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 그릇이 크다거나 작다라는 말을 할 때 그릇이 의미하는 바는 능력이나 인격 또는 포용력을 가리킨다. 그릇은 이렇듯 종종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한자성어인 ‘군자불기’(君子不器)의 경우 이를 직역해보면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의 뜻이 되니 그릇이 반드시 좋은 뜻으로만 쓰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그릇’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을 알려면 우선 한자인 기(器)자의 원뜻을 살펴보아야 한다.
기(器)자의 모양을 분석해보면 우선 네 개의 구(口)자가 있고 그 가운데에 견(犬)자가 있다. 이것은 어떤 상황인가 하면, 바로 여러 그릇이 있는데 이를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만약 이 그릇이 평범한 것이라면 개가 지킬 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릇은 보통의 그릇이 아닌 아주 귀중한 그릇임에 틀림없다.
옛날에 그릇 중 어떤 것이 귀중한 물건으로 대접받았을까? 그것은 바로 제기(祭器)이다. 옛날에 자연신이나 조상신께 제사지낼 때 쓰던 그릇은 특별한 재질에 화려한 장식을 가해 정성스레 만든 것으로, 제사가 없는 평소에는 사당에 보관했다. 그러나 항상 도난의 위험이 상존했기 때문에 개로 하여금 지키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성어에서 말하는 그릇은 일상의 밥그릇이나 국그릇이 아닌 값비싼 제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릇이 아니다’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제기는 제사지낼 때 그 크기와 모양에 따라서 그 용도가 한정해져있다. 과일 담는 그릇, 생선 담는 그릇, 나물 담는 그릇 등의 규정이 있어 그 법도대로 해야만 경건한 제사가 됐다. 따라서 여기서 ‘그릇이 아니다’라는 말은 결국 ‘제기처럼 용도가 한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즉 군자는 한 가지 뛰어난 능력만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품과 식견으로 이러한 기능인을 잘 배치하고 조화시키고 능력을 잘 발휘하게 하는 사람인 것이다. 정부건 기업이건 어떤 단체건 그 수장의 자리에 이러한 사람이 앉는 것을 바란다면 시대착오적 발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