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우리 모두 토끼 같은 아이들 앞에 칼바람에 얼고 녹기를 수 백 번, 그렇게 깨달음으로 부활하는, 짝짝 찢어진 노란 황태 해장국 한 사발이 되어보자.
눈처럼 사무치는 배경은 없다. ‘설국’이 그렇고, ‘닥터지바고’가 그렇다. 서정인의 소설 <강>도 한 밤 중 하얀 눈이 내리는 것으로 끝난다. 모든 사람이 잠든 밤, 소리 없이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작부(酌婦)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결혼한 사람들은 좋겠다며 상념에 빠진다. 눈을 맞는다는 것, 어쩌면 세례의식이다. 주정꾼이건 술집 작부이건 그 순간만큼은 죄사함을 받는다. 미사포를 쓰듯 순수로 거듭나는 성결례, 이것이 눈의 순결성이다.
나는 비발디의 사계, 겨울 2악장을 듣는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그리운 것들을 하나씩 호명해 본다. 새해로 첫 걸음을 디뎌야 하는 시간. 정갈한 식탁에서 안도현의 ‘겨울 강가에서’를 음미한다. 불현, 세상의 문을 열고 떠나고 싶다. 눈이 펑펑 내리는 곳이면 어떤가. 무작정 떠나야 한다. 기억 속에 잃어버린 소를 찾으러 떠나도 괜찮겠다. 기왕 해가 뜨는 동쪽이면 더욱 좋겠다. 달마도 동쪽으로 갔으므로. 세상을 향한 그 비장한 대응. 그곳에 연꽃이 있고 내가 찾아야 할 소(牛)가 있다.
눈 덮인 태백산맥을 한 번 넘어보라. 눈이 멀 것 같은 일출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설산을 넘을 때 상징 하나를 만날 것이다. 설해목! 험준한 능선에 서서 폭설에 가지가 부러져도 오연히 서있는 그 고사목. 동안거에 들어 고행하는 이처럼. 그 눈부신 고사목 하나를 만난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눈이 온종일 내리는 날,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선생이다. 재주도 욕심도 없는 선생이다. 재주라곤 아이들 가르치는 것밖에 없는, 세상의 지식과 삶의 지혜를 퍼주고 스스로는 한없이 가난해지는, 실로 우리는 헛헛한 선생이다. 그리하여 행복한 선생이다. 문득 가람 이병기 선생이 떠오른다. 평생 제자복, 술복, 난초복으로 살다간 사람. 눈 내린 겨울에 마루에 앉아 그윽한 암향(暗香) 속에 제자를 기다리던, 새삼 그의 눈매가 깊다.
나는 항상 눈 덮인 만정저수지를 끼고 외출을 한다. 그 저수지는 매번 나에게 풍경화 몇 폭을 그려준다. 파릇한 호밀이 눈을 털고 무성하게 자라나는 들판. 한 뼘 쯤 자란 호밀들이 파릇하게 눈을 털고 있다. 바람이 불면 스스로 바람이 되고 서리가 내리면 칼날이 되어 추위와 맞서는 저 투지. 호밀은 폭설이 내려도 눈을 녹이며 뾰족한 초록의 부리를 내어민다.
살아있는 것들에겐 혹한을 녹이는 따뜻한 뿌리가 있다. 교육이 살아있다는 것은 선생의 가슴이 보일러처럼 따뜻하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실뿌리 같은 아이들이 거친 흙을 이겨낼 줄 안다는 것이다. 한 겨울 호밀밭을 거닐어 본 사람만이 안다. 노고지리가 오월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호밀을 노래하는 것을. 그 어린 것들이 황금이삭으로 출렁인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보람이냐. 사람이나 식물이나 뜨거운 뿌리를 지녀야 한다.
눈이 퍼붓는다. 보기 드문 함박눈이 퍽퍽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교무실에 앉아 나는 졸업반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린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반성해 본다.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포근한 눈이었고 얼마나 순결한 바람이었으며 얼마나 뜨거운 뿌리였는가를.
눈 덮인 한 겨울, 한라산에 오른 적이 있다. 일부 등산로를 개방한 그 첫날, 운무에 가려진 백록담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타나토스(Thanatos)적 감상에 젖었다. 앞 사람의 발자국만 따라 디뎌야 하는 산행, 잘 못 디디기라도 하면 허벅지까지 빠져버리는 그 길을 오르며, ‘나는 선생인가’를 한나절 되새김했다. 차가운 눈보라가 내 몸의 온기를 죄 빼앗아 갔다. 그러나 정작 내 몸에서 빠져나간 게 세속의 부피였음을 내려오면서 알았다.
그리하여 강원도 횡계에서 만난 황태에 내 삶을 부치려 한다. 차가운 덕장에 매달려 참선득도하는 수 만 마리의 황태들. 부질없는 내장 다 버리고 칼바람에 얼고 녹기를 수 백 번, 그렇게 깨달음으로 부활하는 고행자들. 석 달 열흘 동안 해풍을 이겨내고 별을 머금어야 누런 황태가 된다는 것. 기꺼이 가난한 이의 밥상에 올라 자신의 삶을 송두리 째 보시해야 목숨이 완성된다는 것.
신묘년 새 해, 우리 어린 생명들에게 참 생명을 불어넣어야겠다. 아이들의 발 하나하나를 따뜻한 온기로 닦아주고 안아주어야겠다. 아이들 가슴에 감춰진 별을 꺼내어 푸른빛으로 점화시켜야겠다. 우리 모두 토끼 같은 아이들 앞에 짝짝 찢어져 노란 황태 해장국 한 사발이 되면 얼마나 족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