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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목련들

“우리에겐 희망은 있다. 한센병 환자의 발을 어루만지던 이태석 신부와 같은 선생이 그래도 어디엔가는 있을 것이고, 과학캠프를 위해 빗속을 뚫고 시골로 내려간 대학생과 같은 젊은 선생들도 아직은 많다고 믿기에!”

중부 지방에 집중 호우가 내리면서 우리의 방학도 굵은 빗줄기에 갇혀버렸다. TV를 켜면 해외 뉴스에서나 보았던 산사태와 가옥의 파괴가 우리나라에서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무참하게 휩쓸고 지나간 뒤 현장에 남은 것은 주인 잃은 사진과 흙탕물 뿐. 절망이라는 단어조차 무기력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애끓게 만들었던 것은 열 명에 이르는 대학생 소식이었다. 한창 청춘을 구가할 나이, 그리하여 대부분의 학생들이 배낭여행을 가거나 커플끼리 어울리는 그 시기에, 오직 아이들과의 과학캠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다가 뜻밖의 사고를 당한 그들.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가르쳐 주고자 실험도구를 챙겨 내려갔을, 그들을 나는 이제 목련이라 부른다. 어둡고 궁벽한 뜨락을 숭고한 빛으로 밝힌 그 청춘들!

사실 누가 진정한 선생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누가 진정한 ‘행동주의자인가’이다.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사랑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랑이 있어도, 사랑을 실천하는 자와 그렇지 못하는 자로 나누겠다. 많은 사람이 사랑을 알고 있어도 행하지는 않는 시대. 어쩌면 그들이 관심을 두는 건 세속적인 즐거움이고 사랑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랑은, 얻어먹을 힘도 없는 이들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 아닌가.

영결식장에서 총장의 말대로 “사회적 덕목인 재능 기부를 몸소 실천해온 우리 학생들”이야 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표양이라 할 수 있다. 어린 학생의 눈빛이 어른거린다고 과연 누가 폭우를 뚫고 먼 거리를 달려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젊은 그들은 오늘의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초과근무와 성과급, 호봉을 계산하면서 안색이 변하는 우리들. 그저 하루하루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빠져나가는 교사들. 정말이지, “스승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묻고 싶다.

한 알의 밀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했던가. 고귀한 희생일수록 그 반향과 울림이 크다. 지난번에 언급한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 사랑, '울지 마 톤즈' 그 이후 세상에는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세계인들조차 눈물로서 그의 삶에 감동하고 있다. 사랑이 없는 시대,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시대에 이태석 신부는 진정 우리에게 밀알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일까, 영국 상원의원 데이비드 알톤 경조차 영국을 방문한 북한 최태복 의장에게 이태석 신부의 DVD를 선물한 것이. 슈바이처를 능가하는 이태석 신부가 바로 ‘조선’ 사람이란 것, 그 자긍심으로 북한에 사랑과 감동을 심으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단체나 개인들이 이태석 신부처럼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부하고자 나서고 있다. 한 알의 밀알이 일으킨 고마운 기적이라 하겠다.

다시, 우리는 여전히 선생이다. 온갖 기상이변과 재난 속에서도 세계가 칼과 빵으로 대립하고 뒷거래를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할 선생이다. 더러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부를 축재한다 하더라도 우리 본질은 선생이다. 하루하루 부패․혼돈․무질서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더라도, 역시 우리는 선생이고, 선생이어야 한다.

당분간 수인성 질병처럼 비양심적 악성 바이러스가 기승을 떨치지만 그것에 대한 백신은 오직 ‘사랑’밖에 없음을 믿는다. 언젠가 우리가 모래밭에 쌓아올린 거대한 누각은 무너지겠지만, 그러나 무너지지 않을 인간적인 신뢰, 그것만 있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간혹 선생들은 잡무 때문에 힘들고 예민해져서 그런지 기운이 없다. 업무도 “이 일을 왜 내가 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도 한다. 이득이 생기는 일이라면 얼굴을 환하게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교사들.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에겐 희망은 있다. 한센병 환자의 발을 어루만지던 이태석 신부와 같은 선생이 그래도 어디엔가는 있을 것이고, 과학캠프를 위해 빗속을 뚫고 시골로 내려간 학생과 같은 젊은 선생들도 아직은 많다고 믿기에!

새삼 유가족대표의 영결사 한 구절이 마음을 두들긴다. “내 것만 챙기기도 바쁜 이 시대에 칭송받아 마땅한 숭고한 영혼들, 너희는 춘천 상천초교 학생들의 영원한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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