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스승의 날에 뜻밖의 촌지를 받았습니다. 겉봉에는 `광주에서'라고만 써 있어 누가 보낸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빨간 포장지를 뜯으니 `좋은생각' 5월호가 나왔습니다. 책갈피에는 편지와 또 다른 봉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속의 만 원짜리 상품권 석 장은 저를 당황케 하였습니다. 교육대학의 교수가 촌지를 받고 신고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학에는 촌지신고센터가 없어서 이렇게 글로 신고하려 하는데, 의장님의 절차에 비춰 흠은 없고 신고 방법은 적절한지요? 저는 학생회가 주최한 스승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가 감동 받고 깊은 생각에 오래 잠겼습니다. 그러고는 이 촌지를 신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올해 발령을 받고 처음으로 맞는 스승의 날에 다양한 학급행사를 준비했던 제자가 정작 행사 당일 출근하지 못하고, 인천에서 공주까지 찾아오겠다는 것을 설득하느라 진땀 흘린 것이 어젯밤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의장님, 촌지가 무엇이길래 휴교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촌지를 받으면 다 신고하는지 알 수 없지만, 첫 발령을 받은 저의 제자들을 위해서라도 촌지의 개념을 확실히 해 주고, 신고 방법을 올바로 가르쳐야겠다는 것이 지금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편지 내용에서 촌지의 뜻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등국어교육특강'을 듣고 느꼈던 `열정'과 `눈뜸'의 감동이 사그러지지 않도록 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표준 발음을 익혀 가는 입모습, 올바로 틀을 잡아가는 손놀림과 글씨체, 차츰 맑아지는 아이들의 눈동자, 굵고 튼실해 가는 생각의 깊이에서 이파리의 풋풋함과 하얀 실뿌리를 보고 있노라면 교실 안이 환히 밝아집니다. 아버지를 눈뜨게 한 청이의 효성과 교사를 눈뜨게 한 선생님의 열성을 생각하며 스승의 날을 맞으렵니다. 꼭 진실한 아이들의 든든한 기둥이 되겠습니다." 상품권을 넣었다는 말 한마디 없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고하면서도 힘이 솟고 눈이 부신 듯 시력이 맑아지는 이 신비한 힘이 촌지 3만원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받아선 안 된다는 말씀, 진정이십니까. 이런 느낌이 이순을 바라는 나이를 헛 산 물욕 때문이란 말씀이 진실입니까? 저는 이 글을 쓰면서 25년 전 광희중학교 교사 시절을 회상해 봅니다. 구멍가게 학부모가 슬리퍼를 사다 주셔서 서울을 떠날 때까지 8년 동안 기워 신던 추억과 스승의 날에 행상 광주리를 들고 청소하는 학생들 앞에 나타나셔서 제 호주머니에 꼬깃꼬깃한 5천 원 권 한 장을 넣으며 "오늘이 그런 날이 아닌디 부디 훌륭한 선상님 되세유" 하시던 한 어머니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촌지를 받던 현장을 함께 보았던 어린 학생들에게 그토록 큰 상처를 주었다는 의장님의 말씀을 깨치는 데 25년이 걸렸습니다. 그 5천 원으로 스케치북을 다섯 권 사서 가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나눠 주며 흐뭇해하던 제 모습은 초라해졌습니다. 교육받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을 나타내어선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들의 5월은 잔인한 달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젊은 교사들이 촌지의 개념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 학교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고마움의 표현 방법을 잘못 가르쳐 온 저는 부끄러워 머릴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의장님, 첫눈 오는 날 촌지를 들고 학교를 찾아 담임 선생님과 나누던 정겨운 대화를 누가 끊어 놓았는지요. 학년을 마무리하는 종업식 날, 뿌듯한 얼굴로 난로 가에 서 계신 선생님을 찾아오던 어머니의 모습을 우리는 왜 볼 수 없게 되었습니까. 스승의 날을 위해 곱게 접던 어린이들의 종이 학을 어떻게 부정한 촌지로 왜곡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한국교원대학교 계절제 대학원 강의를 마친 지 꼭 115일만에 현직 교사로부터 받은 3만원 상품권 촌지를 신고해야 하는 저의 심정은 참담합니다. 제가 한 세대에 걸쳐 받은 촌지에 대하여 속죄하는 마음으로 쓴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개인이 밉더라도 자진 신고한 정신을 살피어 제 말씀 한번 들어주십시오. 이를 물고, 무너져 내린 교단을 다시 쌓는 선생님들에게 힘있는 여당의 정책위 의장님, 위로의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세상이 바뀌기 전에 한 말씀 들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