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은 29일까지 각 학교에 체벌관련 규정을 폐지하고 체벌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한 뒤 학생생활규정을 제·개정해 보고할 것을 각급 학교에 지시했다. 교육청은 이 과정에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대체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과 홈페이지, 학급회의 등을 통해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취합하고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생활규정 제·개정을 대부분 완료했다. 이 과정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는 것이 교원들의 반응이다. 체벌전면금지를 반대한다는 의견은 끼어들 틈도 없이, 체벌 대체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모아 선택하면 되는 식이였기 때문이다.
서울 강북구 소재 중학교 권모 교사는 “교육청에서 이미 체벌전면 폐지한다는 입장을 정해버리고 규정을 개정하라는데 학교에서 따르지 않을 방법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벌점제나 교실격리, 봉사활동, 학부모 면담 등 체벌 대체 프로그램의 실효성이 미비해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나 교권 침해가 가속화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수업시간에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일부 고학년 학생들에게는 체벌 말고는 이에 상응하는 벌이 없어 다른 학생들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학교에서는 벌점카드제를 적용할 계획이지만 일부 학생들에게는 벌점만으로 훈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교총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교원들은 서울시교육청의 지침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다른 학생의 수업을 방해해 성찰교실로 가라고 했더니 집으로 가 버리는가하면 ‘생각하는 의자’에 홀로 앉게 해도 큰소리를 지르고, 교사가 훈계를 하자 ‘교육감한테 이르겠다’, ‘때리면 안되는 거 아시죠’라며 교사 앞에서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지침이 체벌에 대한 모든 책임을 교사들에게만 떠넘기고 교권은 무시한 채 학생 인권만 존중하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 교사들의 목소리다. 결국 교사들이 학생들의 교육에 무관심해지는 쪽이 규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마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중학교 윤모 교사는 “예전에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딴짓을 하면 혼을 내서라도 학급 학생 모두를 수업에 끌고 가려고 애썼는데, 이제는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서 그런 학생들도 그냥 내버려두고 공부할 사람만 따라오라는 식으로 돼버릴 수밖에 없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수업을 듣지 않고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을 방과 후에 남아 공부하도록 지시하곤 하지만, 이마저 학원을 가야해서 안된다며 학부모가 전화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선영 한국교총 교권국장은 “폭력이나 비교육적 체벌은 근절돼야 하나 학생의 잘못에 대한 체벌까지 금지시켜 대다수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교사의 학생지도권이 상실되고 있다”며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 등 국가적 기준 없이 인기영합주의로 강행한 이번 조치에 대한 법적대응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총은 28~29일 교과부와 서울시교육청을 방문, 이 지침에 대한 개정을 요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