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애써 찾지 않을 때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도적으로 사랑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인지도 모르구요. 사랑이 소중한 이유는 함께했던 시간들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개봉한 코미디 '일곱 가지 유혹(Bedazzled)'은 해롤드 래미스 감독의 유머감각이 잘 발휘된 재치 있는 작품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현대의 섹스 코미디로 번안한 듯한 이 영화는 엘리엇이 악마와 마주치면서 시작됩니다. 악마는 그에게 일곱 가지 소원을 들어줄 테니 영혼을 넘겨달라고 요구합니다. 짝사랑 앨리슨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계약에 응한 엘리엇은 거부에서 대통령까지 차례로 변신하며 소원을 성취해가지요. 처음에 엘리엇은 앨리슨과 결혼한 최고의 갑부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지요. 그러자 그는 콜롬비아의 마약왕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앨리슨은 분명 그의 아내가 됐지만 남편을 증오하면서 공공연히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웁니다. 이후에도 엘리엇의 소원은 항상 뒤틀린 채 이뤄집니다. 결국 엘리엇은 그 어떤 소원으로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 채 영혼을 넘겨줘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사실 그 계약은 무조건 악마가 이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실은 구체적이고 소원은 추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단서에 단서를 붙여가면서 소원을 빌더라도 그 소원엔 아직 붙이지 않은 변수가 늘 남아 있게 마련이니까요. 엘리엇은 왜 몇 번의 소원을 반복하고도 끝내 앨리슨과의 사랑에 실패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사랑을 숙성시키는 세월과 인연 대신 성급한 의도를 무기로 달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연을 먹고살지요. 사랑은 애써 찾지 않을 때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소중한 이유는 바로 함께했던 시간들이 소중하기 때문인데 엘리엇은 소원의 힘으로 단번에 앨리슨을 쟁취하려 했으니 실패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엘리엇의 마지막 소원은 앨리슨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지요. ‘숭고한 소원을 빌었기 때문에’ 계약이 파기되어 영혼을 되찾게 된 엘리엇은 그렇게 앨리슨을 자신의 손아귀에서 놓아주고 나서야 다시 구체적 현실로 돌아와 마침내 앨리슨과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의도’로는 포획할 수 없었던 구체성은 생생한 현실만이 지닌 덕목인 것이겠지요. 그 구체성이 멀게만 보이는 우회로와 불가해한 우연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말입니다. /서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