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5학년이 되면 좀 나아지려니 했는데, 지호는 개학 이틀째부터 또 일을 저질렀다. 아침부터 복도 동편 출입문 유리창을 맨손으로 쳐 와장창 깨부수고 만 것이다. 유리창 하나가 바닥으로 와장창! 내려앉으면서 자잘한 유리 파편들이 복도 이곳저곳으로 마구 튀었다. 유리파편에 찢긴 지호의 손 여기저기에서 피가 뚝뚝 듣고……. 이런 장면은 하도 봐와서 새삼 놀랄 것도 없으련만 아이들은 피만 보면 매번 어쩔 줄 모른다. 특히 여학생들은 이런 일이 벌어지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떤다.
‘어째, 저 피 좀 봐! 어, 어떻게 해? 빨리 샘께 알려!
그래도 당사자인 지호는 흐르는 피 따위에는 아랑곳없다. 오로지 입술을 악문 채 눈에 핏대를 세워 깨부순 복도 유리창 너머를 노려볼 뿐. 지호가 노려보는 그 곳에는 우리 반의 짓궂은 몇몇 남학생들이 한데 몰려 우왕좌왕 하고 있다. 마음 같아선 지호 편을 들고 싶진 않지만 이번 일은 지호보다 그 아이들이 더 나쁘다. 지호를 놀리고 도망을 치는 것 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복도 유리문을 왜 닫아걸어 이 난리를 피우는가 말이다. 지호는 성질나면 무엇이든 내리치는 줄 뻔히 알면서…….
교무실에서 일을 보던 새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의 연락을 받고 급히 이층으로 달려오셨다. 복도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뛰며 달려오는 폼과는 달리 표정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이미 각오했던 게 분명하다. 선생님은 조용조용 지호를 다독거려 아래층에 있는 보건실로 데려가면서 나를 불러 몇 가지 당부를 하셨다. 그 당부란 아이들을 전부 교실로 모아들여 유리창 파편 근처는 얼씬도 못하게 할 것과 행정실에 도움을 청하는 것 등이었다. 나에게 그런 당부를 한 것은 내가 4학년 때 반장을 한 사실 때문일 수도 있고, 이미 선생님들 사이에 ‘애 늙은이’로 통하듯 매사에 어른스럽고 야무진 내 성격 덕분일 수도 있다.
아무튼 특이한 것은 평소에는 내 말을 잘 듣지도 않는 아이들이 오늘은 모두 이상하리만큼 내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말을 잘 듣지 않던 아이들이 오늘 사건의 주범들인데다, 모두들 새 담임선생님이 어느 정도 화가 나셨는지, 그 화가 어떤 벌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더군다나 새 담임은 이제 갓 군대에서 돌아온 혈기왕성한 총각 선생님이 아닌가. 따라서 나는 그 기세를 이용해 평소보다 더 딱딱거리면서 아이들을 휘어잡았다.
“선생님이 떠드는 사람 이름 적어랬다!”
“복도 쪽은 내다보지도 말랬다!”
둘3월이 가기 전에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
“지호는 그냥 살살 해선 말 안 들어요.”
“선생님, 지호는 좀 모자라서 강하게 나가야 알아들어요!”하며 우리가 그토록 충고(?)했는데도, 강하게 나오기는커녕 그저 지호의 비위를 살살 맞출 때 알아봤다.
“자, 우리 착한 지호, 제 자리에 앉아야지.”
“선생님은 지호를 믿는다.”
이런 선생님의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호는 다시 교실 뒷문 유리창을 와장창! 내려 앉힌 것이다. 지난번에 다친 자리가 채 아물지도 않은 같은 주먹으로……. 물론 이번에도 이 일은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일을 보시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에 일어났다.
선생님은 전처럼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또 헐레벌떡 달려와, 내게 전과 똑같은 당부를 하고는 지호를 데리고 보건실로 내려가셨다. 하지만 이번 지호의 손 상처는 한층 심각하여 읍내병원까지 다녀오셔야만 했다.
병원에 다녀온 뒤 담임선생님은 한동안 손에 얼굴을 파묻고 계셨다. 아무래도 지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매우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지호도 좀 긴장이 되는 지 모처럼 제자리를 지키며 담임선생님을 힐끔 힐끔 훔쳐보았다.
‘이번에는 어떻든 좀 강하게 나오시겠지…….’
