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내 일부 학교가 급식비 납부 등을 확인하기 위한 '급식카드 식별기'를 설치, 운영해 일부 급식비 미납 또는 급식 미신청 학생들이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하거나 몰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김상곤 도교육감 취임이후 '눈치보지 않고 밥을 먹게 하겠다'며 일괄 무상급식을 추진해 온 경기도교육청 정책과도 어긋나는 것은 물론 '비교육적이고 학생들의 인권 침해'라는 지적까지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2일 도교육청과 일선 학교에 따르면 수원 A고등학교는 교내 식당 입구에 전교생에게 지급한 급식카드를 식별하기 위한 기기 2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영양교사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식사 전에 급식카드를 이 식별기에 대거나 고유번호를 자판기로 입력해 급식 신청 및 급식비 납부 여부를 확인받은 뒤에 식사를 할 수 있다.
이 학교 영양교사는 "급식카드 식별기는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납부 했는지를 확인해 주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말하면서도 "급식 미신청 학생들이나 식사를 2~3번 하는 학생들로 인해 급식비를 내고도 음식이 부족해 밥을 못먹는 학생들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한 것도 식별기 설치 주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급식비를 미납한 학생도 일정 기간은 식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힌 이 교사는 "그러나 3개월 등 장기간 급식비를 미납할 경우에는 식사가 제한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학교 학생들은 점심의 경우 100%, 저녁은 70~80%가 급식을 신청한 상태다.
이 학교 3학년 한 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급식비를 못내는 친구가 있는데 카드 식별기때문에 몰래 식사를 하거나 아예 먹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며 "카드식별기 운영이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학교 행정실장은 "급식카드 식별기 설치 운영이 비교육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며 "그러나 효율적으로 급식을 관리할 뾰족한 대안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수원의 B고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학생증 겸용 급식카드를 지급한 상태에서 역시 식당 입구에 카드식별기를 설치한 뒤 급식비 납부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이 학교 영양교사는 급식카드 식별기를 통해 미신청 및 급식비 미납이 드러나는 만큼 식사를 못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각 학교 관계자들은 도내 상당수 고등학교가 급식카드 식별기를 설치 운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급식카드 식별기에 대해 일부에서 "급식카드를 식별기에 갖다 대면 공짜 밥을 먹는지, 급식비를 냈는지 다른 친구들이 다 알게 되는 것 아니냐"며 "도교육청은 눈치 안보고 밥을 먹게 하겠다고 하는데 일선 학교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눈치를 보게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경기지부 김영후 정책실장은 "급식카드 식별기 설치 운영은 지문을 찍게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비교육적이고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학생들을 밥도둑으로 만드는 식별기 설치를 개선하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진보신당 노회찬 전 국회의원은 2006년 5월 "광주지역 22개 학교가 급식비 미납 식별기를 설치 운영해 급식비 미납사실을 급우들에게 알리는 비교육적일을 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인격을 훼손한 해당 학교장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말해 한때 학교의 급식카드 식별기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학생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만큼 급식카드 식별기 설치를 못하도록 한 상태며, 불가피한 경우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며 "앞으로 학생 인권침해가 없도록 식별기에 대한 지도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