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면 달라지는 세상. 3D에 스마트폰에…세상은 사람의 마음마저 디지털로 만들 기세입니다. 학교 안 가도 인터넷으로 충분히 공부할 날이 곧 올거라 합니다. 신주머니를 빙글빙글 돌리며 친구와 손잡고 가던 등굣길, 지각할까 무조건 뛰고 보던 골목길, 말없이 안아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날이 오는 걸까요? 정보화시대의 발전에 숨이 찬 우리 모두를 위해 잠시 쉬어가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디지털처럼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 가슴에 오래 기억될, 느리지만 따뜻함을 느낄수 있는 풍경을 담는 기획, ‘이야기가 있는 학교 가는 길’을 시작합니다.
# 걸음을 세우는 등굣길 담장벽화고개 돌려보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역사가 70년에 이르는 초등학교가 있지만 재학생은 스무명도 되지 않습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사정이 나아보이지는 않습니다. 대도시 한 반 꾸미기에도 벅찬 숫자가 이곳에선 전교생입니다.
아이들이 발걸음을 서두릅니다. 그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데 학교 앞 개울 맞은편의 담벼락들이 울긋불긋합니다. 꽃과 나비가 보이는가 했더니 광부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습니다. 석탄을 실어나르는 열차와 갱도 폭파장면, 땀을 닦는 모습까지. 지금은 어른들에게도 희미해져가는 모습들 말입니다.
네. 이곳은 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리. 예전에는 꽤 유명했던 탄광이 있던 곳입니다. 마차탄광은 남한지역 최초의 탄광인 문경탄광(1927년), 전남 화순 구암탄광(1931년)에 이어 1935년 문을 열었고 1958년 6월 이승만 대통령, 1962년 8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찾을 정도로 중요한 국가 기반시설이었습니다. 60~70년대에는 탄광 주변 북면에만 6만여 명이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 영월군 인구의 절반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알 수 있겠지요. 석유와 전기가 석탄을 대체하면서 이곳 탄광도 73년 문을 닫았고, 휴광·재개발을 거듭하다 86년 12월에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 마차리를 포함한 북면에는 2200여명만 주거하고 있습니다. 옛날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절에는 이런 곳이었다는 흔적, 담장에 새긴 벽화만이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면사무소를 찾아 마을의 담장벽화가 아름답다고 하자 소문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그러느냐고 핀잔만이 되돌아옵니다. 면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2007년부터 희망근로사업으로 시작한 것인데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전 마을로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체국을 돌고 떡방앗간을 지나 마차중고등학교 가는 길로 접어들면 또 다른 배경이 기다립니다. 방학이면 생활계획표 속 일과는 잊어버리고 숙제와 일기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얼음을 지치거나 물놀이와 고기잡이에 바빴던 모습들, 참새 쫓고 토끼풀 뜯으러 가던 그 풍경이 200여미터 길에 가득합니다. 동화 속 이야기같은 내용이지만 매일 매일 이 길을 걷다보면 아이들 가슴에도 조금씩 담겨질겁니다.
# 빛 바랬지만 흐뭇한 기억들동강과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곳, 그리고 ‘라디오 스타’의 여운이 남은 탓인지 영월군의 담장은 온통 풍경화입니다. 높은 건물 벽에도 시장통에도, 특히 학교 주변은 더 그러합니다. 차로 스쳐지나는 봉래초등학교 앞길에는 자원봉사 고등학생들이 페인트통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동네 청년위원장에 따르면 학교 앞 도로를 따라 동화 속 모습이 펼쳐질 거라합니다.
학교 앞 모퉁이 길에는 동화책 울타리가 쳐져있습니다. 세계명작도, 위인전도, 참고서도 어른 키보다 높게 새워져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할 쯤이면 아이들 마음의 키도 저만큼 크겠지요? 빛 바랬지만 기분좋은 풍경입니다. 해는 떨어지고 아쉽지만 첫 여행을 마감할 시간입니다. 돌아가기 전 교과서 모양이 새겨진 아스콘 포장길을 걸어 학교운동장을 한 바퀴 달려봐야겠습니다.
※ 아름답거나 특별한 풍경을 가진 ‘학교가는 길’을 알고 계신 독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아침, 혹은 오후마다 특별한 일들이 벌어지거나 훈훈한 이야기가 있는 학교에 대한 제보도 환영합니다. 소개글과 사진을 메일(penwrite@kfta.or.kr)로 보내주십시오. ‘이야기가 있는 학교가는 길’을 선생님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