이러한 내 짐작은 또 한 번 뒤집혀졌다. 참 어이없게도 그토록 고민한 끝에 담임선생이 택한 방법은 지호와의 ‘합체’놀이였기 때문이다. ‘합체’놀이란 그때부터 담임선생님이 어디를 가시든 지호를 달고 다니시는 폼을 보고 내가 지은 이름이다. 그 일 이후 선생님은 교실을 비울 순간이 되면 가만히 지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손을 내밀며 지호에게 ‘합체!’라고 속삭이시는 것이다. 말썽쟁이 지호를 길들이려면 짐짓 엄한 얼굴과 근엄한 목소리로 ‘따라와!’라고 소리쳐도 될까 말까한데도 말이다. 더 기 막히는 일은 그에 대한 지호의 태도이다. 내가 아는 지호는 남의 말은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알아듣는다 해도 늘 거꾸로만 행하는 아이다. 그런 얘가 신기하게도 선생님의 ‘합체!’라는 말은 단번에 알아듣는다. 뿐만 아니라 그 때마다 자신이 무슨 대단한 뽑힘이라도 받은 듯 당당하게 선생님의 손을 잡고 교실을 나서선 의기양양해서 돌아온다. 그 모양을 보면 선생님은 지호를 데리고 가서 벌을 세우시는 것도 아님이 분명하다. 적어도 한쪽 귀퉁이에 세워놓거나 손을 들고 꿇어앉히거나 해야 하는데....... 선생님은 지호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날이 갈수록 지호는 점점 더 가당찮게 변해 요즈음은 아예 ‘합체’를 기다리며 사는 아이 같다. 그 어떤 재미나는 놀이 중이라도 ‘합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가 하면, 선생님께 매달려 천진스럽게 애교를 떨기까지 한다. 정말이지 나는 지호와 함께 한 지난 4년 동안, 지호가 그런 천진스러움과 애교를 지녔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셋그렇게 변해가는 지호의 모습에 내가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다시 지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일은 쉬는 시간도 아닌 체육시간에 일어났고, 그 사건의 주범이 우리 담임선생님이라는 데 나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물론 그 일 시작은 지호에게서 비롯되었다. 선생님의 ‘줄을 서라!’는 거듭된 명령에도 불구하고 지호가 ‘날 잡아봐라!’식으로 선생님을 애먹이며 피해 돌아다닌 데서 이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의 결과는 너무도 엉뚱했다. 선생님은 가까스로 요리조리 도망을 다니는 지호를 붙잡으셨다. 그리고는 ‘요놈, 이 미꾸라지 같은 놈!’ 하며 꿀밤이라도 주듯 들고 있던 서류철로 지호의 머리를 가볍게 치셨다. 정말이지 그건 누가 보아도 사랑에 겨운 동작이었지 결코 지호를 벌주거나 상처를 주려는 행위가 아니었다, 다만 불행히도 선생님은 들고 있던 서류철 모서리가 날카로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셨던 것이리라. 선생님이 서류철로 지호의 머리를 가볍게 친 바로 그 순간, 지호의 머리에서 갑자기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내린 것이다.
머리에서부터 얼굴을 타고 흐르는 피는 그 어느 때보다 아이들을 흥분시켰다. 반 아이들은 그 어느 때와 달리 아예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불고 외마디를 지르는 등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져서는 아무 생각 없는 자동기계처럼 움직이셨다. 한손으로 지호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지호의 피 흐르는 얼굴을 바쳐 들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보건실로 향하셨다. 나 역시 너무나 놀라 아이들을 단속해야 할 반장의 의무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보건실에서도 선생님은 여전히 넋 나간 사람 같았다. 지호를 한 팔로 감싸 안은 채 응급처치 하는 보건선생님의 손길을 따라 움직이는 텅 빈 눈빛……. 그 모습을 보건실 문틈을 통해 훔쳐보는 내 가슴이 자꾸만 저려왔다.
응급처치를 끝낸 보건선생님은 거즈에 물을 묻혀 지호의 머리에서부터 얼굴로 흘러내린 핏자국을 정성들여 닦아 주며 나직이 한마디 내뱉으셨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지는 않네요. 아마 핏줄부분에 상처가 나서 이리 피가 많이 났나 봐요. 많이 놀라셨지요?”
그제야 선생님은 지호에게서 손을 떼고는 마치 뼈도 없는 사람 모양 허물어지셨다. 의자에서 마룻바닥으로 철버덕 주저앉는 것까진 봐주겠는데, 세상에! 기어이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셨다. 난 적어도 어른들은 그렇게 울지 않는 줄 알았다. 특히 남자 어른들은 울어도 그처럼 소리 내어 울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 선생님은 마치 엄마를 잃은 세 살 먹은 아기처럼 그렇게 애처롭게 몸부림치며 우시는 것이다.
“내가 그랬어요, 엉엉! 내가 지호를 이렇게 엉, 엉, 엉! 피 흘리게 했어요. 내가…….”
넷선생님의 울음소리는 보건실 창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던 반 아이들에게도 들렸나보다. 내가 눈물을 훔치며 다시 운동장으로 내려오자 저마다 눈시울이 벌개져선 우르르 내 곁에 몰려들었다.
“우리 샘, 참 불쌍하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하지만 지호 할머니는 담임선생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으신 게 분명하다. 지호의 소식을 듣고 거의 맨발로 달려오다시피 한 지호의 할머니는 다음 수업을 시작한 교실 문을 와락 열어 제치며 소리쳤다.
“누가 그랬다고? 누가 우리 지호의 머리를 깼다고?”
우리의 눈길은 일제히 선생님께 쏠렸다. 선생님은 겨우 울음을 그치고 교실로 돌아와 막 칠판 앞에 서신 참이셨다.
“너 이놈 선생, 나 좀 보자!!”
지호 할머니의 그 기세는 당장이라도 교실을 박차고 들어와 선생님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 했다. 그러나 지호 할머니가 팔을 거둬 부치고 씩씩대며 교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호가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는가했더니 쏜살같이 달려 나가 선생님 앞을 막아서며 소리치는 게 아닌가.
“선생님, 합체!”
동시에 지호는 한 손을 재빨리 뒤로 돌려 선생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지호의 그 외침과 동작은 마침내 나를 비롯한 반 아이들 전체를 자리에서 벌떡 일으켜 세우고야 말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할머니보다 한 발 앞서 선생님께로 달려가 선생님을 삽시간에 에워쌌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 우리의 입에서도 지호와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 합체!”
더불어 내 한손은 선생님의 나머지 한 손을, 나의 다른 손은 또 옆에 선 아이가 잡고……. 이런 식의 발 빠른 우리의 손잡음은 마침내 스무 명이 넘는 몸과 몸을 이은 거대한 합체를 이루고야 말았다. 지호의 할머니는 느닷없는 우리의 행동에 주춤할 수밖에 없으셨고, 우리의 외침을 듣고 달려오신 이웃 반 선생님들과 교장선생님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