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 옆 돌담길 사람냄새 물씬
톨게이트를 나와 60번 지방도를 달린다. 1006번 국도와 만나는 길이 나타나면 서서히 마을도 안개 사이로 드러날 것이다. 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단계(丹溪)마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이 묵은 동네에는 집집마다 단계천 냇돌로 쌓은 돌담길이 정말로 정겹고 예스럽다. 어떻게 이 깊은 산골에 이처럼 전통을 귀중히 간직해온 동네가 있을까 신기롭고 고맙기 그지없다”고 한 바로 그 곳이다. 그리고 그 마을 속에 잠겨있는 초등학교를 찾아 걸어야 한다.
등굣길 아이들을 만나볼 심산으로 일찍 서둘렀더니 제대로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동네부터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산청에는 고택이 즐비한 곳이 두 곳 있다. 이곳 단계 마을과 ‘옛스러운 담’ 혹은 ‘옛사람을 닮자’는 뜻을 담고 있다는 남사예담촌이다. 남사예담촌은 돌담길 양쪽에서 뻗어나온 회화나무 두 그루가 X자로 걸쳐 자라고 있는 이씨 고가 사진으로 익숙한 곳. 관광객의 발길도 잦다. 그런데 굳이 이곳으로 온 것은 작은 마을 전체가 사람냄새로 가득한 한옥들의 모양새 때문이다.
1630년에 지어졌다는 박씨고가와 경남문화재자료 제120호인 권씨고가를 지난다. 아침잠 없는 녀석들도 골목에 출현한다. 아직은 쌀쌀한 아침공기에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쑤셔 넣고 걷는 모양새가 우습다. 낮게 드리운 햇살에 눈이 부신지, 잠이 아직 덜 깬 것인지 연신 눈을 부벼댄다. 낯선 방문객의 발걸음에 놀라 힐긋 뒤를 보더니 달려가 버린다. 담장 옆으로 흘러넘친 넝쿨이 빛에 감기자 골목의 표정들도 달라진다.
단계마을 옛 담장은 2006년 등록문화재 제260호로 지정됐다. 특징이라면 까치발을 하고도 안팎을 들여다 볼 수 없을 만큼 높다는 것. 담 밑쪽은 큰 돌로 진흙을 사용하지 않고 쌓았고 그 위에 작은 돌과 진흙을 교대로 쌓아 올렸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전국에 있는 돌담길 마을 18곳을 문화재로 등록시킨 것이 이곳에서 받은 깊은 인상 때문이었다는 글이 거짓이 아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파출소도 보건소도 겉모양은 모두 한옥으로 지어졌다. 1983년 ‘한옥형 소도읍가꾸기 사업’ 을 시행해 전체 경관도 한옥에 맞게 정비된 탓이다.
학교가 가까워졌나보다. 까르르 웃음 소리가 골목 여기저기로 번진다. 앞서 가던 녀석들이 교문으로 들어서고 이어 스쿨버스에서 내린 아이들도 달린다. 유치원생을 포함해 전교생 82명인 학교에 생기가 돈다.
모퉁이를 돌면 서있는 학교 정문이 특이하다. 3칸 솟을 대문. 대문 맨 위에는 삭비문(數飛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자꾸(數) 날갯짓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어린 새가 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날갯짓을 하는 것이 곧 배움이라는 것이다. 거의 30면이 다 됐고 보수하는데만 수천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기와집에 돌담길만 옛것의 흔적인가 했더니 마을 전체가 시간이 멈춰버린 풍경이다. 교실에선 훈장님이라도 당장 튀어나올 듯하다.
“선비문화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곳입니다. 부임하면 동네 어르신들이 교무실에서 이 마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 테스트를 하기도 합니다.”
3월에 부임한 이강기 교장도 이 곳의 정서를 잘 아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시조 외우기를 통한 선비문화 체험이 이 학교 특색교육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조 암송대회도 개최하고 홈페이지 코너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 시간도 아이들도 느릿느릿 간다수업 시작이 다되었는데 이제 교문을 들어서는 녀석도 있다. 그래도 천천히 교실로 올라간다. 이곳에선 시간도 아이들도 느릿느릿 간다. 홀로 축구공을 차는 4학년 꼬마에게 물었다. 돌담길을 걸으면 느낌이 어떠냐고. 맨날 보는 길인데 무슨 이야기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구나. 녀석에겐 지금 드리블이 더 중요할 뿐. 그래도 아이가 성장하고 나면 이 굽은 등굣길과 학교 운동장은 문신같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돌아가야 할 시간.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한 길이라고 학교에서 일러 준 그 길에서 시동을 건다. 꽃들이 진 자리에 잎들만 푸르다. 풍경은 멈추고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