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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론> 농사 한 번 지어 볼랍니까?

“일부 의사가 의료사고를 냈다고 전체 의사에게서 수술용 칼을 빼앗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일부 부적격 선생의 체벌로 인해 전체 선생에게서 권위와 교편을 거두게 하는 것은 원칙혼동의 오류이다. 나아가 사람 농사를 모르는 눈먼 애정일 뿐이다.”

언젠가 소로우의 ‘월든’을 읽던 필자는 자연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가까운 시골에 작은 텃밭을 구입한 적이 있다. 퇴직을 하면 시골에 들어가 밭을 일구며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틈틈이 옥수수, 감자, 아욱, 완두콩, 무 등을 심고 향기로운 땀을 흘렸다. 그 결과 내 식탁은 사계절 푸르른 행복이 넘쳤다.

식목일 때쯤인가. 나는 또 나무시장에 가서 감나무, 밤나무, 복숭아, 호두, 홍매화 등을 몇 그루씩을 사서 심었다. 다행히 나무들은 고맙게도 해마다 키를 올렸다. 바라만 봐도 주렁주렁 달릴 열매에 나는 ‘타샤의 정원’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초식동물의 여유로움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밭에 나간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누군가가 나무의 우듬지를 싹둑싹둑 잘라놓았던 것이다. 후투티의 머리깃처럼 멋지게 자라던 나무가 졸지에 볼썽사나운 꼴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밭 아래쪽에서 일하던 촌부에게 누가 내 나무들을 저 모양으로 만들었는가 물어보았다. 뜻밖에 그는 자신이 그랬노라 했다.

그러니까 그가 들려준 말은 이러했다. 그냥 심어놓기만 하고 내버려 두면 나무가 엉망이 된다는 얘기였다. 자고로 나무란 가지가 웃자랄 때 쳐주기를 잘해야 이담에 튼실한 과일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열매가 개살구가 된다는…. 참으로 전문가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문득 ‘교육’을 한다는 나 자신의 통찰력 없음이 부끄러웠다.

교육이란 나무를 심고 가꾸는 행위와 유추적 관계에 있다. 객토할 때 석회를 뿌리고 거름을 주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애정을 듬뿍듬뿍 주어야 한다. 또 적당한 시기에 살충작업도 하고, 쾌락적 해충이 아이들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그런 뒤 순을 따주고 가지를 쳐서 풍성한 교육의 효과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훌륭한 사람이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 것을, 첨단 스마트폰 시대의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진보와 인권, 원칙을 앞세우는 우리에게 오히려 선조들은 늠연히 말한다. “아이를 어여쁘게 여기거든 매를 많이 주고 아이를 미워하거든 밥을 많이 주라.”(‘명심보감’, 訓子篇) 그리고 잠언에서도 “아이를 훈육하는 데에 주저하지 마라. 매로 때려도 죽지는 않는다. 아이를 매로 때리는 것은 그의 목숨을 저승에서 구해내는 일이다.”

사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 누군들 없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래를 위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꿉놀이하는 아이에게 라이터를 맡길 수 없는 것처럼, 진정 아이들을 위해 더러는 거절할 줄 알아야 하고, 코끝 찡하게 회초리도 들 줄 알아야 한다. 선생도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더러 가지를 쳐주며 반듯한 나무로 키워야 한다.

오늘날 개념 없이 쓰이는 진보(進步)와 인권에 함정이 있다. 진보와 인권을 그저 교육현장에 기계적으로 대입해서 발생한 오류이다. 진보란 가치 지향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진보는 진취성과 가치를 떠나 전복적인 개념으로, 목소리만 큰 진보(嚍潽)이고자 한다.

요즘 보면, 교실에서건 거리에서건 막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이를테면 오도(誤導)된 인권 때문에 가지치기가 안 되어 웃자란 나무들이다. 부모가 자식을 이기지 못하는 시대, 선생도 날개가 꺾인 시대, 패륜과 비열함이 양산되는 시대, 사람보다 이념을 앞세우는 시대에 우린 털 뽑힌 닭이 되어 살고 있다.

일부 의사가 의료사고를 냈다고 전체 의사에게서 수술용 칼을 빼앗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일부 부적격 선생의 체벌로 인해 전체 선생에게서 권위와 교편을 거두게 하는 것은 원칙혼동의 오류이다. 나아가 사람 농사를 모르는 눈먼 애정일 뿐이다.

이쯤 해서 서당도(書堂圖)를 그린 김홍도에게 묻고 싶다. 회초리로 아이를 꾸짖던 훈장, 그대도 회초리를 위헌적 요소로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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