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했지만 서로의 취향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별하는 마니와 프랑크, 여자 친구를 미국에 보내놓고 연락이 오지 않아도 순진하게 여자를 믿었다가 그만 채이고 마는 브루노, 다른 사람의 취향을 거부하며 사람과 벽을 쌓고 사는 카스텔라의 부인 안젤리크. 눈길을 잡아 끄는 스타는 없지만, 인물 하나하나가 우리 주위에 있는 누군가처럼 친밀함이 느껴지고 정겹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냉철하지만 따뜻한 이 독특한 프랑스 코미디는 '스펙터클 취향'이 되기를 강요하는 여름극장가의 '취향 독재'에 반기를 들고 싶은 관객에게 유쾌한 저항의 경험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지요. 생김새가 다르고 살아온 인생 역정이 다르고 사상도, 취미도 모두 다릅니다. DNA 형질이 다르고 지문도 다르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다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같습니다.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며 아침에는 신문을, 저녁에는 텔레비전을 보지요. 예쁜 여자와 잘난 남자를 좋아하며 많은 돈을 벌어 인생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도 대개 비슷하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한꺼풀 벗겨놓으면 모두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하지요. 쌍둥이도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똑같이 생겼다'는 말이라고 하니까요. 인간은 유사이래 '구별짓기'에 집착해왔습니다. 패션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지요. 왕과 신화, 귀족과 평민, 주인과 노예는 그 옷차림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를 구현해 왔습니다. 언어 역시 패션 못지 않은 강력한 진입장벽이었지요. 중세의 성직자들은 라틴어라는 무기로 세상을 지배했으니까요. 우리의 사대부들도 한자를 통해 ‘상것’들과 자신들을 분리했었지요. 그렇지만 민주주의는 이 확연하고 공고했던 차이를 한 방에 날려 버렸습니다. 계급의 벽은 무너지고 왕과 귀족은 단두대에 목이 잘렸습니다. 표음문자가 대중화되었고요. 그 후로는 소비만이 차이를 생성했습니다. 포르쉐, 아르마니, 불가리 따위의 브랜드를 소비할 수 있느냐와 없느냐의 차이. 자가용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그러나, 이는 돈만 있으면 접근 가능하다는 점에서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화 '타인의 취향'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돈 많은 부르주아 카스텔라에게 부족한 건 딱 한 가지. 고상한 취향이지요. 그 차이가 그를 천박하고 무식한 부르조아로 만듭니다. 그의 사랑은 거부되고 그의 진심은 ‘돈지랄’로 폄하되고요. 최근에 나타난(혹은 명명된) ‘보보스’로 불리는 새로운 종자들 역시 바로 이 ‘고상한 취향’으로 부르조아나 여피와 자신을 구별짓습니다. 바로 ‘취향의 권력화’지요. 철학적(혹은 미학적)베이스는 필수요, 예술사를 비롯한 연관분야는 선택이요, 철 따라 등장하는 문제작 탐험은 전공인 그들의 주장은 단 한가지. ‘적어도 졸부가 되는 것보다는 어려워야 한다!’는 것, 그래야 구별짓는 맛이 나니까요. 하지만 '권력화'된 취향을 누리는 신종 귀족그룹의 '대단한 취향'도 밖에서 보면 별로 개성적이지 않습니다. 신나게 광을 낸 군화도, 군대에선 '구별'될지 몰라도 종로거리의 무수한 신발 속에서 그 남다른‘광’은 광을 발하지 못하니까요. 결국 '권력화'된 대단한 취향들도 알고 보면 동종교배에 의해 만들어진 스노비즘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바다 건너에서 날아온 귀여운 영화 '타인의 취향'의 전언입니다. /서혜정 hjkara@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