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1999년)라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곤혹스러운 제목의 책으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는 김동훈 교수가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책세상문고 제37권)로 또 다시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학벌'이다. 한국사회에서 학벌이란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제는 공개적으로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김동훈 교수에 의하면 첫째, 학벌은 영락없는 이 시대의 신판 신분제이다.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호패'라는 비유를 인용하는 것을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신분에서 계약'으로 바뀐 것을 근대사회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봉건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고 그 이유가 학벌이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적 귀결이 도출되는 셈이다. 둘째, 학벌은 붕당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카스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집단적이고 암묵적으로 작용하는 우리사회에 대한 부정적 역할을 지칭하는 것이다. 붕당이 갖는 배타성과 비합리성의 표상으로 소위 명문대학과 신흥 명문고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사회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최근에 서울대학교의 장회익, 오세정 교수가 서울대 개혁론을 들고 나왔는데 그 가운데에 담겨있는 메시지 속에는 학부의 개방이라고 하는 붕당이 갖는 폐쇄성의 해체와 맥이 닿아 있다고 보여진다. 셋째, 학벌은 또 독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예로서 국회의원과 교수와 CEO 및 고위공직자 그룹에 대한 독점 현상을 도표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고등교육은 어차피 세계를 무대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독점현상은 국력을 낭비하고 시야를 좁히며 사회의 위화감을 형성할 우려가 크다는 그의 인식은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넷째, 학벌은 편견이라는 그의 주장은 학벌이 문화적으로 차별의식을 낳는다는 지적이고 또 사회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자유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개인의 정체성은 집단에 매몰되어 버리고 만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역사를 왜곡하는 이웃나라에서 보고 있지만 실은 우리도 이런 무의식적 집단최면에 걸려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처럼 그가 학벌의 모순과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가 제시하고 있는 대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비판보다 대안제시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대안은 간단히 말하면 학벌이 형성되고 강화되어온 전 과정 속에 교육적으로도 타당하지 못하고 경쟁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 불공정한 경쟁이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이를 해소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서 국고의 지원을 받는 국립대학과 그렇지 못한 사립대학이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서열이 무너질 수도 없고 오히려 획일화 고정화 영구화만 촉진될 것이며 결국 학벌사회가 되고 말 것이라는 진단이다. 또 입시도 학벌사회를 형성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교수가 보는 학벌사회는 그러나 마냥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학벌의 피해자인 고교생들의 의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 당사자들의 한 목소리야말로 변화의 동력이자 엔진 이 될 수 있으므로. 그가 이 책의 마지막에서 주목하는 지점도 바로 이 것이다. 다수 피해자들의 한 목소리가 소수 수혜자들로 하여금 각성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 그런 의미에서 책의 말미에 실린 '의식개혁을 위한 일곱 가지 요구사항'은 일독할 만하다. ▷하나, 학벌을 묻지 않고 밝히지도 않는 관행을 정착시키자. ▷둘, 학벌 관념을 조장하는 언론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해나가자. ▷셋, 학벌을 차별하는 기업들을 고발하자. ▷넷, 대학 특히 명문대의 학벌조장 행위를 집중 고발하자. ▷다섯, 고등학교의 반교육적 입시지도를 지속적으로 고발하자. ▷여섯, 고등학교 학생들의 목소리를 끌어내자. ▷일곱, 사교육 시장의 학벌 관념 조장행위에 제동을 걸자. /서혜정 hjkara@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