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데 새교육운동과 마찬가지로 진보주의 교육 철학에 기반을 둔 열린교육은 미국 초등학교 교육을 모델로 하여 1980년대 후반에 서울의 두 초등학교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해가 갈수록 회원수가 급속히 늘어나, 1996년에는 정부 교육 개혁의 한 방향으로 채택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작년을 고비로 열린교육의 열기가 많이 수그러들었다는 보고가 많으며, 정부의 열린교육 예산 지원도 줄어들었다. 새교육운동과 열린교육은 그 이념적 토대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모든 인간은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교사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학생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견을 떳떳하게 표현하게 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교육의 일상이 전환되어야 한다. 근래에 들어와 교실에서 학생들이 가만히 앉아 교사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떠들고 돌아다니는 현상이 부쩍 늘어나고 있고, 이것을 소위 '교실 붕괴'라고 칭하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나아가 이런 현상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맘대로 행동하게 하는 열린교육 때문이라는 비난도 있다. 교사가 말을 할 때 학생이 듣지 않고 딴 짓을 하는 것은 열린교육의 이념인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 존중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자신의 존엄성은 남의 존엄성을 인정할 때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쟌 김이라는 충남 천안교육청 원어민 교사가 교육부 '정책마당' 지에 쓴 "캐나다에서는 교사가 말을 할 때에는 학생은 꼭 들어야만 한다. 말을 하거나, 귓속말을 하거나, 중얼거리는 행동은 매우 무례한 일로 간주된다."라는 글은 존엄한 인격체들이 지켜야할 행동 규범을 잘 보여준다. 1980년대 후반 5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친 후 단계적으로 열린교육을 도입한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열린교육을 처음 도입하려는 교사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있는 말은, 학년 시작 후 첫 한달(3월)은 교과내용을 열린교육 방식으로 가르치려고 서두르지 말고 열린교육의 이념에 맞는 행동 수칙을 학생들이 몸에 익히도록 하는데 바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물건을 청결하고 질서 있게 정돈하여 남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하고, 발표나 토론이외의 잡담으로 교실을 소란스럽게 하지 말며,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되 대신 남이 말을 할 때에는 조용히 경청할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열린교육을 한다는 교실에서 공부 이외의 잡담과 소란이 있다면, 그것은 열린교육의 이념과 방법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적용한 때문이고, 열린교육을 하지 않는 교실에서 소란과 잡담이 있다면, 그것은 학생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라고 보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되고 배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성적, 가정배경, 외모, 나이, 성 등 때문에 차별하고 무시하고 따돌리는 학교와 사회에 대해 학생들이 저항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혹자가 말하듯, 열린교육 때문에 '교실 붕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가 인격체인 사람들끼리 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규율이 서있는 민주화된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열린교육이 정착되기 어려운 것이다. 미국이나 캐내다 등지로 유학간 학생들이 외국 학교에 대해 가장 만족하는 점이 바로 그곳에서는 학생들이 인격체로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캐나다나 미국의 교육은 다 좋고 우리 교육은 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규율이 지켜지는 교육을 보고 배워, 민주 사회의 기틀을 교육에서부터 세워나가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